70, 80년대 좀 잘나간다는 사람치고 테니스 라켓 한번 안 잡아본 이는 없을 듯하다. 군대에 가서도 테니스를 했다고 하면 편한 보직으로 직행하기(?) 십상일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러던 것이 90년대 들어 골프라는 이름의 광풍이 몰아치며 하루아침에 테니스를 저만치 몰아내고 말았다. 

그러기를 20여년, 기업인과 동호인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아가며 ‘골프 못하면 간첩’이란 말까지 유행했다. 접대하면 떠오르는 것이 담배연기 자욱한 술좌석이었던 걸 생각하면 공기 좋은 자연 속에서의 라운딩은 접대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희석시켜주는 중화제 역할까지 했다. 산업화와 민주화 시대를 거치며 개인소득의 증가와 함께 건강에 대한 투자는 물론 사교와 친목도모라는 차원에서도 골프는 안성맞춤으로 여겨져 왔던 것 또한 사실이다. 게다가 귀족 스포츠라는 프리미엄까지 붙어 초보시절에는 골프장 한번만 다녀와도 무슨 훈장이라도 딴 듯 으쓱해지는 느낌도 과히 싫지 않은 것이었다. 

와인은 이보단 조금 늦었다. 구미에서는 오래 전부터 즐겨 마셔온 음료였지만 우리나라는 2000년 대 이후 본격 유행하기 시작했다. 1991년 미국 CBS TV의 ‘60minutes’ 이란 시사프로그램에서 고지방과 콜레스테롤이 높은 음식을 많이 섭취하는 프랑스인들의 심장병 사망률이 다른 지역의 유럽인보다 현저히 낮다는 걸 보도했었다. 나아가 이 프로는 ‘프랑스인들의 역설(French Paradox)’이란 타이틀까지 인용하며 레드와인이 암을 포함한 여러 질병에도 특별한 효험을 지닌다고 강조해 전 세계에 와인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했다. 그 많은 술 가운데 가장 고상하게 보이도록 하는데 큰 기여를 한 나라가 프랑스인지라 이름도 어렵고 친해지기도 어려운 것이 또한 와인이다. 

그러나 골프가 우리나라 특유의 역동성으로 그 짧은 기간에 400만 명이란 엄청난 동호인 숫자를 기록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와인도 건강에 대한 투자심리와 격조 있는 술을 마신다는 자부심이 더해져 예의 어려움을 딛고 압축성장을 이뤄냈다. 

골프와 와인의 공통점은 무얼까? 아마도 조금은 위선적인(?) 면이 있다는 것과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 어렵다는 점 아닐까 싶다. 골프와 와인을 즐겨 하는 일부 사람들의 경우 모였다 하면 그 얘기다. 다른 사람 재미없다는 데도 거의 초지일관이다. 같이 간 멤버가 공을 잘 못 쳐도 ‘굿샷’이고 마시는 와인이 향과 맛이 좋다고 누군가 말하면 어지간한 사이가 아닌 다음에야 일단 통과다.

물론 여기에도 예외는 있다. ‘원 포인트 레슨’ 하겠다고 달려드는 얄미운 사람도 있고 와인매너 가르쳐 주겠다고 막무가내인 이도 있다. 어쨌거나 선술집에서 ‘깡소주’를 비우며 세상에 울분을 토하고, 주말의 축구장에서 심장이 터질 듯 달리며 상대방과 몸싸움을 마다 않는 원초적 본능과는 거리가 있다. 골프라는 운동과 와인이란 술이 공히 귀족이나 사제계급에서 발전된 것이어서 태생적인 특성은 어쩔 수 없나 보다. 

고대 이래로 와인을 상찬하는 위인들의 말들도 많다. 플라톤은 와인을 ‘신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 이라고도 했고 마르크스는 ‘와인을 좋아하지 않는 자는 조심하라’고도 했다. 와인이든 골프이든 경배의 대상이 아닌 그저 좋아하고 그래서 즐기면 되는 운동과 음료일 뿐이다. 전문가면 어떻고 아니면 또 어떤가? 그저 자신이 즐겨 하는 와인 마시고, 산 내음 맡아가며 해저드 좀 피하고 스트레스만 신나게 날리면 되는 일 아닌가! 

그나저나 최근 골프가 심상치 않다고들 한다. 그간 무풍지대를 달려 온 골프의 인기가 하락하며 회원권 값이 폭락하고 적지 않은 골프장들이 경영난을 겪고 있다는 얘기다. 이쯤에서 우리 여행업계도 귀 기울여 볼 만하다. 골프의 열기가 어느 쪽으로 이동하고 있느냐는 것인데 많은 이들이 승마와 요트를 꼽고 있다. 오랜 동안 업계의 효자 노릇을 다 해온 골프를 이을 차세대 먹거리가 무엇이 될지 우리의 관심이 쏠리지 않을 수 없다. 과연 고지에 깃발을 꼽게 될 이는 누가 될까? 
 
신의섭
위투어스 대표
esshin@ouitour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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