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가을부터 차의과대학 미술치료대학원 과정 가운데 생(生)을 잘 마감하려면 어떤 학습이 필요한지 중간 교육자를 대상으로 하는 죽음교육 강의를 일부 맡게 됐다. 잘 떠나는 것,  웰리이빙(well-leaving)은 잘 죽는다는 의미의 웰다잉(well-dying)과 일맥 상통하며, 웰다잉은 다시 웰리빙(well-living)과 다르지 않다. 웰리이빙(well-leaving) 교육, 곧 죽음교육은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것인지 깨닫게 함으로써 의미 있는 삶을 살도록 하는 프로그램이다. 나는 이 수업을 ‘폼생폼사’ 과목이라고 명명하고 싶다. 피하고 싶은, 죽음이라는 부담스러운 주제를 ‘폼 나게 살다 폼 나게 죽는 법’이라는 수업으로 가볍게, 혹은 즐겁게 도마 위에 올릴 수 있다면 누구에게나 닥칠 일이기에 공감할 수 있고 활발한 의견교환이 가능할 것 같다. 

만일 이승에서의 시간이 1주일 (혹은 오늘이 생애 마지막 순간이라면) 밖에 남지 않았다고 가정해 보자. 자신이 소중하다고 느끼는 10가지를 적어보라고 한다면 어떤 게 있을까? 가장 후회스러웠던 일 10가지는? 가장 하고 싶은 것 10가지는? 오늘이 마지막이라면 누구와 함께 하고 싶은지, 사랑하는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이런 질문들은 어쩌면 삶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지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삶이 지치고 힘들 때, 상처받고 절망할 때, 자신이 작성한 것들을 들여다보면 비로소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과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 

1,000여명의 죽음을 가까이서 지켜본 호스피스이자 전문의인 오츠 슈이츠의 저서 가운데 <인생에서 후회하게 될 25가지>라는 책이 있다. 그가 전하는 25가지 중에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많이 했더라면,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했더라면, 가고 싶은 곳으로 여행을 떠났더라면, 내가 살아온 흔적을 남겨두었더라면, 삶과 죽음의 의미를 좀 더 일찍 생각했더라면 등의 후회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고 지금이라도 당장 실천하면 후회하지 않을 수 있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했어야 했다든가 살아온 흔적을 남긴다는 대목에서, 나는 대학 때 교내 사진반 지도교수였던 공대 토목과 전몽각 선생님의 사진집을 자주 떠올린다. 

선생님은 당신의 첫째 아이 윤미의 출생에서부터 결혼에 이르기까지 ‘사진으로 보는 가족사’라고 할 만큼 사랑이 넘쳐 흐르는 <윤미네 집>이라는 사진집을 1990년에 펴내셨다. <윤미네 집>은 아내와 세 아이들을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했던 남편이자 아빠, 그리고 아마추어 사진가였던 전몽각 선생님이 남긴 소박하지만 가슴 뭉클한 사진들로 가득하다. 행복은 언제나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곁에 있다는 진리를 선생님은 군더더기 없는 흑백사진으로 말씀하신다. 70대 중반의 사모님과 (돌아가신 선생님의 카메라 장비를 ‘인계’받아 이제는 사모님이 백발을 날리며 사진을 찍으러 다니신다), 가정을 가진 2남 1녀의 자식들은 남편과 아버지가 자신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사진을 펼쳐볼 때마다 느낄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할까. 책 뒤에 사진에 얽힌 이야기를 표현한 선생님의 캡션을 읽고 있으면 슬그머니 웃음이 난다.

“1965년 4월. 틈을 내어 윤미와 함께 부모님 댁에 들르면 그야말로 최고의 대접을 받는다. 어느 공주님이 그런 대접을 받을 수 있으랴. 아버지는 아들 내외가 가끔 들르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으셔서 자주 우리 집에 오셨다. 윤미 보러 다니신다고 새로 운동화도 사셨다고 했다.” “1987년 2월. 드디어 윤미가 대학을 졸업한다. 사람들이 붐비는 것을 피해 졸업식 전날, 우리 식구끼리만 교내에서 한가롭게 사진을 찍었다.” “1986년 6월. 윤미 결혼식 날이다. 사실은 이날도 나 자신이 사진을 찍고 싶었다. 윤미를 데리고 들어갈 때도 광각렌즈를 끼운 카메라를 한 손에 들고 노(no)파인딩으로 찍으면 될 것 같았다. 많은 손님들 앞에서 그러지 말라고 아내가 결사 반대하는 바람에 하는 수없이 강운구 사우에게 부탁을 했다.”

선생님은 매주 사진반 써클룸에 들러 우리가 찍은 사진을 일일이 품평을 해주셨고 (그때는 흑백필름으로 촬영한 후 암실에서 각각 찍은 사진을 직접 인화했었다), 따로 시간 내서 촬영 나갈 여유가 없다면 당신처럼 주변 사람들을 찍어보라고 하셨다. 내가 회사원일 때 “강양!”하며 따로 불러 당신의 서명을 넣어 건네주신 사진집은 지금도 귀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선생님처럼 사진집을 낼 수는 없어도, 집에서 앨범 한 두 권으로 가족사를 정리해 보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니 꼭 실천해 보았으면 좋겠다.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많은 사람들이 후회하는 두어 가지는 확실히 안 하게 될 테니까. 
 
 
강문숙 맥스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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