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상은 철저히 관리하지 않으면 구설수에 오를 만큼 얼음꽁꽁이다. 입 꼬리가 쳐져있어서 웃지 않으면 세상 불만 혼자 다 진 사람처럼 무서워 보이는 데다 뭔가에 몰두하고 있는 표정을 보고 누군가는 ‘표독스럽다’고 까지 묘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번 마음을 열고 친해졌다하면 간도 쓸게도 뇌도 빼주고 그 마음이 뚝배기 마냥 바글바글 끓어 좀처럼 식지 않는다. 사람한테 한 번 꽂히면 그 순정이 망부석이 될 지경인지라 ‘이 여자 왜이래?’라는 생각이 들만큼 과도한 정성을 쏟는다. 

‘일편단심 민들레’ 기질은 A형 여자의 사랑 방식이라고도 하던데, 차가운 첫인상과는 달리 한 번 좋은 감정을 나눈 사람과는 혈맹이 될 정도로 극과 극을 달린다. 덕분에 사람들과 친해지고 나면 첫인상은 쌀쌀맞고 냉정해 보이는데 알수록 반전있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첫인상은 청담동 차도녀같이 재수 없어 보여 바늘이나 들어갈까 싶은데 알고 보면 뚝배기에 막걸리라는 뜻일 테니 내게는 극찬 중에 극찬이다. 

대학 1학년 때 만난 첫 남자친구와 6년을 사귀고 헤어진 후, 다섯 번의 연애를 했는데 그 중 네 번은 일방적으로 차였다. 상대방은 차는 이유를 명확히 말해주지도 않고 모호한 말의 문자로 이별을 통보하고 잠적해버리기 일쑤였다. 그 중 기호 4번은 지금도 참 고맙게 생각하는 분이다. 그에게 문자로 이별을 통보받은 나는 마음을 돌려보겠다는 생각보다 진심으로 그 이유라도 알고 싶어서 찐덕찐덕 매달린 적이 있다. 그러자 그는 앞으로 어떻게 연애를 하라는 지침과 함께 1, 2, 3, 4 번호까지 달아가며 명쾌하게 그 이유를 설명해 줬다. 정확한 문구, 토씨는 기억나지 않지만, 요는 이랬다. ‘너를 멀리서 보면 도도하고 차가워 보여서 뭔가 도전하고 싶게 만들어. 어딜 가나 튀어 보이고 개성도, 주관도 강해서 어떨 때는 남자보다 더 강하게 보이지. 하지만, 막상 알고 보면 마음은 흰 도자기 같이 여리고 너무 잘해 주려고만 해서 금방 질려. 다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더라도 너의 장점, 너의 색깔을 잃어버리지 말아라.’ 

뒷통수를 한 대 세게 맞은 기분인 것이 정말 구구절절 맞는 말이었다. 그 후로 연애는 어떻게 했느냐고 물으면, ㅎㅎ 나도 잘 모른다. 기호 5번은 있긴 했는지, 그게 누구였는지도 기억이 안 날만큼 바쁘게 살았으니까. 그 분의 지침대로 새빨갛고 샛노랗고 흙빛 그득한 냄새를 풀풀 풍기는 선이 굵은, 날선 커리어우먼으로 보이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써온 것 같다. 작은 말에도 상처 잘 받고, 눈물 많고, 거절 못하고, 잘 속아 넘어가고, 어리벙벙하고, 둔탱이라서 미련하게 잘 참고 견디는 그저 그런 별로인 사람이란 건 절대 들키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은 지금도 자존심을 걸고 지켜내고 싶은 신념같은 것이 되었다. 

정말 나만 그런 걸까? 다들 마음 한 켠엔 외롭고, 헛헛하고, 못난 구석이 많을 텐데, 다들 잘 사는 것처럼 보이니 혼자 루저되긴 싫고, 힘든 티 내면 사람들은 위로하는 척하면서 점점 뒷걸음 치는 거 아니까 어떻게든 감춰보겠다고 씩씩한 척, 잘나가는 척, 건강한 척 하느라 얼마나 수고가 많은가 말이다. 그러게, 사람들은 정작 사랑받고 싶다 하면서도 막상 다가가면 나도 뭔가를 해줘야 하나 부담스러워하고, 우린 가까운 사이니 뭐든 이야기하자 해도, 막상 힘든 이야기 듣는 건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다. 뱅뱅 겉도는 이런 끈적임 없이 산뜻하니 쿨한 관계. 좋다~ 성시경 왈 “쿨 좋아 하시네~ 다들 쿨 방망이로 좀 맞아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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