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을 소재로 한 영화 ‘명량’이 극장가의 역대 최고 기록들을 여러 개 갈아치우며 최근 막을 내렸다. 종영됐지만 관련 산업계는 물론 금융계, 관광업계, 법조계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명량 효과’에 울고 웃고 있는 듯하다. 명량해전의 전승지를 관광산업 활성화로 연결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들과 국내관광업계가 팔을 걷어 올렸고, 금융권에서는 문화콘텐츠 펀드와 투자상품 개발에 공들이는 은행들이 늘어났다. 최근에는 배설 장군의 후손인 경주 배씨 비상대책위원회가 영화 제작진에 이어 영화 배급사인 CJ E&M에 대해서도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사자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 고소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명량 효과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후폭풍의 여파는 만만찮아 보인다. 

우선 관객동원 능력에서 당분간 명량의 기록을 깨기는 어려워 보인다. 명량은 역대 최고 오프닝 스코어(68만명), 역대 최고 평일 스코어(98만명), 역대 최고 매출액 (1,360여억원)을 달성했다. 기준 누적 관객수가 전국적으로 1,760만명에 달해 지금까지 국내 개봉영화 중 최고기록이었던 ‘아바타’의 1,330만명과 한국영화 중 최고기록이었던 ‘도둑들’의 1,298만명을 크게 넘어섰다. 명량의 흥행 신기록에는 스크린을 독과점한 막강한 자본력이 크게 한 몫 했으리라. 

그러나 화려한 소문과 달리 필자는 극장에서 명량을 관람하면서 상당히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탄탄한 스토리에 기반한 자연스러운 감정이입보다는 이순신의 연기력을 통해 감동을 강요받는 느낌이랄까? 배우 최민식의 연기력과 명량해전이 너무 강조되면서 조연들이 묻혀버렸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가 트위터에 “영화 명량은 솔직히 졸작이다. 명량의 흥행은 영화의 인기라기보다 이순신 장군 인기로 해석해야 할 듯"이라는 글을 남겨 엄청난 봉변을 당했다고 하는데 의외로 필자와 같은 생각을 가진 관객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호불호가 엇갈렸지만 무려 60%의 스크린을 점령한 자본력과 마케팅, 매스컴의 영향에 가려 부정적인 의견들은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주인공들은 대부분 초인적인 영웅으로 묘사되곤 한다. 상상력을 극대화해 평범한 인간이 해낼 수 없는 무한한 능력을 보여주지만 현실성 여부와는 상관없이 전세계 관객들은 열광한다. 이에 반해 명량의 이순신은 너무나 인간적이고 극적이다. 최민식의 연기는 영화 속 영웅이 던져주는 해학과 카타르시스 대신에 비장하고 무겁기만 하다. 세계 3대 해군 제독 중의 한 사람으로 영국 해군사관학교에서도 연구를 하고 있다는 이순신 장군의 존재감이 너무 축소된 느낌이 들었다. 거침없고 초인적인 능력이 뛰어난 영웅으로 묘사되었다면 국내보다는 해외 수출용으로 더 좋은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해외 흥행에 더 큰 성공을 한다면 관광마케팅도 훨씬 급물살을 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개인적인 아쉬움이 크다. 이순신의 이름만 들어도 겁에 질려야 했던 왜군들의 갈등과 분위기가 좀 더 크게 묘사되거나, 배설장군의 배신이 이순신을 두려워한 왜군들의 치밀한 작전 속에서 전개되었더라면…. 

도요토미 히데요시 관백에 의해 ‘이순신 킬러’ 최고의 적임자로 투입된 왜장 구루지마가 전쟁에서 승리를 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것이든 마다하지 않는 대담함과 잔혹함, 실전을 통해 얻은 탁월한 지략을 갖춘 얼마나 유능한 장수였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이순신을 두려워했던 이유는 무엇인지, 왜군들의 내부 갈등을 통해 이순신의 존재감을 더욱 크게 부각시키는 우회전법을 썼더라면 영화의 묘미가 더 크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개인적인 아쉬움은 크지만 관광마케팅 측면에서는 그 공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들어 좋은 콘텐츠와 기술력을 기반으로 한국 드라마나 영화의 해외 수출이 늘고 있고 그 후광으로 지역관광 마케팅이 힘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명량은 종영되었지만 한류 콘텐츠를 기반으로 한 관광마케팅은 단명하지 않을 것이다. 이를 어떻게 관리하고 지속하느냐에 그 힘은 향후 10년 아니 백년대계를 바라볼 수 있다. 

벌써부터 명량의 후속작 '노량' 제작 얘기가 나돈다. 여수시가 삼도수군통제영이었던 옛 역사를 바탕으로 영화제작 준비와 관광 활성화에 공을 들이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브랜드는 동일한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반복해 듣는 상대방이 지겨워질 때쯤 인지되기 시작하는 법이다. 영화의 흥행과 관광마케팅이 성공하기 위해서라도 이순신장군의 영웅화 작업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충무공 이순신의 영화는 앞으로 수없이 더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 그래야 세계 최고의 해군 제독으로 추앙받는 대한민국의 영웅을 만들 수 있다. 우리도 한 사람 쯤은 전세계가 다 알아주는 영웅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다만 영화의 흥행 이후 밀려오는 여행객들을 수용할 수 있는 기반 시설을 갖추는 데에도 소홀함이 없기를 바란다.  
 
 
나은경
㈜나스커뮤니케이션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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