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사이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나는 교토를 가장 기대했다. 일본을 대표하는 역사와 전통의 도시 교토를 꼭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교토의 가장 하이라이트라고 생각했던 기요미즈데라를 노을 질 무렵에 찾아 한참 감상에 젖었다. 

기요미즈데라를 나와 기온 거리까지 이어지는 좁은 골목들은 내가 상상했던 일본의 옛 정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이 살고 있을 것 같았던 기요미즈데라에서의 여운이 채 가시기 전이여서인지 굽이굽이 이어지는 골목길에서 나는 마치 애니메이션 한 장면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기분이 너무 황홀해서 나는 교토에 더 머무르고 싶어졌다.

가장 부러웠던 것은 건축의 일관성이었다. 일본식 전통 가옥들이 좁은 골목을 따라 쭉 늘어서있는 모습은 내가 상상했던 ‘일본스러운’ 모습이었고, 관광객으로서 마치 테마파크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  여운을 남긴 기요미즈데라와 주변 지역 건물들의 파사드(Facade)를 유사하게 만들어놓음으로 이 거리는 내 지갑을 열게 만들었다. 마치 롯데월드에서는 나도 모르게 비싼 돈을 주고 너구리 머리띠를 사는 것처럼, 테마파크와 같은 이곳에서는 무언가를 사야만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건축적인 요소와 더불어 관광객들의 지갑을 열게 하는 건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일본의 정취였다. 마치 과거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처럼 주변에는 기모노를 입고 다니는 사람들도 많았고, 일본의 전통식 인력거 역시 관광객들에게 독특한 체험요소를 제공하며 유혹했다.

전통 가옥으로 만들어진 건물 외관과는 다르게 정작 그 안에서는 모던한 관광기념품들도 판매되고 있었다. 항상 인기가 많은 일본식 아기자기한 사탕이나 손수건도 있었고, 비를 맞으면 꽃무늬가 나타나는 최첨단 우산도 있었다. 일본 전통 디저트 카페나 레스토랑도 있었지만, 하겐다즈 아이스크림 같이 익숙한 프랜차이즈도 많았다. 겉모습은 모두 같은 전통 가옥이었지만 각각 특색이 충분히 드러날 정도로 외부 디스플레이나 작은 간판을 달았다. 

골목길을 걸어가면서 깨달았던 것은 기요미즈데라와 같은 주요 관광명소는 그 주변 지역의 분위기를 일관성있게 유지하는 테마파크화(化)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존재만으로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대표 관광명소의 주변을 이처럼 유사한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놓으면서 자연스럽게 관광객들의 소비를 유도하고,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독특한 경험을 제공하여 긍정적인 인상을 남겼다. 다른 관광객들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기요미즈데라에서 느꼈던 감동을 그대로 간직하기 위해 이곳에서 관광기념품을 구입하고, 사진을 찍고, 정취를 기억하게 된다.

서울에서 이와 가장 유사한 형태로 만들어낼 수 있는 장소는 바로 북촌과 삼청동 일대가 아닐까싶다. 경복궁이라는 서울 최고의 관광명소에 인접해있는 북촌과 삼청동에는 경복궁과 유사한 느낌의 한옥들이 대거 위치하고 있다. 아무래도 관광객들에게 연속적인 느낌을 주기 위해서는 건축적인 환경이 비슷하게 이어지는 것이 중요한데, 삼청동에서 북촌으로 이어지는 관광코스는 한옥이 남아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요즘에는 한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학생들과 관광객들도 많이 볼 수 있어 거리가 더욱 화사해진 느낌이다.

그러나 주거지역으로 개인 사유의 한옥들이 즐비해있는 북촌지역은 일본 교토 주변의 거리와는 달리 어려움이 있다. 경복궁의 감동을 이어갈 수 있는 한옥마을 같은 분위기에서 관광객들이 기념품을 사고, 사진을 찍고, 체험을 하면 좋겠지만 북촌은 현실적으로 관광객들이 실제 한옥 내부를 구경하거나 상점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회가 제한적이다. 가회동에 비해 조금 더 상업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삼청동은 한옥이 가진 옛 정취가 차츰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 아쉽다. 

화장품 같은 현대적인 관광기념품을 팔지 말아야한다는 것도 아니고, 프랜차이즈 카페들이 들어와서는 안 되는 것도 아니다. 관광객들의 지갑을 열어야하는 입장에서는 뭐든 관광객들이 소비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나서야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궁’이라는 우리나라 대표 관광명소의 여운을 관광객들이 충분히 느낄 수 있고, 이곳에서만 줄 수 있는 독특한 경험을 위해 적어도 파사드 정도는 전통 한옥의 느낌을 간직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윤지민은 관광 담당 공무원으로 일하다 관광객의 시선에서 진짜 관광을 배우고 싶어 260일간 세계여행을 하며 관광인들을 인터뷰했다. 현재 관광을 주제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관광커뮤니케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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