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놈을 그때가 아니라 지금 만났더라면 더 행복할 수 있을까? 사랑은 타이밍이라는 말, 쉽게들 하는데, 스쳐가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시간은 인생의 물길을 가르고 합치는 결정적 배후 조종자 같다. 어쩌면 신이 시간의 모습을 입고 인간과 공생하는지도 모르겠다. 여행을 하다보면 비슷한 걸 느낀다. 분명 같은 장소 비슷한 풍경이 지나가는데, 단지 지금이 그때가 아니라는 사실만으로 많은 것이 변해버리기도 한다. 내겐 2007년, 2010년, 2015년의 교토가 모두 달랐다. 교토라는 이름만으로도 벚꽃 잎이 입술에 살포시 내려앉을 때처럼 심쿵하고 찌릿하더니만, 출장이 아니라면 굳이 교토를 찾을 필요가 없는 시간이 왔다. 별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냥 지금이 그때가 아니란 것 외엔. 

몇 주 전까지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남자였던 홍상수 감독의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이하 지맞그틀)를 보면서 이런 감정인가 싶었다. 개인취향이지만, 감정표현에 있어서만큼은 찌질한 남자를 좋아한다. ‘찌질'에는 부정적인 뉘앙스가 담겨있다. 너무 솔직하고 적나라한 것에는 구역질이 난다. 너도 나도 다 뱃속에 한 가득 배설물을 담고 살지만, 그건 굳이 말하지 않는 것이 좋다. 

하지만 사랑을 말할 때만큼은 CG가 난무하고 판타지가 범벅되어도 좋고 손발이 오그라붙어도 좋으니 나 좀 예쁘다고, 사랑스러워 죽겠다고 물고 빨고 해줬으면 좋겠다. 아마도 홍감독이 그런 찌질한 사랑을 하는 남자고, 김민희가 그런 찌질을 좋아하는 여자인 모양이다. 

‘지맞그틀'을 비롯한 감독 영화의 남자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공중변소 냄새나는 찌질이들이다. 영화를 제목으로만 접한 분들을 위해 짤막하게 줄거리를 흘리자면, 남자 주인공 함춘수(정재영 분)의 목적은 한 여자와의 잠자리 하나 뿐이다. 오직 그 목적을 이루고자 그의 언어들은 장황하고, 들떠있으며, 공허하다. 이게 1부의 함춘수다. 감독 영화 속 주인공의 일관된 모습이었다. 2부에서 함춘수는 역시 윤희정(김민희 분)에게 다가가기 위해 갖가지 수단과 방법을 불사한다. 그의 갈구는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혹은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그의 의도를 왜곡하고, 결국은 애초의 목적조차 무의미해 지고, 위신도 바닥에 떨어진다. 

1부와  2부 속 함춘수는 같은 상황에서 서로 다른 대응을 한다. 첫 눈에 반한 윤희정에게 다가가려는 이야기를 서로 다른 두 대응으로 나눠 전혀 다른 결론을 내린다. 그래서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린 것이다. 1부의 함춘수는 비린내 나는 홍상수 식 속물의 전형이고, 2부의 함선생은 ‘그래서 뭐! 어쩔래!’ 추구대상에 대한 간절함을 한소끔 가라 앉혔다. 

영화나 소설로 여행을 말할 때는 사건이 발생한 ‘장소'로 이야기가 이어지는 게 보통이지만, 이 영화를 보는 내내 그 때의 내가 지금의 내가 아니기 때문에 사랑에 대한 태도와 깊이가 변하듯, 그때와 동일한 일정으로 그곳을 다시 찾는다 한들 같은 감성이 짜내어지지 않는 게 당연하단 생각에 위안을 얻었다. 그렇게 예뻤던 늦은 밤 산사의 푸른빛을 다시 만났는데도 동공이 커지지 않았고, 인파가 가득한 기요미즈데라 입구에 들어섰는데 기대보다는 짜증이 밀려 왔을 때, 이제 교토를 향한 나의 사랑이 다 했음을 깨달았다. 

첫사랑은 다시 만나면 안 되지만, 괜히 이곳에 다시 왔다는 후회는 전혀 들지 않았다. 지금이 맞고 그 때가 굳이 틀린 이유다. 4월의 교토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사랑스럽지만, 2007년에 교토를 만난 나는 불투명한 미래에 안절부절 못했고, 사랑에 굶주려 있었다. 벚꽃잎이 봄비처럼 쏟아지는 걸 맞고 있는데, 평소엔 뭘 봐도 무덤덤한 나답지 않게 넘치고 과하게 행복했다. 2015년, 같은 자리에 서 있었지만, 그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시간을 되감을 수 없듯이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내가 아니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아무 것도 가능하지 않았다. 그 날 이후, 나에게 교토는 2007년부터 시작해 현재완료(과거에 발생했던 일이 현재까지 영향을 주는 시제) 형태의 좋은 추억으로 남게 되었다. 물론, 그때도 맞았고, 지금도 맞다. 
 
 
박재아
사모아관광청 한국사무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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