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깃 확대 vs 세분화, 특화·특전 상품 구축으로 이미지 메이킹

단언컨대 관광산업은 이미 레드오션이다. 치열한 경쟁을 넘어 붉은 피를 뚝뚝 흘려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전쟁 수준이라고들 말한다. 누군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면 그 뒤를 쫓는 자와의 추격전이 매우 쉽고 빠르게 일어나는 산업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말 관광산업에는 더 이상의 블루오션이란 없는 걸까? 다행스러운 건 똑같은 대상, 똑같은 시장을 두고 뺏고 뺏기는 경쟁 속에서도 누군가는 미처 발견하지 못한 틈을 비집고 들어가 영역을 넓히고 있다는 것이다. 반드시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할 필요는 없었다. 가지고 있는 재료로 색다른 요리를 만드는 방법과 노하우는 생각보다 다양했다. <편집자 주>
 
-틈새는 ‘창조’가 아니라 ‘발견’
-‘눈 가리고 아웅’은 소비자 외면 
 
 
#. 경기도에 살고 있는 A씨는 얼마 전 제주도 여행에서 감귤따기 체험에 나섰다. A씨는 일 년에도 서너 번씩 제주에 가는 ‘제주 마니아’다. 그런 그녀가 20년 전에도 있었던 체험에 굳이 다시 나선 건 최근 SNS에서 감귤따기 체험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A씨는 제주시 해안동에 위치한 ‘아날로그 감귤밭’을 찾았다. 일반적으로 감귤따기 체험료가 3,000~5,000원 사이라면 이곳은 무려 7,000원이다. 그럼에도 SNS에서 핫한 이유가 있다. 지난해 겨울 처음 오픈한 아날로그 감귤밭은 노란 감귤이 주렁주렁 열린 감귤밭을 미니 캠핑장, 테이블 등 아기자기한 소품과 함께 꾸며놓아 여심을 공략했다. 실제로 셀프 웨딩 촬영이나 데이트 스냅 촬영을 위해 이곳을 방문하는 젊은 여행객들의 발걸음이 늘었고, 1년이 지나자 비슷한 콘셉트의 감귤밭 두세 곳이 더 생겼다. 

감귤따기 체험은 오래전부터 제주에서 할 수 있는 액티비티였다. 하지만 매일 새로운 것이 만들어지고 있는 제주에서 감귤따기 체험을 위해 농가를 찾는 관광객들의 발걸음은 줄어들었다. 감귤밭은 점차 사라지고 그나마 남은 곳들은 체험료를 꾸준히 낮췄다. 아날로그 감귤밭 관계자는 “제주를 대표하는 감귤이 점점 사라지는 위기에 처한 상황이 안타까웠고 사람들의 관심을 다시 모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젊은층이 좋아할 법한 인테리어로 꾸몄더니 방문자는 크게 늘었다”고 설명했다. 실제 감귤따기 체험이 한창일 12월 초 아날로그 감귤밭의 감귤은 모두 동이 났다. 
 
떨이 대신 재포장하라
 
전주 한옥마을, 광화문이나 경복궁 근처에서 여행객들에게 한복을 대여해주고 헤어스타일링까지 돕는 ‘한복남(한복 입혀주는 남자)’, 이용자가 원하는 장소에서부터 공항까지 차량 서비스를 지원해 주는 ‘벅시(BUXI)’ 등도 비슷한 사례다. 원래 가지고 있던 상품을 색다르게 포장해 비싼 값에 판매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했다기보다 같은 재료를 다른 방법으로 요리한 것이다. 

타깃을 확장했다는 공통점도 가지고 있다. 감귤따기는 자연을 접하면서도 쉬운 액티비티로 어린 아이를 동반한 가족여행객들이 주요 고객으로 통했다. 아날로그 감귤밭은 사진과 SNS에 민감한 20~30대 여성으로도 타깃을 확장한 셈이다. 공항까지 전용차량을 이용하는 경우에도 한집에 살고 있는(출발지가 동일한) 가족여행객이 대부분이었다. 벅시가 출범한 초창기에도 가족여행객들로부터 먼저 반응이 나타났다. 하지만 출발지가 달라도 인근 지역, 같은 방향, 비슷한 시간대에 목적지가 같다면 함께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을 활용해 1~2인의 소규모 여행객들까지도 이용률이 크게 증가했다. 또 한국을 찾는 외국인 여행객들의 미래 수요를 생각한다면 의미는 더욱 크다. 
 
쪼개고, 나누고… 타깃 세분화 
 
여행에 대한 욕구는 나날이 다변화되어 가고 있다. 다양한 욕구를 100%에 가깝게 만족시키기 위해 타깃은 점점 세분화되어 가는 양상이다. 과거 기획전이 데스티네이션 중심으로 진행됐다면 요즘은 설정된 타깃을 대상으로 공통 요소를 끌어 모으는 모습이다. 

지나해는 특히 ‘혼술’, ‘혼밥’ 등 ‘나홀로족’에 초점을 맞춘 키워드가 성행했다. 이에 따라 여행업계에서도 1인 여행자 증가에 따라 ‘혼행남녀’, ‘혼자라도 괜찮아’, ‘나홀로 집에’ 등의 이름을 달고 ‘혼행’족을 겨냥한 마케팅도 뜨거웠다.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싱글 차지 요금 부담을 줄이고 공항과 호텔 간 픽업·샌딩, 포켓 와이파이 등 혼자여서 신청하기 고민스러웠던 요소들을 해결해 주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었다. 또 여행 결정에 있어 ‘실세’라는 ‘여성’을 타깃으로도 프로모션이 쏟아져 나왔다. 도시별로 쇼핑이나 스파, 미식 등의 요소를 더한 상품부터 남자 연예인 모델을 활용한 SNS 마케팅도 활발했다. 큰 그림으로는 허니문, 태교여행 등으로 분류되지만 세부적으로는 ‘여성’들의 호감을 살 만한 요소를 더하는 노력도 엿보였다. 예를 들어 허니문 목적지로 인기인 칸쿤은 휴양은 여유롭게 즐길 수 있지만 마땅한 쇼핑센터가 없다는 것이 아쉬운 점으로 꼽혔다. 팍스아메리카투어는 지난해 6월 캐나다+칸쿤 허니문 상품을 론칭하면서 ‘신부’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일정으로 토론토를 경유해 ‘쇼핑’을 해결 할 수 있는 아웃렛을 추가해 큰 호응을 얻었다. 그밖에도 시니어·주니어 여행, 블레저(비즈니스+레저), 태교여행, 마라톤·자전거·스쿠버다이빙 등 스포츠 여행 등 상품은 특정 타깃을 대상으로 세분화되는 양상이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항공업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비즈니스클래스는 부담스럽고 이코노미클래스보다는 더 나은 서비스를 원하는 중간 수요를 잡기 위해 ‘프리미엄 이코노미’ 클래스를 도입하는 항공사는 이제 익숙하다. 델타항공의 경우 보다 세분화된 좌석 옵션을 도입했다. 델타 원 비즈니스 클래스, 일등석, 델타 프리미엄 클래스, 델타 컴포트 플러스, 메인 캐빈 및 베이직 이코노미까지 총 6가지 옵션을 선보인다. 미주 항공사들을 중심으로 FSC지만 기내식, 수하물 등 서비스를 모두 제외한 오직 탑승 운임만 제공하는 케이스도 늘었다. 뿐만 아니라 FSC 사이에서 선호좌석 사전지정 유료화도 점차 확대되어가고 있는 분위기다. A항공사 관계자는 “이코노미 클래스보다 낮은 요금으로 LCC와 비교해 요금 경쟁력을 갖추면서도 항공 스케줄 등 선택의 폭은 넓혔다”며 “가격을 세분화하는 것도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방안이다”라고 설명했다.  
 
 
 
●전세기로 가는 애견과의 여행 … 애견 동반 전용 호텔도

소비자가 진짜 원하는 것을 제공하라 
 
특정 타깃이 정해지면 전략은 보다 세밀해진다. 대중적이지 않은 타깃이라면 더욱 그렇다. 반려동물을 기르는 인구 1,000만명 시대에 돌입하면서 여행업계도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여기며 함께 여행을 떠나는 펫팸족을 주목했다. 일본항공의 경우 반려동물용품 유통업체 ‘이온펫’과 함께 ‘전세기로 가는 애견과의 여행, 멍멍 JET 카고시마’ 상품을 출시했다. 2017년 1월27일부터 29일까지 2박3일 일정의 상품으로 반려동물이 기내에 탑승 가능한 파격적인 특전을 내세웠다. 앞서 지난 5월 ANA에서도 전세기를 이용한 패키지 상품을 선보인 바 있다. 일본 국내 출발편으로 아직 한국발 상품은 기획되지 않은 상태지만 일본 국내에서의 반응이 뜨거워 한국발 애견동반 전세기 상품이 출시되는 날도 머지 않아 보인다. 진에어는 지난 8월부터 국내 LCC로는 최초로 반려동물 국제선 위탁 수하물 탑승 서비스를 실시하는 등 펫팸족을 공략하는 항공사 대열에 합류했다. 

반려동물 출입이 가능한 호텔 및 펜션도 눈에 띄게 증가했다. 지난 8월 국내 최초로 애견 동반 전용 호텔인 ‘더 펫텔’이 부산에 오픈했으며 호텔 카푸치노는 애견 침대 및 애견 전용 어메니티 등을 제공하는 패키지도 선보였다. 그 밖에 쉐라톤 서울 팔래스 강남 호텔, 제주 더 코브 호텔 앤 리조트, 힐튼 남해 골프 & 스파 리조트 등 애견 동반이 가능한 국내 호텔도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숙박료도 다소 높은데다 클리닝 비용까지 추가로 지불해야 하지만 ‘애견 동반’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소비자들은 기꺼이 지갑을 연다는 것이 호텔 측의 설명이다.  

소비자의 트랜드에 따라 상품을 변형·기획하는 노력도 있다. 쉐라톤 라구나 괌 리조트는 지난해 태교여행으로 괌을 찾는 여행객이 늘어나면서 ‘태교여행 패키지’를 출시했다. 임신 축하 선물로 쏭레브 크림 및 오일 등 20만원 상당의 화장품 세트와 임산부를 위한 마사지 등을 포함한 것이 특징이다. 올해는 ‘먹방’에 이어 인테리어 예능 ‘집방(집 꾸미는 방송)’이 대세 키워드로 떠오르면서 이와 관련된 프로모션을 기획했다. PHR코리아 관계자는 “포토북 업체와 제휴를 맺고 투숙객들을 대상으로 휴대폰이나 카메라로 찍은 사진 40장을 인화해 주는 ‘포토팩’ 프로모션을 진행할 예정”이라며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으로 요즘 유행하는 인테리어를 장식할 수 있도록 돕는 서비스다”라고 말했다. 올인클루시브 패키지나 클럽 라운지 이용 패키지 등이 등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하지만 특정 타깃을 대상으로 만든 상품이나 서비스가 반드시 통하는 건 아니다. PHR코리아 관계자는 “갈수록 똑똑해지는 소비자들은 관련 상품이 출시돼도 항공, 호텔, 스파 등 상품을 쪼개어 모두 가격을 비교하기 마련이다”라고 설명했다. 또 아직 수요가 적은 타깃이라면 높은 가격은 오히려 장벽이 될 수 있다. 
 
 
유리 이글루 호텔 특화상품 대박
 
광고 모델을 내세운 이미지 메이킹이 아니라 특화 상품으로 강점을 부각하기도 한다. 올해 KRT가 선보인 ‘홈픽업’ 서비스가 대표적인 사례다. KRT는 지난 6월부터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여행은 시작된다’는 슬로건으로 집에서 공항까지 이동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KRT 관계자는 “홈픽업 서비스는 오픈 이후 고품격 상품, 비즈니스 클래스 항공권, 특수지역 상품 등 프리미엄 상품 구매자들에게 특전으로 제공하는 프로모션을 활발하게 진행했다”며 “자사 구매 고객이 아니어도 응모 가능한 이벤트나 TV, 라디오 광고 등을 통해 홍보하면서 KRT만의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실제 홈픽업 서비스 시행 초기에는 4인 이상 기준을 두고 있었지만 3인 이하 문의와 이용률이 많아지면서 기준 인원은 ‘2인 이상’으로 확대 시행 중이다. 

하나투어는 하나투어를 통해 예약하는 고객에게 SM면세점 10% 추가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등 면세점을 적극 활용했다. 하나투어 관계자는 “지난 11월 기준 SM면세점 온라인점 전체 매출 중 하나투어를 통해 판매된 비중은 62%로 집계됐다”며 “예약 고객에게 10% 추가할인 혜택을 제공한 것이 큰 메리트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한다”고 밝혔다. 

특화 상품 개발도 ‘신의 한수’로 통한다. 잘 나가는 지역일지라도 스스로 예약할 수 있는 투어나 호텔이 아닌 여행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상품을 개발하는 것이다. 대명투어몰은 지난해 핀란드 오로라 상품에 칵슬라우타넨 리조트 2박을 더했다. 칵슬라우타넨 리조트는 외벽이 유리로 마감된 이글루 모양을 자랑한다. 라플란드 최북단 사리셀카에 위치해 운이 좋으면 객실 내에서 오로라를 감상할 수 있다. SNS에서는 이색 호텔로 잘 알려져 있지만 이를 판매하는 국내 여행사는 손에 꼽는다. 대명투어몰 관계자는 “핀란드 오로라 상품은 이전에도 판매한 상품이지만 칵슬라우타넨 리조트를 더하면서 판매율은 전년대비 약 30% 증가했다”며 “앞으로도 대명투어몰에서만 예약할 수 있는 특화 상품을 개발하는 데 초점을 맞출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체성 유지하되 확장성도 갖출 것  
 
여행업계에도 스타트업 열풍이 한창이다. 주로 온라인이나 어플리케이션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소자본으로도 광범위한 활동이 가능하다. 외국인 관광객에게 인기 높은 일본 드럭스토어 숍마다 다른 상품가격 정보를 제공하는 써프(SURF), 배달 음식 주문을 대행해 주는 커들리 등 흔히 여행업이라 여기는 업무에서 벗어나 여행객들을 대상으로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특징이다.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한 가지 주제로 시작해 선택과 집중하는 모습을 나타낸다. 키워드를 제시했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우후죽순 등장한 스타트업들을 살펴보면 더 이상 새로운 콘텐츠를 제공한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여행 상품을 카피하듯 스타트업 비즈니스 모델을 카피하는 일도 빈번하게 발생하기 때문이다. 또 대부분이 국내서비스를 시작으로 중국인 관광객을 겨냥해 확대하겠다는 방침이어서 ‘글로벌 기업’으로의 성장성이 낮아졌다는 해석도 있다. 후발주자들과의 경쟁에서 앞서기 위해 무분별한 비즈니스 확장으로 정체성을 잃게 되는 경우도 다수다. K트래블 아카데미 오형수 대표는 “요즘 스타트업들의 80~90%는 중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어플리케이션 또는 플랫폼을 제시한다”며 “스타트업은 정체성을 유지하되 향후 다른 서비스로도 확대할 수 있는 ‘확장성’을 가지고 있어야 차후 비슷한 비즈니스 모델이 생겨나도 자생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손고은 기자 koeun@trave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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