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동행 사반세기, 새로운 25년을 묻다-한·중 수교부터 2,000만명 돌파까지 숱한 이슈와 부침에도 성장곡선 이어가

작성자 김선주 작성일2017-01-02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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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여행신문 창간 25주년 기획
 
한·중 수교부터 2,000만명 돌파까지
숱한 이슈와 부침에도 성장곡선 이어가
 
여행신문이 창간된 1992년부터  숱한 사건과 이슈가 여행업계를 장식했다. 그 중 과거 기억 속 한 단면으로 끝나지 않고 현재와 미래에까지 유효한 메시지를 던지는 키워드를 매해 하나씩 25개를 선정했다. 이들 25개 키워드를 통해 그동안의 흐름을 되짚고, 현재와 미래의 시선에서 각 키워드를 면밀히 살핀다.<편집자주>
 
 
 
25개 키워드로 본 여행산업 사반세기

●1992~1999
급속한 성장 뒤 쓰라린 시련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의 효과가 가시화됐다. 패키지 여행사들의 성장세가 두드러졌고 모객경쟁도 치열했다. 법제도적 기틀을 다지는 시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쓰라린 시련기를 맞았다.  

1992년┃한중 수교
1992년 8월24일 한-중 수교가 전격 이뤄졌다. 한-대만 단교 조치는 불가피했다. 한중 수교는 중국이라는 거대한 관광시장이 열린다는 의미여서 기대가 컸지만, 당시 관광교류가 활발했던 대만과의 갑작스러운 단교는 인-아웃바운드 모두에 큰 여파를 미칠 수밖에 없었다. 한중 수교 25주년인 2017년, 중국은 우리나라 최대 인바운드 시장으로 부상했고, 아웃바운드 부문에서도 일본에 이은 제2의 여행목적지로서 입지가 단단하다. 
 
1993년┃기획여행상품
‘기획여행상품’ 기틀이 마련됐다. 1993년 6월26일 당시 관광 주무부처였던 교통부는 기획여행상품에 대한 정의와 기획여행상품 영업보증보험 제도 등에 대한 내용을 담은 관광진흥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후 기획여행상품은 아웃바운드 시장 발전사에서 핵심 요소 중 하나로 작용했다. 기획여행상품에 대한 정의와 기획여행 보증보험 가입액 등도 시대변화에 맞게 계속 변해왔지만, 여러 측면에서 재정비 필요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1994년┃한국방문의 해
외국인 관광객 유치 촉진을 위한 ‘한국방문의 해’ 사업이 최초로 시행됐다. ‘2001~2002 한국방문의 해’ 사업까지 정부 주도로 진행된 뒤 ‘2010~2012 한국방문의 해’부터는 민간 주도로 변신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 맞춰 현재는 ‘2016~2018 한국방문의 해’ 캠페인이 전개되고 있다. 2012년 연간 방한 외래객이 최초로 1,000만명을 돌파(1,114만명)하고 2016년에는 1,700만명을 돌파했다. 이제 초점은 2018 평창에 있다. 
 
1995년┃신문광고
아웃바운드 시장 규모가 급성장하기 시작하면서 여행사 간 모객경쟁도 치열해졌다. 무대는 신문이었다. 삼홍여행사-씨에프랑스-온누리여행사 패키지 3사가 ‘신문광고 전쟁’을 벌였으며, 가격경쟁의 불똥은 랜드사로 튀어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나왔다. 2000년대 초반에는 신문광고 크기를 제한하자는 자율합의까지 나왔으며, 이의 준수 여부를 둘러싸고 이후에도 갈등이 빚어졌다. 무대만 바뀌었을 뿐 지금도 마케팅 경쟁은 치열하다. 
 
1996년┃관광진흥개발기금
1996년 한 해 동안 출국자 대상의 ‘관광진흥개발기금 출국납부금’ 부과제도 도입 논의가 활발했다. 갑론을박 끝에 1997년 7월부터 시행에 돌입했고 이후 단계적 확대 과정을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출국자 1인당 1만원의 출국납부금을 비롯해 정부출연금, 카지노사업자 납부액 등으로 조성된 관광진흥개발기금은 매년 관광사업체 대상 융자지원과 국내관광 진흥사업 등에 폭 넓게 투입된다. 기금 운용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지적도 꾸준하다.
 
1997년┃IMF
1997년 11월21일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시대의 시련이 시작됐다. 1998년과 1999년까지 사회 전반적으로 부도와 폐업, 감원과 구조조정이 일상화됐다. 이후에도 대형 위기는 계속 덮쳤다. 미국 9·11 테러사건, 남아시아 지진해일, 글로벌 금융위기, 동일본 대지진, 세월호 침몰사건 등의 대형 악재는 물론 사스와 신종플루, 메르스, 에볼라 등 바이러스 확산도 위협적이었다. 위기대응에 대해 많은 화두를 던진 것은 물론이다.  
 
1998년┃한국관광협회중앙회 
1998년 5월 현 한국관광협회중앙회가 공식 발족했다. 1963년 대한관광협회로 설립된 이후 1972년 대한관광협회중앙회로 개편됐으며, 1973년 한국관광협회로 명칭이 변경되는 과정을 거쳤다. 1992년 한국일반여행업협회(KATA, 현 한국여행업협회)가 독립한 데 이어 1996년에는 한국호텔업협회도 독립하면서 협회들을 회원사로 두는 ‘중앙회’ 체제로 재편돼야 할 필요성이 불거진 데 따른 것이다. 하지만 중앙회로서 행보는 순탄치 않았다.  
 
1999년┃인터넷
여행업에서도 인터넷 혁명이 전개됐다.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인터넷 여행사가 우후죽순 생겨났으며, 온라인 거래가 급속도로 확대되며 여행업 전반에 폭 넓은 변화를 몰고 왔다. 약 10년 뒤 인터넷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파급력을 지닌 모바일 혁명이 불었다. 스마트폰과 SNS 확산으로 전 세계 여행업 환경은 근간부터 혁신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전통적 여행업은 태동 이래 최대 도전에 직면했다.   
 

●2000~2009  
체력 강해졌지만 금융위기로 휘청
2000년대는 여행산업이 하나의 산업으로서 기반을 강화하는 시기였다. 하나투어를 신호탄으로 여행사들이 주식시장에 상장했으며, 주5일제 도입으로 여행수요도 확대됐다. 미국 9·11 테러사건 등에도 성장가도를 달렸지만 미국 리먼 브라더스 사태로 불거진 글로벌 금융위기에는 휘청거릴 수밖에 없었다.
 

2000년┃코스닥
하나투어가 여행사로서는 최초로 코스닥(KOSDAQ)에 상장했다. 특정 여행사 한 곳으로서보다는 여행사 전체의 대외 위상과 이미지를 제고시키는 계기가 됐다. 특히 IMF 외환위기 동안 수많은 여행사들이 도산하면서 외부 금융기관이나 투자자들의 시선이 좋지 않았던 상황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다른 업체들의 기업공개(IPO) 의지도 자극했다. 모두투어가 2005년 코스닥 상장에 성공했고 그 후 우회사장을 위한 M&A 광풍이 불었다. 
 
2001년┃인천국제공항
인천국제공항이 2001년 3월28일 개항했다. 방콕발 아시아나항공 OZ3423편이 첫 착륙했고 마닐라행 대한항공 KE621편이 첫 이륙했다. 인천공항은 세계 1위 공항 타이틀에 머물지 않고 동북아 허브공항으로서의 입지를 계속 강화하고 있다. 2017년 10월 이후에는 제2여객터미널(T2)도 개장한다. 제2여객터미널은 연간 1,800만명의 여객을 수용할 수 있으며 대한항공 등 4개 항공사가 사용한다. 
 
2002년┃주5일제
주5일 근무제가 확산되면서 국내외 여행수요 증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주말 국내여행은 물론 심야 또는 이른 새벽에 출발해 1박 또는 2박 후 귀국하는 일본 ‘밤도깨비’ ‘올빼미 투어’도 인기를 끌었다. 주5일제 정착에 이어 현재는 주4일 근무제 논의도 시작됐다. 2014년부터 시행된 대체공휴일제 역시 여행업계에는 단비와 같다. 대체공휴일제도를 전면 확대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2003년┃항공동맹체 
아시아나항공이 항공동맹체인 스타 얼라이언스(Star Alliance)에 15번째 회원항공사로 3월1일 가입했다. 이로써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양대 국적항공사는 모두 글로벌 항공동맹체에 가입해 활동하게 됐다. 대한항공은 이에 앞서 2000년 스카이팀(SkyTeam) 결성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회원 항공사와의 공동운항과 마일리지 공유 등을 통한 서비스 확대 효과도 크다. 이제는 저비용항공사(LCC)도 그 뒤를 따를 조짐이다.  
 
2004년┃KTX
서울과 부산을 최대 시속 300km로 3시간대에 주파하는 고속철도 KTX가 4월1일 첫 출발했다. 전국이 반나절 생활권으로 묶이게 됐다. 무엇보다 기차를 활용한 국내여행 패턴에 큰 변화가 일었으며, 국내선 항공노선 역시 KTX에 밀려 구조조정을 거쳐야 했다. 이후 고속철도 망이 계속 확충되면서 국내 기차여행은 더욱 활성화됐다. 2016년에는 수서고속철도 SRT도 개통해 변화에 속도를 더했다.
 
2005년┃LCC
우리나라 저비용항공사(LCC)가 태동했다. 우리나라 최초 LCC인 한성항공이 8월31일 청주-제주 노선에 취항하면서 우리나라에도 LCC에 대한 인식이 퍼지기 시작했지만 한성항공은 자금난과 내부갈등 등으로 결국 날개를 접었다. 현재 국적LCC 중에서 최고 역사를 지닌 제주항공(당시 제주에어)은 그 해 8월 정기항공운송사업 면허를 취득했다. 현재 국적LCC만 6개사에 이를 정도로 LCC는 꾸준히 영역을 확대해왔다. 
 
2006년┃e-티켓
국제선 항공권이 기존의 종이항공권에서 전자항공권 즉, e-티켓으로 본격 전환되기 시작했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한국지부는 시범적용을 거쳐 2006년부터 BSP여행사에 종이항공권과 함께 e-티켓을 배정하기 시작했다. 항공사에 따라서는 종이항공권에 별도 비용을 청구했다. 2008년 6월부터는 BSP 종이티켓을 전면 폐지하고 100%로 e-티켓 체제로 돌입했다. e-티켓의 성공적 도입은 첨단 항공서비스의 신호탄이었다.
 
2007년┃하드블록
항공좌석난이 심해지면서 하드블록이 일반화됐다. 항공사 역시 사전에 안정적으로 좌석을 판매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호 윈-윈 성격도 있었다. 부작용도 컸다. 항공사가 일방적으로 좌석을 강매하고 강요하는 식으로 흐르면서 여기저기서 부작용이 생겼다. 모 항공사는 공정위 조사를 받기까지 했다. 양대 국적항공사도 하드블록 계약을 폐지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숙제는 지금도 남아 있다.  
 
2008년┃제로컴
대한항공이 항공권 판매수수료 인하에 이어 2010년 1월부터는 아예 커미션 제도를 폐지하겠다고 ‘제로컴(Zero Commission)’을 선언했다. ‘커미션 자유화’라고 표현했지만 여행사들의 반발은 극심했다. 한국여행업협회(KATA)를 중심으로 대한항공 항의시위를 벌이고 호소문 광고도 게재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대한항공은 강행했고 아시아나항공도 가세하면서 2010년 한국 시장은 제로컴 체제로 재편됐다. 
 
2009년┃무급휴가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인한 글로벌 금융위기로 여행업계에도 한파가 불었다. 여행인들의 고통도 컸다. 여행사 가릴 것 없이 무급휴가 조치가 일반화됐다. 주4일 근무, 하루 근무시간 단축 정책 등까지 나왔다. 무급휴가에 근무시간 단축은 임금 삭감으로 이어졌다. 견디지 못한 여행인들이 하나 둘 여행업계를 떠나기 시작했다. 외부 충격에 취약한 여행업계 구조와 인력 관리 시스템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도 고개를 들었다.   
 
●2010~2016    
제로컴 충격에 OTA·LCC 공세까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항공권 판매수수료(Commission) 제도를 폐지하면서 한국에도 제로컴 시대가 도래했다. 여행사 수익구조를 근본적으로 흔들었기 때문에 충격이 컸고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해외 OTA의 공세도 심해졌고 LCC도 시장변화를 이끌었다. 
 
2010년┃TASF
항공사들의 항공권 판매수수료 폐지(제로컴)에 맞서 여행사들이 여행업무 취급수수료(TASF) 제도를 도입했다. 잃어버린 커미션 수익을 TASF를 통해 창출하겠다는 계산이었다. IATA BSP시스템을 통해 TASF 부과 시스템을 가동시키고, 항공권 종류별 적정 TASF 액수에 대한 가이드라인도 만드는 등 상당히 체계적이었다. 그러나 여행사간 TASF 인하경쟁, 소비자들의 인식 부족, 법적 근거 부재 등으로 지금도 표류하고 있다. 
 
2011년┃오픈스카이
정부가 항공공급 확대에 적극 나섰다. 파푸아뉴기니·스페인·에콰도르·라오스 등과 항공자유화(오픈 스카이)에 합의했고, 태국·캄보디아·마카오 등과는 운항 가능 항공사 숫자 제한을 없애는 데 합의했다. 이는 신규취항과 항공공급 확대, 여객증대의 발판이 됐으며, 2016년 연간 항공여객 수 1억명 돌파의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정부는 앞으로도 전략적 항공자유화를 지속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2012년┃OTA
한국에 진출한 글로벌 OTA들이 존재감을 대폭 확대했다. 아고다, 익스피디아 등이 한국어 사이트를 오픈하고 B2C 판매를 활성화했으며, 국내 여행사와의 제휴를 통해 B2B 영업에도 나섰다. 외국계 OTA와 토종 OTA 간의 대결구도도 첨예해졌다. 한국에서 입지를 다진 해외 OTA들은 이제 호텔을 넘어 항공권 판매에도 뛰어들었다. 여기에 에어비앤비 등과 같은 신개념의 모델도 가세해 여행업의 전통적 구조를 흔들고 있다.
 
2013년┃갑질
사회 전반적으로 강자의 약자에 대한 ‘갑질’이 도마 위에 올랐다. 여행업계도 갑질의 병폐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어서 반향이 컸다. 항공사-여행사-랜드사로 이어지는 여행업 유통단계별로 갑-을, 상-하 관계가 형성되고 갑의 횡포도 여전해서다. 항공사의 ‘ADM 블록’ 방식의 좌석공급 계약, 랜드사에 대한 여행사의 ‘지상비 후려치기’, 인바운드 여행사의 가이드에 대한 ‘쇼핑 페널티’ 등 부문을 가리지 않고 갑의 횡포가 진행되고 있다.
 
2014년┃BSP
IATA코리아가 담당했던 BSP 관련 제반 업무가 2013년 말부터 IATA 싱가포르 본부로 이관되면서 그 여파가 본격화됐다. 업무가 이관되자마자 17개 BSP여행사의 항공권 불출신청이 정지되는 등 문제가 발생해 긴장감이 높았다. 특히 BSP 대금 미입금 또는 지연 입금시 기존과 달리 즉시 불출정지 조치를 내리게 돼 우려가 컸다. 실수로 인한 미입금으로 부도처리되는 사례는 지금도 종종 발생하고 있다.    
 
2015년┃중국전담여행사
중국 인바운드 시장 건전화를 이끌기 위해 정부는 ‘중국인 단체관광객 유치 전담여행사’에 대한 관리를 한층 강화했다. 중국전담여행사가 유치하는 모든 중국인 단체에 대해서 상품가격, 지상비, 수익, 쇼핑 및 옵션 등 세부 사항을 ‘전자관리시스템’에 입력하도록 했다. 이후 ‘상시퇴출제’, ‘신고포상제’ 등 중국전담여행사에 대한 관리고삐를 바짝 죄는 조치들이 계속 나왔다. 정부의 지나친 시장 개입이라는 반발도 있다. 
 
2016년┃2,000만명
내국인 출국자 수가 2,200만명대를 기록하며 최초로 2,000만명을 돌파했다. 우리나라보다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가 25년 앞서고 인구도 두 배 수준인 일본보다 월등히 높은 수치다. 방한 외래객 수도 1,700만명을 넘어서며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인·아웃바운드 양 측면에서 규모를 확대하면서 세계 관광시장에서 차지하는 위상도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커졌다. 항공사와 관광청 등의 한국 진출도 더 활발해질 전망이다.  
 
김선주 기자 vagrant@trave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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