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백의 검은 숲 Black Forest highland
호흐 슈바르츠발트 hoch Schwarzwald  
맑디맑아 시린
 
옆으로는 프랑스, 아래로는 스위스와 만나는 경계의 땅 독일 남서부, 
그곳에서 푸르다 못해 끝내 검게 보인다는 ‘검은 숲’ 슈바르츠발트(Schwarzwald)는 넓고 깊었다. 
높은 곳을 찾아 오르니, 눈 덮인 순백의 검은 숲은 맑고 또 맑았다. 

해질 무렵 티티제 호수에 피어오른 물안개가 숲을 감쌌다
 
 
겨울이면 순백의 눈과 대조를 이뤄 더욱 맑고, 어디든 동계레저스포츠 무대로 변

숲, 푸르다 하얗다 검다
 
검은 숲 슈바르츠발트에 대한 이야기는 몇 해 전 프라이부르크(Freiburg)에 들렀을 때 처음 들었다. 슈바르츠발트로 들어가는 길목 도시다. 프라이부르크에서 자동차나 기차로 30~40분이면 족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시 프라이부르크에 서니, 그때의 아쉬움이 조바심으로 일렁이며 길을 재촉했다. 

슈바르츠(Schwarz)는 검다, 발트(Wald)는 숲이라는 뜻이다. ‘검은 숲’을 직역해 흑림(黑林)이라고도, 블랙 포레스트(Black Forest)라고도 부른다. 한낮에도 빛이 들지 않을 정도로 숲이 울창해서, 멀리서 바라보면 검게 보일 정도로 빼곡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단다. 행정상의 지명은 아니다. 우리네 백두대간과 같은 자연지리의 개념이다. 슈바르츠발트는 슈투트가르트(Stuttgart)가 주도인 독일 남서부 바덴뷔르템베르크주에 있는 산악지대다. 그것도 광활한 산악지대다. 위아래 길이가 약 160km에 이르고 좌우 너비도 위도에 따라 20~60km에 달할 정도다. 프라이부르크 같은 도시를 여럿 품을 수 있었던 배경이다.   

프라이부르크를 벗어난 왕복 2차선 도로는 숲 사이를 비집고 사행하며 서서히 고도를 높였다. 심한 굴곡과 경사는 아니었지만 다른 차원의 분위기가 점점 강해졌다. 소음은 고요로 가라앉았고 심신은 홀가분해졌다. 슈바르츠발트의 꼭대기, 그러니까 높은 지대로 향했으니 당연했다. 슈바르츠발트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는 해발고도 1,493m인 펠트베르크(Feldberg)다. 펠트베르크 산을 중심으로 숲의 고원지대가 펼쳐진다. 이곳은 ‘호흐 슈바르츠발트’라고 앞에 수식어를 따로 붙여 부른다. 호흐(Hoch)는 ‘높다’는 뜻이니 영어로는 ‘블랙 포레스트 하이랜드(Black Forest Highland)’다. 고원지대만의 청정함과 색채가 남달라서 그런지 이곳 사람들은 ‘호흐’ 또는 ‘하이랜드’를 유독 강조한다. 슈바르츠발트 내에서도 독립적인 영역으로서 자부심이 그만큼 커서 일 게다. 

아니나 다를까, 첫 대면한 호흐 슈바르츠발트는 맑디맑아 시렸다. 숲은 하얀 눈을 인 전나무와 가문비나무로 푸르스름하게 빛났고, 핏줄 같은 오솔길들이 숲 속 곳곳을 거닐었다. 호숫가에 웅크린 아담한 마을은 동화 속 풍경으로 스몄고, 아침저녁으로 피어오르는 물안개는 신비로웠다. 물안개와 이슬을 머금은 나뭇가지 줄기마다 매일 아침 어김없이 청아한 상고대가 피어올랐다. 원경은 또 어땠나, 저 멀리 프랑스와 스위스로 아득하게 이어지는 절경에 달리던 차를 세우기 일쑤였다. 겨울에도 이럴진대 신록의 계절에는 숲이 어디까지 부풀지 절로 궁금해졌다. 호흐 슈바르츠발트의 빛깔은 그렇게 검고 푸르고 순백이었다.       
 
아침이면 나뭇가지마다 청아한 상고대가 핀다
 
스키 발상지를 사각사각 스노슈잉
 
1891년 2월9일 프랑스 외교관 필레(R. Pilet)가 2미터 높이로 쌓인 눈을 헤치고 펠트부르크 산 정상 1,493m까지 올랐다. 당시로서는 이상하기 짝이 없었을 휘어진 나무판을 신었고 양손에는 기다란 스틱을 쥐고서 말이다. 슈바르츠발트 및 중부 유럽 지역에서 최초의 다운힐 스키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스키 발상지답게 호흐 슈바르츠발트는 겨울이면 거대한 동계 레저스포츠 천국으로 변한다. 펠트부르크 산만 해도 그 자체가 거대한 스키 리조트다. 광폭의 슬로프 위로 60개의 리프트가 스키어와 스노보더를 쉴 새 없이 실어 나른다. ‘아우디 국제스키연맹(FIS) 스키 월드컵’ 같은 굵직한 스키대회도 열린다. 숲 속으로 난 크로스컨트리 스키 트랙만 700km에 이르고 스노슈즈로 탐험할 수 있는 트레일도 300km로 뻗어있다. 별도 표지판이 달린 정식 코스의 길이만 1,000km에 이르는 셈이다. 썰매 슬로프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눈이 녹고 계절이 바뀌면 그대로 산중 하이킹·트레킹 코스로 탈바꿈한다.   

엄두 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펠트베르크 슬로프 활강은 서툰 스키어답게 미련 없이 포기했다. 대지처럼 드넓은 슬로프에 스키어와 스노보더가 눈가루를 날릴 때마다 맑은 날 쨍한 햇볕 줄기들이 퉁퉁 튕겨져 나왔다. 스노슈잉은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 멘젠슈반트(Menzenschwand)라는 작은 마을이었다. 설피를 신는 동안 개구쟁이처럼 신났다. 숲 속 깊숙이 파고들겠지 기대했지만 웬걸, 오히려 너른 분지 코스였다. 시간적 제한 탓이다. 정설차가 다듬은 코스를 벗어나면 스노슈즈라도 어쩔 수 없이 푹푹 빠졌다. 무리에서 떨어져 홀로 걸으면 백지 위에는 오로지 뽀드득 뽀드득 눈 밟는 소리만 남았다. 크로스컨트리를 하는 이들이 추월하고 다가오기를 반복했다. 그들은 숲에서 나오거나 그 속으로 사라졌다. 숲 길 스노슈잉에 대한 미련에 돌아오는 길에 달리던 차를 세웠다. 샛길로 조금 걸어 들어가니 전나무와 가문비나무가 하늘로 경쟁하듯 치솟았다. 족히 30m는 돼 보였다. 침엽수림의 꼿꼿한 도열 속에 크로스컨트리를 즐기는 가족이 행복해보였다. 스키 활강도 스노슈잉도 마다하고 바데파라디스(Badeparadies)라는 실내 워터파크를 택한 여성 일행들은 재회하자마자 호들갑을 떨었다. 남녀 혼탕이어서 소스라치게 놀랐단다. 만사 제치고 가봐야겠다는 농을 던졌다가 함께 가자고 할까봐 서둘러 거뒀다.
 
숲이 품은 동화 같은 마을
 
호흐 슈바르츠발트는 고원 삼림지대이니 예부터 물자수송도 마땅하지 않았다. 협곡을 건너고 높은 산을 넘어야 겨우 생필품을 교환하고 물자거래를 할 수 있었다. 특히 산맥을 넘거나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야 하는 긴요한 지점에는 말과 사람이 쉬어갈 거처가 필요했다. 호프굿 스터넨(Hofgut Sternen) 마을은 그렇게 탄생했다. 1300년대 초부터 말들이 쉴 마구간과 사람이 묵을 여관이 들어섰으니 700년 역사다. 17~18세기에는 슈바르츠발트 특산 유리공예품과 시계를 거래하는 주요 무역 루트로서 역할을 했다. 1770년에는 오스트리아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의 막내딸 마리 앙투아네트(Marie-Antoinette)가 프랑스 루이 16세와 결혼하러 가는 길에 들른 것으로 유명하다. 화려한 웨딩 장식을 한 마차 52대가 이곳에 멈춰서 장관을 이뤘다고 한다. 국고를 낭비하고 반역을 꾀했다는 죄목으로 1793년 시민의 손으로 처형당한 그녀의 비극적 최후가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1857년 현대적 개념의 도로가 놓이면서 호프굿 스터넨도 쇠락했다. 하지만 여전히 건재했다. 마차 대신 자동차가 지나고 무역상들 대신 관광객이 머물렀다. 마을 뒤편 산 중턱으로는 길이 224m 높이 36m의 아치형 철로가 놓였는데 그 위로 빨간 기차가 달렸다. 프라이부르크 역과 호흐 슈바르츠발트의 중심 기차역인 티티제 역(Titisee Station)을 연결하는 기차다. 동화 속 풍경 같아서인지 빨간 기차가 지날 때마다 관광객들은 시선을 모았다. 티티제 호숫가를 지날 때면 검푸른 숲과 눈 쌓인 순백의 호수와 어우러져 몽환적인 분위기를 선사했다.

빨간 기차 못지않게 일정한 패턴으로 움직이면서 시선을 끈 것은 건물 한 벽면을 가득 장식한 대형 시계였다. 대형 시계 바늘 위로 남녀 커플 인형 두 쌍이 언제든 음악이 나오면 춤을 추겠다는 투로 기다렸다. 실제로 음악에 맞춰 춤추는 모습은 티티제 호숫가 마을에 있는 대형 시계에서 봤다. 중세 때부터 시계 제작으로 이름을 알린 시계의 고장이고, 일명 ‘뻐꾸기시계’가 태동한 곳도 슈바르츠발트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오랜 만의 춤추는 시계가 신기했다. 호프굿 스터넨과 티티제 마을에 있는 뻐꾸기시계 전시판매장에 들르니, 각양각색 수 백 개의 뻐꾸기시계가 뻐꾹 뻐꾹 울었다. 시계 인형들이 춤만 추는 것은 아니었다. 맥주를 들이켰고 도끼질을 했으며 얻어맞고 익살을 떠는 인형까지 다양했다. 대부분의 공정이 수작업이어서 그런지 비싼 것은 우리 돈 수백 만 원에 달했다. 숲 속으로 사냥 나온 사냥꾼을 제일 먼저 알아채고 울어댔기 때문에 뻐꾸기를 시각을 알리는 데 사용하게 됐다는데 증명할 길은 없다. 

뻐꾸기시계에 밀리지 않겠다는 듯 유리공예 장인의 표정은 비장했다. 시계와 유리공예품의 주요 무역 루트였으니 당연했다. 섭씨 1200도의 뜨거운 불길로 달궈지고 입김으로 부풀고 빙글빙글 돌려지기를 반복하니, 투명 빈 유리관은 어느새 색색의 유리장식품으로 변신했다. 빨간 열기가 빚은 예술품이었다.    
 
독일 호흐 슈바르츠발트 글·사진=김선주 기자 vagr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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