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눈부신 화이트 비치와 바다, 그래서 휴양만을 떠올린다면 아직 필리핀의 매력을 다 알지 못하는 것이다. 필리핀은 용암이 흘러 넘쳤던 화산을 오르고, 섬에서 섬으로 뛰어다닐 수 있는 모험가의 땅이라는 사실, 알고 계셨는지. 만렙의 필리핀 여행자가 되기 위한 미션을 수행하고 돌아왔다. 
 
피나투보 화산 트래킹은 거칠다. 큼지막한 돌과 듬성듬성 물길이 길을 막아서지만, 어려움보다 피나투보를 오르는 즐거움이 더 크다
 

‘필리핀 모험가’의 칭호를 얻기 위한 미션으로 총 세가지에 도전했다. 
 
① 피나투보 화산 정상 오르기 ② 잠발레스 아일랜드 섬 투어 ③ 푸닝 온천 투어가 그것. 수행 완료를 위해 필요한 아이템 장착 여부 뿐만 아니라 예측할 수 없는 변수인 날씨까지 더해진 흥미진진한 미션이다. 각각의 난이도와 필요 아이템을 정리해 두었으니, 다음 모험가님은 마음을 단단히 먹으시길.
 
정상에 오르면 작은 산장같은 공간이 나온다. 지친 몸에는 짭쪼롬하고 따뜻한 국물이 특효약
가끔씩 눈을 들면 피나투보의 우람하고 풍만한 산이 환하게 펼쳐진다
 
●미션 1  
끓어오르는 화산의 생명력 
피나투보 화산에서 정기 받아오기
 
*도전 지역 : 클락

모험가를 불러들이는 이곳, 클락은 필리핀 중남부에 자리한 곳이다. 클락 도심에서 1~2시간 내외의 거리에 피나투보 화산과 바다와 접한 해안마을인 수빅이 있다. 산과 바다가 인접해 다양한 지형에서 다양한 방식의 모험을 즐길 수 있는 것. 모험가의 거점으로 삼기에 더없이 좋은 입지가 아닐 수 없다. 

클락은 옛 미군 기지로 사용됐던 중심부와 중심부 주변으로 형성된 주변부로 나뉠 수 있다. 중심부는 게이트를 통과해야만 들어갈 수 있어 상대적으로 치안 수준이 높은 지역이다. 한밤에도 자유로이 돌아다닐 수 있을 정도로 안전하다고. 대형 쇼핑몰인 SM몰을 비롯해 대형 호텔, 레스토랑 등이 밀집해 있다. 군 기지였던 만큼 큼직큼직하고 명확한 구역 설정을 엿볼 수 있고, 도로 등 교통 시스템도 잘 갖춰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여행자에게 클락은 ‘골프 여행지’로 유명하다. 클락 지역에만 총 7개의 골프장이 위치해 있다. 덕분에 클락은 골퍼의 천국이자, 같은 이유에서 남성 여행자의 목적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아직 단언하긴 이르다. 주 여행자인 남성 골퍼의 대척점에 있는 ‘골프를 즐기지 않는 여자’에게도 매력적인 목적지라는 것이 증명됐기 때문이다. 

▶피나투보 화산 공략기
난이도:   ★★★★☆
소요 시간:   트래킹 왕복 5시간
필수 아이템:   물에 흠뻑 젖어도 되는 트래킹화
서브 아이템:   우기엔 우비, 건기엔 마스크 혹은 코와 입을 가릴 수 있는 스카프 
체크 포인트:   여행자를 위한 트래킹 코스는 피나투보 화산 입구에서 매일 새벽 7시에 등록을 받는다. 4월부터 5월까지는 미국과 필리핀의 군사 훈련이 열리는 시기로 공지 없이 트래킹 입장이 제한되니 본인의 운을 테스트하는 기회로 여겨보자. 
 
우림 속을 파고들면 피나투보의 칼데라호가 나온다
 

활화산을 만만히 여겨선 안돼

산에 오른다 하여 마을 뒷동산 즈음 생각한다면 큰 코 다칠 것. 세상 모든 크기와 모양의 돌부터 모래, 풀뿌리는 물론 화산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물줄기가 트래킹 길 곳곳에서 여행자를 막아 선다. 마음 단단히 먹지 않으면 정상 문턱도 가지 못하고 포기할 수 있으니 끈기와 인내는 필수 덕목이다. 

피나투보 화산은 잠발레스, 탈락, 팜팡가 지역의 경계선을 끼고 있는 필리핀의 유명 활화산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15년 전인 1991년 폭발했고, 이 폭발은 20세기 화산 활동 중 두 번째로 큰 규모로 기록되고 있다. 당시 화산 폭발로 인해 수백명의 사상자가 나는 등 혼란을 겪었지만, 지금은 화산 분화의 흔적과 분화로 인한 독특한 생태계를 직접 경험하려는 여행자의 발길이 이어지는 중이다. 

화산 입구에서 등록을 마치면 트래킹길 입구까지 안내할 차량이 배정된다. 낡은 4륜 구동 자동차가 일반적이고 추가 요금을 낸다면 천장이 없는 오프로드 차량을 타고 갈 수도 있다. 트래킹 동행멤버는 4명 혹은 4배수 기준이 좋겠다. 차량이 4인 기준 탑승인데다 인원수가 채워지지 않아도 총액은 똑같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험난한 모험가의 길, 돈을 더 내고 고생하는 것보다 정량만 내고 고생하는 것이 속이 편하다. 

모험가를 시험하는 것인지 랜덤으로 배정된 차량은 낡을 데로 낡고 찌그러질 데로 찌그러졌다. 드문드문 바닥이 뚫려 길 바닥이 내려다 보일 정도라면 이해가 빠르시려나. 험한 길을 매일 달려서겠지, 안쓰러운 마음도 잠시다. 생을 다해 쿠션감이 하나도 없는 의자 위를 놀이기구를 타는 것처럼 엉덩이가 방방 뛰어다니니 ‘이 놈의 고물 자동차’ 등등 험한 말이 튀어나오는 걸 참을 수 없다. 동행자가 있으니 전력으로 참았다만. 차가 달리는 길을 따라 모래바람이 구름처럼 일어나고 물론 그 또한 탑승자의 눈과 코를 가격한다. 이때 서브 아이템으로 준비해 두었던 마스크나 스카프를 장착해보자. 
 
새벽녘 트래킹을 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
화산재가 쌓인 트래킹 길
 
 
정상을 만나기 위한 고군분투

피나투보 화산 분화구까지 약 5km를 남겨둔 지점부터 본격적인 트래킹이 시작된다. 양 옆에 날카롭게 깎인 언덕을 낀 트래킹 길은 울퉁불퉁 거칠다. 길조차도 어지러이 휘어지는데, 곳곳에 분화구인 칼데라호에서부터 흐르는 물이 길을 뚝뚝 끊는다. 졸졸 흐르는 물의 흔적(?) 정도가 아니다. 허벅지까지 물이 찰 정도로 깊이도 있고, 물살도 거센데다 적어도 대여섯 발자국은 걸어야 넘어갈 수 있다. 때문에 물에 젖어도 괜찮은 신발이 필수 아이템인 것이다. 무엇보다 퀘스트의 난이도를 결정하는 요소는 ‘비’다. 한두 방울로 시작한 빗방울은 화산을 오르는 내내 심화돼 결국 빗줄기가 되고 말았다. 건기에는 비 대신 화산재와 모래바람이 불어 모험가를 시험한다. 

절반쯤 올라갔을까, 나무로 지은 허름한 산장 같은 것이 나온다. 게임으로 치자면 본격적인 던전 입구라고 할 수 있겠다. 실은 잠발레스와 탈락의 지역 경계다. 간단한 신상 정보를 적으면 문제없이 통과다. 본격적인 던전 입구라고 칭한 것은 이 경계부터 트래킹 길이 더욱 가팔라지고 협곡이 깊어지기 때문이다. 모래와 자갈을 밟으며 시작한 길은 웅크린 곰만한 바위가 산적한 길로 바뀐다. 활화산임을 입증하듯 드문드문 훈훈한 공기나 미지근한 기운을 마주할 수도 있다. 

그리고 풀이 우거진 좁다란 길을 통과하면 드디어, 칼데라호를 만난다. 정상에 오르면 찬란하게 빛날 줄 알았던 칼데라호는 거칠어진 빗방울과 수북한 안개에 가려졌다. 산등성이를 따라 매섭게 내리 꽂히는 바람만이 이곳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는 요소. 얼핏 망망대해처럼 느껴지는 칼데라호와 반듯하게 손으로 그려놓은 듯 칼데라를 둘러싸고 있는 산머리를 볼 수 있다. 역시 정상의 아우라는 다르다. 선명히 보이진 않지만 2시간을 빠듯이 걸어온 보람이 있다. 엔돌핀이 솟아나 오히려 정상에 오르자 힘이 솟는다. 필리핀에서는 물속으로 내려가는 액티비티만 경험해 봤던 탓인지 산, 특히 화산을 오르는 경험은 새롭기 그지없다. 혈기왕성한 젊은 모험가에겐 더없이 흥미진진. 이번 미션은 완료 땅땅!
 
 
클락 글·사진 = 차민경 기자 cham@ 
취재협조=필리핀항공, 필리핀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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