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巨富도움으로 설립
1919년 호주공군1비행대대 소속 조종사로 함께 근무하던 폴 맥기네스(1896-1952)와 허드슨휘시(1895-1974)는 호주남부의 퀀즈랜드와 북부의 노던 테리토리를 잇는 비행레이스에 필요한 장비를 설치하는 일을 맞이하던 중 자동차로 광활한 호주대륙을 횡단하는 대 모험을 벌이게 된다.
무려 51일간의 악전고투 끝에 육로탐험을 마치면서 「항공운송」의 필요성을 절감한 그들은 민간항공사 설립이라는 아이디어에 착안한다.
그러나 가진 것이라고는 비행기술과 모험심밖에 없던 이 두 젊은이들은 재정적이 문제로 좌절하고 만다. 그러던 중 우연히 강가의 진흙구덩이에 빠져 오도가도 못하던 피거스 맥마스터(1879-1950)라는 대부호의 자동차를 꺼내준 것이 인연이 되어 그들은 맥마스터로부터 항공사 설립에 필요한 재정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된다. 광활하고 험난한 호주대륙에서는 자동차여행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비행기를 이용해야 한다는 것과 누군가가 재정지원을 해준다면 자신들이 항공운송회사를 설립하겠다는 새로운 아이디어에 당시의 거부 맥마스터가 선뜻 재정후원에 나선 것이다.
그로부터 7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경이적인 무사고 신기록을 수립하며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항공사로 정평이 나있는 콴타스의 역사가 시작된 순간이다.
항공택시서비스 시작
1920년 8월 「웨스트 퀸즈랜드 오토 에어리얼 서비스」라는 호주 최초이자 세계 두 번째인 민간 항공사가 탄생하게 되고 AVRO504K라는 2인승 단발 프로펠러 2대로 이른바 항공택시 서비스를 시작하게 된다.
「웨스트 퀸즈랜드…」는 그 후 「퀸즈랜드&노던 테리토리 에어리얼 서비스(Queenslands and Northern Teritory Aerial Vervices Ltd:QNATAS)」로 명칭을 바꾸고 우편물 배달, 환자후송, 항공택시서비스를 하면서 콴타스는 번창해갔다. 호주특유의 험난한 지형과 광활함 때문에 항공사업은 그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되고 콴타스는 세계 각국에서 개발되는 새로운 기종들을 가장 먼저 구입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에 성장을 거듭한다.
전직 공군조종사들인 콴타스의 경영진들은 훌륭한 기종보유와 안전 검검을 회사경영의 중요한 원칙으로 고수하게 된다. ▲보유항공기는 적어도 5∼6년마다 새로운 기종으로 교체, 항상 신 기종을 유지할 것 ▲안전 검검과 조종사들의 비행교육을 회사의 최우선 경영과제로 삼을 것, 콴타스는 지금까지 이 두 가지를 철칙으로 삼고 있다.
百50個도시 취항
1947년 국영항공사로 탈바꿈한 뒤 지난 9월 호주 국내선담당의 오스트렐리안항공과 합병, 오는 93년 민영으로의 재 복귀를 앞두고 있는 콴타스는 현재 50개국 1백50개 도시에 취항하고 있다.
서울에는 지난해 11월2일 서울-시드니 직항로를 개설, 서울취항 1주년을 맞고 있으며 지난달 25일 부터는 주2회로 1회를 증편, 매주 월요일과 토요일 운항하고 있다.
콴타스를 이용해 호주를 여행할 경우 시드니공항에서의 입국수속과 별도의 수화물 탁송 절차없이 내린 터미널에서 바로 호주의 다른 도시로 가는 연결 편을 갈아탈 수 있다.
호주나 뉴질랜드의 각 도시, 다른 나라를 거쳐 호주나 뉴질랜드로 가는 여행안내 및 예약, 발권 등 에 관한 문의는 조선호텔 1층에 있는 콴타스 트래블센터(전화777-6871∼3)로 연락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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