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 너머를 살랑대는 바람은 나의 여행을 축복하는 성배다. 일렁이는 물결은 지금의 나와 닮았다. 한 템포 늦춰서 갈 수 있는 이 시간에 맞서, 우린 아주 많은 것들을 주워 갈 수 있었다. 반듯한 훼리에 올라탔다. 일본에서 배를 타 보는 것도, 배를 타고 하룻밤을 꼬박 보내 보는 것도 처음이다. 외국인 보다는 내국인이 훨씬 많은 탑승객들 사이에 우두커니 섰다. 여행은 시간조절이 생명이라고, 신칸센을 이용해 빠르게 목적지에 도달하면 되지 않나 싶었다. 훼리 여행의 목적을 전혀 간파하지 못한 채 말이다. 꼬불꼬불 미로처럼 연결된 6층 구석
경주와 부산 사이, 울산이 있다. 수없이 여행했던 두 도시 사이에 있건만 울산은 처음이다. 거대한 공장단지의 이미지만 떠올랐기 때문이었으리라. 섣부른 편견은 울산에 발을 디디며 깨져버렸다. 슬도의 거문고 바람을 맞으며, 대왕암공원의 꽃마중을 받으며. 그러니 실로 여행이란 놀라운 것이 아닌가. 슬도의 하얀 등대를 끼고 계속 걷다보면 방파제를 따라 낚시대가 즐비하다. 오래 기다릴 것도 없이 이곳저곳에서 척척 낚시대를 들어올리는데, 매번 월척이다. 손바닥만한 물고기가 펄떡이며 올라온다. 무엇인지 물으니 전어란다. 빨리 낚시대를 내려야하는
경주와 부산 사이, 울산이 있다. 수없이 여행했던 두 도시 사이에 있건만 울산은 처음이다. 거대한 공장단지의 이미지만 떠올랐기 때문이었으리라. 섣부른 편견은 울산에 발을 디디며 깨져버렸다. 슬도의 거문고 바람을 맞으며, 대왕암공원의 꽃마중을 받으며. 그러니 실로 여행이란 놀라운 것이 아닌가. 8차선 도로가 시원하게 깔린 도심을 지나간다. 공장단지의 높은 굴뚝이 솟아있고 거리에는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이 지나다닌다. 중공업, 석유화학, 조선업 등 2차 산업이 도시의 근간을 이루는 울산의 모습이다. 그러고 보면 울산이 산업도시로 이미지를
잘 잤어? 난 잘 잤는데…. 아내의 아침인사에 고개를 살짝 가로젓는다. 아무리 해랑이지만 잠귀 밝고 예민한 승객은 어쩔 수 없나보다. 경주역을 출발한 해랑은 승객들의 숙면 유도를 위해 11시부터 새벽 3시까지 4시간 정도 영주역에 정차했는데, 다시 출발할 때 덜커덩 닥친 위기를 넘지 못하고 깼다. 승무원은 미리 예견했다는 듯 둘째 밤부터는 적응해서 푹 자니까 다음에는 2박3일 여행상품을 이용하라고 농을 던진다. 2박3일이면 전국일주인데 더 재미있겠다, 아내가 덥석 미끼를 문다. 해랑의 매력에 빠져 14번이나 탑승한 일본인 고객이 있
서울역을 출발한 해랑은 중간 정차역에서 나머지 승객들을 모두 태우더니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목적지는 경주다. 객실 스피커로 이벤트칸 ‘포시즌’으로 모이라는 안내 방송이 나온다. 오리엔테이션 하려나 보네, 열차 탐험도 할 겸 일찍 나선다. 복도를 따라 열차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누빈다. 총 여덟 량 중 정중앙의 두 량을 카페와 이벤트 공간으로 꾸몄고, 그 앞뒤로 세 량씩 객실을 배치한 구조다. 남자들은 특히 4호칸과 5호칸을 주목한다. 카페 ‘선라이즈’와 이벤트 공간 ‘포시즌’이다. 술과 안주와 음료와 간식과 각종 요깃거리가
아내랑 기차여행에 올랐다. 우리나라 유일무이의 럭셔리 침대 열차. 둘이어야 비로소 온전한 하나라는 닮은 점 덕이었을까, 레일도 부부를 아늑하게 안았다. 기차로 움직이고 기차에서 먹고 기차와 함께 잠든 1박2일 해랑 기차여행기다. 복도가 마치 오리엔트 특급열차 같지 않아? 꽤 화려하네, 칸마다 객실 모양이 다른가봐…. 원래 저랬었나 싶을 정도로 아내는 오늘 유독 호기심이 많다. 설레서겠지. 우리나라 유일의 침대열차에 처음 올랐으니 그럴 만도 하다. ‘레일 크루즈’라 불리는 이다. 2008년 11월 국내 최초로 ‘호텔식
타임머신을 타고 군산의 시간을 거닐었다. 유년의 기억을 징검다리처럼 통통 건넜더니 일제 강점기 아픈 시대에도 닿았다. 시간에는 힘이 있다. 동네 구멍가게 앞에서 이런 심오한 생각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내가 어릴 적 살던 곳에도 꼭 이만 한 슈퍼가 있었다. 학교가 파하면 어김없이 들러 군것질을 하곤 했는데…. 있는지도 몰랐던 기억들이 여기서야 문득 떠오른 것이다. 20년을 훌쩍 뛰어넘은 오후였다. 군산 근대역사거리였다. 그러고 보니 마을 한편에 자리한 초원사진관도 20여 년 전 그 어디쯤에 머물러 있어 뵌다. 1998년 개봉한 영
가장 파리다울 파리를 궁리하다 결국 디저트를 택했다.내로라하는 스타 셰프들의 농염한 맛을 따랐다. 생제르맹 데프레 Saint-Germain-des-Pres‘파리의 심장’이라 불리는 곳으로, 파리 6구에 위치한다. 1940~1950년대 사르트르(Jean-Paul Sartr),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 등 철학자, 예술가들이 활약하던 주 무대였다. 유서 깊은 카페들과 오래된 서점 등 작은 가게들이 한데 모인 생제르맹 데프레는 파리지앵들의 일상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곳 중 하나다.생제르맹 데프레 푸드 투어매주
남도 답사 1번지. 진부하다고도 할 법하지만 이보다 더 적절한 말이 또 있을까. 하나의 거대한 예술촌이 된 해남의 구석구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예술이 꽃 피는 그곳으로. 비자나무 숲에 바람 스밀 때우거진 비자나무 숲 사이로 바람이 스며들자 ‘쏴아’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비가 쏟아져 내리는 것처럼. 고산 윤선도도 아마 같은 생각이었겠지. 고택 사랑채에 붙은 ‘녹우당’이라는 이름도 바로 그 소리에서 영감을 얻어 지었다고 하니 말이다.녹우당과 그 일원은 윤선도의 자택이자, 해남 윤씨의 종가가 이어져 내려오는 곳이다. 이 고택이 처음부
볼 때마다, 갈 때마다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는 홍콩이 올해 여행자를 위해 준비한 비장의 무기는? 지난해 홍콩 여행의 히트 스폿이었던 올드타운센트럴에서 시작한 여정은 오늘 그리고 내일 흥행이 확정된 삼수이포와 스탠리로 이어졌다. ●노란 가스등 아래 올드타운센트럴90년대 홍콩영화의 감성에 취해본 적 있다면, 당신에게 올드타운센트럴은 ‘홍콩의 거리’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홍콩섬 서쪽, 센트럴 일대를 칭하는 올드타운센트럴은 높은 고층건물과 어느 곳보다 빠른 신식문물이 들어오는 장소이지만 동시에 오랜 역사가 켜켜이 쌓인 노포, 거
섬 여기저기 적힌 ‘나미나라 공화국’이라는 표시가 이곳은 또 다른 세상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살던 도시와는 다른 곳, 남이섬을 음미했다. 공화국이라는 이름을 붙일 만큼 남이섬은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별도의 국기와 화폐까지 있을 정도다. 배를 타는 입구와 출구를 입국장, 출국장이라 부르고 섬 안에는 중앙은행과 우체국까지 있다. 사실 이 모든 것을 굳이 나열하지 않고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나의 도시와는 확연히 다른 곳임을. 키 큰 나무들이 쭉쭉 뻗은 길과 길 사이에는 청설모, 다람쥐, 토끼들이 뛰놀고 있었다. 자동차와 횡단보
두툼한 이불을 돌돌 말고 있다가 별안간 뛰쳐나가 수영장으로 몸을 던졌다.그래, 이게 바로 풀빌라의 맛이지. 워터파크가 있는 대형 리조트가 가족의 것이라면 프라이빗하고 럭셔리한 공간이 있는 풀빌라는 나, 그리고 연인의 것이다. 외딴 섬에 온 듯, 넓은 수영장과 객실에서 망중한알린타 푸켓 리조트 & 스파 Aleenta Phuket Resort & Spa풀빌라 단 34채. 복층 구조의 풀억세스룸 9개를 더해도 총 43개 객실에 불과한 작은 리조트다. 그러나 규모는 이곳에서 한계가 될 수 없다. 작기 때문에 더 많이 고객에게
‘웃뜨르’에는 제주도 사람들만의 정서가 깊게 배어 있다. ‘위쪽 들녘’이라는 단순한 뜻풀이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다. 설움의 상징에서 이제는 희망의 아이콘으로 부상했다. 웃뜨르는 위쪽 들녘이라는 뜻의 제주도 방언이다. 외지인에게는 그저 수많은 제주도 방언 중 하나일 뿐이겠지만 제주도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아니 그럴 수 없다. 그들에게 위쪽은 변방이었고 오지였고 척박한 터전이었다. 그래서 서러웠고 외로웠고 고됐다. 단순한 뜻풀이로는 이해할 수 없는 그들만의 정서가 짙게 밴 이유다. 그 웃뜨르가 탈바꿈했다. 설움의 상징에서 이제는
임실에 치즈라. 반전 없는 조합이지만, 그렇다고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는 뜻은 아니다. 고소하고 쫄깃한 맛, 임실에는 그 이상의 이야기와 재미가 있었으니. 임실 치즈 테마파크터덜터덜. 임실 치즈마을로 향하는 수단은 자동차도 자전거도 아니었다. 논밭을 가로지르는 경운기다. 눈치 챘을까. 반전이 없다 했지만 반전이 있는 게 임실의 반전이란 사실을. 장담한다. 임실 하면 떠오르는 단어 중에 ‘지정환’ 신부는 당연히 있을 거라고. 지정환 신부는 벨기에 출신으로 본명은 디디에 세스테 벤스다. 1964년 임실 성당에 주임신부로 부임한 이후
The Sands Khao Lak 짧은 비가 그쳐 한숨 더위가 죽고 난 뒤, 썬베드에 누워있다면. 풍선처럼 부푼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이쪽저쪽에서 터져나오고, 수영장 위의 오색 튜브는 방울방울 그림자가 되고, 오래전 사두었던 책 한 권을 꼼꼼히 더듬으며 읽어내려가고 있다면. 카오락 더샌즈에서 당신이 가족을 위해 해야 할 단 한 가지는 오로지 ‘사랑하라’는 것, 그것뿐이다. 패밀리룸에 배치된 아동을 위한 침대. 아래에 침대 하나가 더 숨어있다. 침대를 기준으로 오른쪽으로 메인 침실이, 왼쪽으로는 욕실이 자리한다●온가족이 함께 자는 패밀
통영의 한 섬 한 섬을 걸으면, 수많은 단편소설들 중 마음에 드는 것만 골라 읽는 기분에 빠진다. 바다 위에 핀 연꽃, 연화도도 그렇다. 통영의 섬 중 연화도는 특히 불교와 인연이 깊다. 불교의 상징인 연꽃에서 이름을 딴 것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조선시대 때 억불정책으로 핍박을 받았던 스님들이 이 섬으로 들어와 불공을 드리기 시작했다고 한다.통영항이나 삼덕항에서 한 시간 정도의 뱃길이면 연화도에 닿는다. 정겨운 섬 마을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조그마한 연화분교가 나오는데, 몇 되지 않는 아이들 대신 동백 목련 봄꽃들이 수줍게 미소
마음이 뻐근해지는 DMZ 여행끊어진 국토의 허리는 우리 민족이 50년 넘게 앓고 있는 요통이다. 그러나 욱신거릴수록 주무르고 두들기며 관심을 쏟아야 하는 법. 철원 백마고지역으로 향하는 DMZ 트레인이 치유의 몸짓인 이유다. 노동당사안보여행에서 돌아오는 길 쏟아지는 폭격, 한국전 사상 가장 치열했다는 철의 삼각지 전투 등은 철원의 모든 것을 파괴했다. 그나마 가장 원형을 가장 잘 유지하고 있는 근대건축은 노동당사다. 1946년 주민들을 강제동원하고 모금까지 해서 지었다는 노동당사는 연건평 1,900여 평방미터 규모의 큰 건축물이다.
끊어진 국토의 허리는 우리 민족이 50년 넘게 앓고 있는 요통이다. 그러나 욱신거릴수록 주무르고 두들기며 관심을 쏟아야 하는 법. 철원 백마고지역으로 향하는 DMZ 트레인이 치유의 몸짓인 이유다. 금강산 철교 체험시간을 달리는 기차 기차가 ‘현재’를 출발했다. 도심의 고층빌딩숲과 아파트촌을 지나 북으로, 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기차가 철로를 휘감으며 질주하자 시간의 태엽도 뒤로 감기기 시작했다. 경원선의 시간은 10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14년 8월14일 서울에서 원산까지 223.7km가 개통됐다. 그러나 분단과 함께
믿고 떠납니다 … 남도여행 ●낙조가 아름다운 백수해안노을길 국토해양부가 선정한 우리나라 아름다운 길 100선 중 9번째로 꼽힌 백수해안노을길은 16.5km 이르는 해안길이다. 바닷길 곳곳으로 데크 산책로가 뻗어있어 바닷바람을 맞으며 해색을 감상하기에 안성맞춤. 특히 이름에서 암시하듯 칠산바다로 쏟아져내려가는 듯 한 석양 노을을 보기에 최적의 명소로,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하지만 굳이 일몰 시간대가 아니어도 좋다. 해안절벽 사이사이 솟아 오른 바위와 암초에 부닥치며 굽이치는 파도 또한 훌륭한 볼거리다. ●여독을 씻어내는 담양온
믿고 떠납니다 … 남도여행걱정했다. 하필 영광과 무안이라서. 아니나 다를까 여행지에 다다르니 “여기에 오다니 전남 영광입니다”라는 몹쓸 아재개그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하지만 남도의 음식을 맛보고 풍경을 담고 나면 이내 말장난도 즐겁게 받아치게 된다. “그런 개그는 전남 무안하네요”●하늘엔 영광, 땅에는 굴비 역시나 먹거리의 고장다웠다. 영광 법성포의 한정식집에서 시작한 여행은 풍성했다. 지역 대표음식인 굴비에 게장, 홍어삼합, 각종 밑반찬이 오르니 상에 공간이 부족해 매운탕을 뒷전으로 밀어둬야 할 지경이었다. ‘진짜배기 굴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