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누부터 파스까지 착실히도 담았다. 행여나 부족할까 치약도 몇 개 더 넣었다. 장바구니가 넘쳐난다. 1층부터 꼭대기층까지 전부 휩쓸고 이제 막 계산대로 향하려는데 번쩍, 눈이 떠졌다. 꿈이었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다. 일본에서 신나게 쇼핑하는 꿈을 꿨는데, 잠에서 깨니 더 가고 싶어졌다는 웃지 못할 얘기다. 온라인 여행 커뮤니티는 여느 때보다 북새통이다. 여행가고 싶다는 제목의 글이 하루에도 수십 개씩 쏟아진다. 질문은 또 어찌나 많이 올라오는지, 아예 한 카페 관리자는 ‘지금 여행 가도 될까요?’ 식의 글을 올리면
당연한 얘기겠지만 3~4월 예정돼 있던 출장과 휴가가 여럿 취소됐다. 하노이 출장 중이었던 기자의 어머니는 현지에서 리턴편 운항이 중단되는 바람에 아시아나항공의 페리 운항 마지막 항공편을 간신히 타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번 주에 예정돼 있는 괌 여행은 당장 어떻게 될지 미지수다. 상대 국가에서 막으면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상황이니, 불안하다. 기자를 포함한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제 상황이다. 설 연휴 직후부터 두 달 가까이 여행업계는 여전히 전쟁을 치르고 있다. 이런 재난 사태에 여행을 취소해주지 못하겠다는 게 맞냐며 따지는
첫 번째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지 한 달이 훌쩍 넘었다. 우리 사회 모두가 이른 시간에 진정되길 바라고 있지만 장기전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동시에 대구를 중심으로 월세 인하, 음식점 재고 소진 캠페인, 마스크 기부 등 온정이 담긴 소식도 들려오고 있다. 힘든 시기이지만 서로서로 도우며 위기를 헤쳐나가고 있다. 반면 민간 차원에서 도움받는 게 제한적인 여행업계는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정부가 이번 사태로 피해를 가장 많이 보고 있는 주요 산업으로 여행·항공업을 꼽았고, 여러 지원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그렇지만 혜택이
‘교민도 대한민국 국민이다’ 정부의 우한 전세기 투입 소식에 갑론을박이 벌어지던 찰나 마음을 울린 한 마디였다. 정부는 우한에 3차에 걸쳐 전세기를 투입했고, 일본 크루즈에는 전용기를 보냈다. 국경을 넘은 국가의 손길이었다. 코로나19 여파가 미치지 않는 곳이 어디 있으랴. 태국에서 한 현지 여행사의 절절한 호소가 도착했다. 그는 “4월까지 예약이 단 한 건도 없는 실정이며, 현지 여행사들은 2월 한 달만 하더라도 90%가 넘는 취소 러시를 겪고 있다”고 전했다. 2월17일 청와대에는 ‘어느 가정의 가장이고, 애들의 아빠·엄마인 우
심장이 내려앉고, 손은 떨려온다. 앞머리는 땀으로 꼴사납게 젖었다. 집으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를 받고 나서의 일이다. 수화기 너머로 난데없는 호통과 짜증이 귀에 꽂혔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같은 아파트 주민이었다. 요지는 주차하기 어려우니 차를 빼달라는 얘기였다. 싸늘했다. 비난은 비수가 되어 가슴에 날아와 꽂혔다. 그저 말 한 마디일 뿐인데, 대면하지 않은 탓에 더 진한 상처로 남았다. 요즘 여행사의 수화기는 쉴 틈이 없다. 1분이 멀다하고 고객들의 불만에 찬 목소리가 이곳저곳에서 울려 퍼진다. 코로나19로 예약 취소가 물밀 듯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가 여행업계를 순식간에 사지로 몰아가는 듯하다. 국내 토종 여행사, 스타트업, 글로벌 OTA 등 너나 할 것 없이 모두에게 적신호가 켜졌다. 업계 전체에 곡소리가 흐른다. 설 연휴 이후 약 열흘 사이 주요 여행사들은 수만 건에 달하는 취소를 처리하느라 혼이 났다. 단골손님 위주로 영업하던 소규모 여행사들의 낯빛도 어둡다. 혹자는 ‘지금 당장 월급을 못 준다고 해도 이상한 상황이 아닐 정도’라고도 말할 정도다. 취소 폭탄을 맞았는데 신규 예약마저 뚝 끊기면서 곡간이 텅 비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벌써 여행사들의 긴
2010년부터 스마트폰이 일상화되면서 모바일 게임이 쏟아졌다. 줄곧 게임을 곁에 뒀지만 모바일 게임을 진득하게 한 기억은 없다. 본인의 실력보다는 ‘현질(현금으로 게임 내 아이템을 구매하는 행위)’을 하게끔 환경을 조성하기 때문이다. 또 현질도 중독이라 필요 이상의 비용을 지출하게 된다.여행업계에도 다양한 형태로 현질이 존재하는데, 그 끝은 홈쇼핑인 것 같다. 많은 여행사들이 황금 시간대를 차지하기 위해 큰 비용을 쓰고 있다. 그렇지만 들이는 돈에 비해 성과는 점점 더 떨어지고 있다. 단적으로 모객력이 5년 사이 크게 줄어들었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해를 시작하는 시점이다. 민족의 최대 명절인 설까지 겹쳤으니 기분 좋은 상여금 소식이 종종 들려온다. 눈이 휘둥그레지는 상여금 소식을 듣고 여행사에 전화를 걸어 진짜냐 물었더니 오히려 조심스러운 답변이 돌아왔다. 좋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어딘지 밝히지 말아달라는 당부도 함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해 여행업계는 유난히 부침이 많았다. 지난해를 토닥이며 회고하려 했더니 연초부터 호주 화산에 중국 폐렴까지 악재가 들이닥쳤다. 한숨 돌릴 틈조차 주지 않으니 좋은 소식도 도리어 입 밖으로 꺼내기 조심스러울 수도
새해에도 취재원들의 한숨은 짙다. 꽤 오랫동안 여행업계의 사정이 어려웠고 지속되는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직업에 대한 회의감도 커진 듯하다. 올해는 제2의 인생을 맞이하기 위해 새로운 직종으로 이직을 준비하겠다는 여행인들의 말에 기대감과 포부보다는 씁쓸함이 더 감돌았다. 자발적인 자기 계발이라기보다 장기적인 생존을 위한 몸부림에 가까웠다. 요즘 가장 많이 듣는 (진담에 가까운)농담 몇 마디가 있다. “곧 자리가 사라질 것 같다”, “간신히 버티고 있다”와 같은 이야기다. 지난해 여름부터 일본 보이콧으로 인해 타격을 입은 여행사들은
2019년 11월 영국 프리미어리그(EPL) 토트넘에서 활약하고 있는 손흥민 선수가 상대팀 선수에게 깊은 태클을 시도했다가 탈이 났다. 상대 선수는 발목 골절상을 당했고 그대로 2019/20 시즌을 마감했다. 일반적인 퇴장과 부상 상황이지만, 이후 모습은 확연히 달랐다. 상대방 감독과 선수들이 라커룸까지 찾아가 자책하는 손흥민을 위로했다. 손흥민 또한 부상을 당한 선수에게 몇 번이나 위로의 말을 전했으며, 다음 경기에서 골을 넣고 기도 세리머니도 했다. 전 세계는 그들의 동업자 정신에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여행업계의 끝은 조금 달
이제 여행산업과 기술은 뗄 수 없는 관계에 이르렀다. 그동안 우리는 익스피디아나 부킹닷컴, 아고다, 트립닷컴 등 글로벌 여행 기업들을 ‘OTA(Online Travel Agency)’라고 통틀어 칭했지만 이들은 스스로를 ‘여행을 유통하는 IT기업’과 같은 맥락으로 정의한다. 세계 최대 가전전시회 CES에서는 내년 1월 처음으로 ‘여행&관광 마켓플레이스’를 신설하면서 기술이 관광산업에 미치는 영향 등을 조명할 예정이다. 빅데이터며 인공지능, 블록체인과 같은 용어도 여행산업에서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존재가 됐다. 한국의 많은 스타트업들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이다. 달력은 송년회 일정으로 빼곡하다. 올해 여행업계가 유독 힘들었던 만큼, 송년회 자리에서는 한 해를 돌아보며 서로를 토닥이고 내년을 기약하는 얘기가 오갔다. 여행사들은 저가 경쟁으로 인한 어려움을 털어놓기도 했다. 출혈경쟁임을 알면서도 고객들이 무조건 더 싼 상품을 찾으니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자성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여행상품을 선택하는 척도가 ‘저가’로 국한된 데는 가격만을 전략으로 내세운 여행업계의 잘못도 크다며, 정작 가장 중요한 상품의 질은 뒷전인 채 가격을 낮추는 데만 혈안이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