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0년 전부터 사모아 인들은 남태평양 정복에 나섰다. 뉴질랜드, 하와이, 피지 등 굵직한 24개의 섬과 부속섬들을 모조리 쓸어 담았다. 사모아가 건설한 남태평양 제국의 동쪽 끝은 모아이 석상으로 유명한 칠레령(領) 이스터 섬이다. 태평양의 절반에 해당하는 넓이다. 이 모든 섬들을 정복하는 데 수천 년이 걸렸다. 

200여 년 전 식민지 건설을 위해 태평양을 탐험하던 유럽인들이 처음으로 폴리네시아인들을 발견했을 때 이들은 여전히 석기 시대와 같은 삶을 살고 있었다고 한다. 다양한 고증에도 불구, 이런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드넓은 태평양을 오고 갈 수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많은 의문이 있었다. 

남태평양에서 하와이로 가려면 3개의 전혀 다른 해류를 거쳐야 하고 바람의 방향도 다르다. 항해술과 장비가 발달한 지금도 쉽지 않은 망망대해를 나침반도, 지도도 없이 판자와 코코넛 잎을 엮어 만든 작은 카누로 건넜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역사상 가장 넓은 해양제국을 건설한 사모아는 모든 패권국가들이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돛 하나만을 의지해 바다를 건너야 했기 때문에 고대 항해에서 바람의 역할은 8할이 넘었으며 나머지 2할은 조류와 해류의 영향을 입었다. 바람의 방향과 시기를 예민하게 감지하면서 계절풍의 원리를 터득하게 되고, 짧게는 일주일, 몇달, 심지어는 해를 넘겨 신풍(信風)을 기다려 먼 바다로 일엽편주(一葉片舟)를 띄운다. 

물론 예측 불허의 기상 변화 앞에서 무기력할 수밖에 없었다. 출발지에서 목적지를 뻔히 바라볼 수 있는데도 불시에 해안을 이탈하는 조난사고가 끊이질 않았다. 사모아 사람들은 ‘돌아올 수 없는 길’임을 분명히 알고도 수도 없는 실패를 불사하며 북상을 시도해, 마침내 하와이를 발견한 것으로 짐작된다. 

폴리네시안의 사회는 대부분 명확한 위계 서열이 있는 피라미드식 구조로 운영되며, 모든 것을 공유하는 문화가 있다. 이들에게 부족은 하나의 완전한 세상으로 구성원은 집단의 일부다. 양파껍질 속에 쌓인 것처럼 개인은 그를 둘러 싼 가족과 조상의 이야기로 ‘정의'된다. 지금도 이들에게 가족이란 존재 이유이자 신앙과 같은 절대적인 대상이다. 이들이 부족을 떠난다는 것은, 대학 때 혼자 배낭여행을 떠나는 수준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일생일대의 결단이었다. 

단지 더 넓은 영토와 많은 수확물을 얻고자 하는 인간의 ‘욕심’때문이라 치부하기엔, 이들이 사는 환경은 천국 중에 천국이다. 완벽한 날씨와 나무에는 신선한 열대과일이, 바다에는 생선이 지천인 환경에서 물질과 명예를 위해 가족을 등진다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다. 

사모아 사람들은 죽으면 영혼이 서쪽 끝의 섬에서 뛰어오르며 조상들의 고향으로 되돌아간다고 믿었다. 사람이 죽으면 (하늘로) “돌아가셨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뜻에서 소천(召天)이라고도 한다. 이들은 누군가를 헤치고 약탈하기 위함이 아닌, “나를 찾는 여행”을 위해 인생을 걸었다. 목숨을 걸고 도달하고자 했던 서쪽 섬, 하와이는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가 있는 땅이라 믿었다. 

사모아를 이루는 10개의 섬 중 가장 큰 섬의 이름은 사바이(Savaii)다. 하와이의 철자는 ‘Hawaii’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하와이란 이름은 본래 폴리네시아 서부의 최초 정착지라고 알려진 전설 속의 지명 ‘하와이키'로부터 유래했다고 한다. 사모아어로 ‘하바이키(Havaiki)’란 서쪽으로라는 뜻이다. 
 
 
박재아
주한 사모아관광청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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