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조나 세면대에는 작은 구멍이 뚫려있다. 이를 닦을 때 물을 틀어놓고 닦는 나쁜 습관이 있어서 자주 실수를 하는데, 그 구멍이 있어 홍수를 종종 막아준다. 댐에 물이 가득차면 수문을 열어 물을 흘려보낸다. 풍선도 많이 불면 터진다. 자연의 법칙은 유입이 늘어나면 용적을 키우는 게 아니라 덜어 내고 줄이도록 설계돼 있다. 

이제 고전적 의미의 풍요의 시대는 꽤 지나온 듯하다. 지금은 과장하고 너스레를 떨기보다 단순하고 명료하고 압축된 것이 사랑받는다. 사람들은 더 많이 소유하기보다, 특별하고 희소한 것을 찾는다. 돈이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물건으론 만족을 얻지 못한다. 예술품이자 골동품인 앤티크를 찾고, 대량 생산품 중에서도 세월의 흔적과 희소성이 담긴 빈티지 제품을 찾고, 불편하고 번거롭더라도 수작업으로 직접 물건을 만들기도 한다. 대량 생산의 시대, 첨단기계화와 IT 전성시대에 오히려 장인정신을 탐한다.

핸드메이드는 만드는 데 시간도 들고, 재료비도 들고, 실패하면 또 만들어야 하는 등 소비 자체를 위한 선택으로선 그리 합리적이지 않다. 능숙해지기 전까진 그냥 완제품을 사서 쓰는 것보다 돈이 훨씬 더 들 때도 많다. 그런 불편함과 경제적 합리성에 역행하면서까지 많은 사람들이 DIY, 핸드메이드가 주는 성취감과 재미에 빠져든다. 만들어 쓰는 게 목적이 아니라, 만드는 과정과 그 즐거움 자체가 목적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것을 만드는 그 즐거움, 우린 그 즐거움 자체를 소비한다. 

지금도 가끔 아이들에게 인형을 만들어준다. 시중에서는 바느질도 단단하고 소재도 좋은 것들을 2~3만원이면 산다. 핸드메이드 인형은 재료 값 만도 그 가격을 훌쩍 넘는다. 돈도 돈이지만 평소 4시간 정도 밖에 못 자는 나로선 잠을 더 줄여야 하는 엄청난 각오가 필요하다. 하지만 인형을 받았을 때 활짝 웃을 그 한 순간을 떠올리면 꾸벅꾸벅 졸다 바늘에 찔려가면서도 억척스레 한땀한땀 뜨게 된다. 

지난 달 둘째가 뇌수막염을 심하게 앓았다. 병원에 꽤 오래 입원을 했는데, 병원에 “산책 나온 모리”라는 이름을 지어준 당나귀 인형을 데려가고 싶다고 했다. 아들 4살 때 만들어 준 작고 수수한 인상을 가진 인형이다. 입원해 있는 동안 정말 친구처럼 말도하고 산책도 시켜주며 심심한 입원 생활을 잘 견뎌냈다. 모리를 그렇게 아끼고 친하게 지내고 있는지 몰랐는데, 무심했단 생각에 울컥했다. 
 

오랫만에 출장이 아닌 여행을 와서 이 글을 쓴다. 밀린 일이 너무 많아 이런 사치를 부리면 안 되는데, 도망치듯 와버렸다. 집에도 미안하고, 일로도 기회비용이 큰 만큼 이 곳에서의 시간이 더 소중하다. 값을 따진다면 10배 정도는 바가지를 쓴 셈이다. 비싸게 주고 산 시간인 만큼 무엇 하나도 놓치고 싶지않은 마음에 모든 감각을 열어두고 있다. 

연애를 할 때도 그렇지 않은가. 쉽게 만난 인연과는 남은 추억이 별로 없다. 어렵게 얻은 사랑이 더 애절하고, 받은 것 보다 준 사랑이 더 클 때 상대를 더 많이 사랑하게 된다. 핸드메이드도 그런게 아닐까? 사람이 하루 밥 세끼 이상을 먹지 못하듯, 여럿을 동시에 충만히 사랑하지 못하듯, 소중한 것은 대부분 한 손으로 쥐어진다. 합리적이진 않지만 오롯이 내 것인 것들, 적지만 값지다. 
 
박재아
인도네시아관광청 서울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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