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연일 계속된 폭염 탓인지 늘어난 업무량에 지친 탓인지 세탁기가 말썽이다. AS를 받으려 하니 센서가 고장인 것 같아 차라리 교체를 하는 편이 좋겠다는 진단이 나왔다. 10년을 넘게 사용했으니 은퇴할 때도 된 것 같아 군소리 없이 후임을 알아 봤다. 마침 동네 마트의 전자 제품 코너에 맘에 드는 제품이 있어 가격을 알아보니 89만원이다. 기종을 메모해 두고 가전 대리점에 가니 가격이 99만원이고 인터넷으로 알아보니 79만원이다. 가격이 비싼 이유를 물으니 문제가 생겼을 경우 대리점에서 알아서 처리해 주는 점이 가장 큰 차이라는 설명이 돌아왔다. 인터넷으로 구입을 했다. 배송이 오래 걸렸지만 제품은 문제가 없었고 사다리차나 폐가전 수거에 추가 비용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2 태국의 한인 가이드 284명이 해외 가이드 최초로 노조를 결성해 한국노총에 가입했다. 관계자들은 한국에서 1인 시위도 하고 언론 보도 등 여론의 주목도 받았지만 정작 여행사들과는 아직 의미 있는 만남을 갖지 못하고 있다. 패키지 여행사와 현지 가이드의 불편한 동거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태국 만의 일도 아니며 해묵은 갈등의 내용도 과거와 큰 차이가 없다. 이 논쟁의 중심에는 언제나 원가에 턱없이 모자란 덤핑 상품이 있다. 타사와의 경쟁과 가격만 따지는 소비자를 거론하며 어쩔 수 없다는 여행사의 반응도 여전하다. 문제가 있다는 점은 대부분 공감하지만 크게 달라진 바 없는 악순환이다. 모른 채 한해두해 넘기다 보니 패키지 여행에 대한 신뢰만 차곡차곡 깎여 나갔다.
 
#3. 가격을 따져 39만원 짜리 패키지를 선택한 소비자의 불만에 여행사는 ‘항공권만 50만원입니다’라고 억울함을 호소하고 싶을 수 있다. 뻔히 알면서 저가 상품을 택한 비용이라고 탓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가격을 따지는 것은 모든 소비자의 머리에는 같은 조건이라면 이라는 전제가 붙어 있기 마련이다. 20만원이 저렴해 인터넷으로 세탁기를 구입하면서 하자가 있는 물건이 올 거라고 생각하는 소비자는 없다. 그렇게 팔아도 되니까 그 가격에 상품을 내놓았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밑지는 장사’라는 상인의 말을 누구도 믿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가격 경쟁은 어디까지나 기업이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이뤄져야 한다. 흔히 말하는 협력사의 희생을 바탕으로 해서도 물론 안된다.
 
#4. 누구도 믿지 않는 ‘밑지는 장사’가 실제로 일어나는 이유는 시즌을 타는 여행 상품의 특성상 어쩔 수 없다고 할 수도 있다. 항공사는 성수기 좌석 공급을 무기로 비수기 좌석을 여행사에 밀어 내고 여행사는 성수기 물량을 내세워 비수기 적자의 감내를 랜드사에 요구한다. 항공 좌석과 호텔 객실 등 다양한 형태의 하드 블록도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식’의 가격 정책에 한 몫을 한다. 적자라도 면하자며 AD투어까지 진행되던 상품이 여름 성수기나 추석 연휴 같은 시기에는 극성수기라는 갑옷을 입고 천정부지로 가격이 올라간다. 항공사는 항공권 가격을 올리고 여행사는 여기에 더 많이 마진을 붙인다. 메뚜기도 한철이라고 벌 때 벌고 손해는 최소화 하는 것이 최선의 경영인 셈이다.

#5.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휴가철이면 어김없이 바가지 상술을 꼬집는 기사가 신문 방송에 등장한다. 주인 없는 해변과 계곡에 파라솔을 설치해 자릿세를 뜯어가고 크리스마스처럼 특별한 날에는 가격이 껑충 뛴 특별한 메뉴판을 들이미는 식당도 여전하다. 평창올림픽을 180일 앞두고는 벌써부터 한탕주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거세다. 10만원도 안하던 모텔의 숙박료가 이미 100만원에 육박하고 대회 기간 강릉의 아파트 월임대료는 1,000만원이 넘었다고 한다. 여행업은 그 정도는 아니라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일년 내내 일해서 며칠의 여행을 떠나는 대다수의 소비자에게 한철이라는 꼬리표를 단 이상 큰 메뚜기와 작은 메뚜기의 구분은 의미가 없다. 밑지는 장사는 이제 거짓말로 남겨 둬야 한다. 
 
 
김기남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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