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의 흥행가도는 10년 전 허니문 시장을 휩쓴 하와이만큼이나 위협적이다. 4~5시간 정도의 비행시간에, 저렴한 비용으로 휴양과 관광이 가능하기 때문에 베트남의 인기는 그야말로 폭발적이기까지 하다. 여기에 중국 시장이 막혀 단거리 취항지를 찾고 있는 저비용항공사(LCC)들도 베트남 시장에 속속 뛰어들고 있어 베트남 시장이 앞으로 얼마나 더 성장할지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제주항공이 하노이, 다낭에 이어 7월26일 나트랑에 취항했다. 지금까지 대한항공(주4회)만 다녔던 나트랑에도 LCC 훈풍이 불기 시작했다. 공사도 대규모로 진행 중이다. 앞으로 2~3년 사이에 이 많은 호텔과 리조트 건물들이 올라온다면, 나트랑의 현지발음처럼 “나 쨩!”의 시대가 도래 할 게 분명해 보인다.

지난 5월, 이런 와중에 바람을 쐬기보다는 ‘피우러’ 베트남에 다녀왔다. 인도네시아를 홍보하는 사람이 가장 핫한 경쟁지역의 관광통계에 보탬이 된 건 아쉬운 일이지만, 뭐가 그리 대단해서 몰려가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명색은 휴가였지만 이미 동기부터가 불손해 쉬기는 글러먹은 여행이었다. 지인의 소개로 나트랑의 <안 람 리트리트> 닌반 베이 리조트에서 묵었다. 

나트랑 도심을 빠져나오니 어선 몇 척이 정박해 있는 허름한 항구다. 저녁 7시가 넘은 시간이라 어스름이 진 바다를 달리기 시작하는데, 도심의 화려한 잔상 때문인지 섬과 바다뿐인 바다는 너무 심심하고 적막해 보인다. 그토록 적막한 터널 같은 바다를 지나니 아주 거대하고 화려한 연 꽃 한 송이가 갑자기 등장한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엉뚱한 위치에, 모양은 새 둥지 같기도 하고, 박혁거세의 알 같은 노랗고 둥그런 것이 말이다. 

세일즈 마케팅 디렉터인 빈(Vihn) 총 지배인에게 왜 하필이면 이런 적막한 곳에 ‘갑툭튀’ 하게 지었는지 물었다. 정부차원에서 계획적으로 닌반 베이 일대를 럭셔리 리조트 집산지로 만들기로 했고, 앞으로 몇 년 안에 큰 개발이 이루어질 거라고 한다. 여행업 하는 사람들에게는 자동반사적으로 입맛 당기는 이야기다. 

전체적으로 은은한 갈색 톤이 흐른다. 리조트의 상징이기도 한 레스토랑 디자인부터 테이블, 손잡이까지 모두 연꽃 문양 모티브를 썼다. ‘안 람’의 뜻이 무엇인지도 궁금했다. 창립자의 이름(트란 덕 람)에 ‘람’이 들어가 있어 주인의 이름을 따서 지은 이름인가 물었다. 직역하면 ‘peace with nature' 자연과의 공생, 평화라는 뜻이라고 한다. 

참 좋은 집 같은 느낌을 주는 리조트. 여기는 ‘몇 성급’으로 불리는지 물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이름 물어보듯 뻔한 질문이었다. 이 간단한 질문에 한참동안 도인의 현답을 들었다. 자연/공간/프라이버시/열림/문화 그리고, 숲/산/강/해변/대나무/돌/풀 같은 단어들을 열거한다.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 빈 아저씨, 생김새도 도인처럼 생겼다. 

생명이 태어나는 순간 숨 쉬고 먹고 자라듯, 맑은 피부를 가진 여인은 화장하지 않은 것이 더 아름답듯, 완벽히 아름다운 것은 완벽히 자연적인 것, 진정한 고매함, 럭셔리가 아닌가 싶다. 모든 물건의 색감, 질, 모양새가 완벽하게 통일성을 이루고 있다. 선풍기, 숟가락, 접시, 잼 통, 칫솔모조차 ‘안 람’의 어떠함을 말해주고 있었다.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는 공간이다. 먼저, 경쟁이라는 말이 무색하다는 생각을 했다. 모든 나라는 그 나라만의 분위기와 색깔이 있으니 말이다. 서로 헐뜯는 출혈 마케팅을 하는 시대는 지났다. 둘째, 특정 지역에 대해 특정한 관념을 갖는 것이 스스로에게 큰 손해라는 걸 느꼈다. 예를 들어 베트남에 대한 대표적인 수식어인 공산권이라는 관념을 예로 들면 북한, 러시아, 카자흐스탄 등 공산권으로 분류되는 나라들 안에서도 이 개념이 각각 다양하게 해석되고 삶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여행업을 하는 사람들은 어딜 가도 ‘인스펙션(답사)’ 본능이 발동한다. 이미 불손한 의도를 잔뜩 머금고 간 여행인지라 머무는 내내 계속 뭔가 보러 다니고, 물어보고 찍어댔다. 역시 제 돈 주고 가도 직업병은 못 버린다. 어디가도 쉬기는 글렀다. 
 
 
박재아
인도네시아관광청 서울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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