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예 모르면 몰라도 일단 알게 되면 빠져들 수밖에 없다는 말은 곶자왈을 두고 한 말 같았다. 제주의 허파로 불리는 제주만의 신비로운 숲 곶자왈, 그 아늑한 품에 안겼다. 
 
 
청수 곶자왈에 들었다. 숲의 울창함을 용케도 뚫은 5월의 햇살이 이곳저곳에서 반짝거렸고, 산새의 지저귐은 반주처럼 화음을 맞췄다. 그 숲길을 걷노라니 몸이 먼저 오랜 동안 잊혀졌던 ‘평온’의 기억을 되살려냈다. 평온하고도 평온하고, 또 평온했다. 제주 중산간 마을 서민들의 아픈 상처도 서려 있었다. 이곳 수목의 수령은 기껏해야 30~40년 정도여서 갸름하고 얄팍했다. 숯을 만들어 생계를 유지해야 했던 척박한 삶 때문에 잘려 나가고 불타 버렸던 탓이라고 한다. 이 또한 곶자왈의 곡절이요 질곡이니 오히려 곶자왈 탐방의 정서적 만족감을 키웠다. 왜 제주 사람들이 그토록 곶자왈을 자랑하고 아끼는지 이해할 만했다. 곶자왈 만의 자연은 그만큼 색달랐고 그래서 감흥도 남달랐다. 

곶자왈은 쉽게 말하면 화산암 지대 숲이다. 화산암들이 지반을 이루고 그 지반 위에 곶자왈 만의 생태가 독특한 풍광을 자아낸다. 제주 말로 ‘곶’은 ‘숲’이고 ‘자왈’은 ‘나무와 덩굴 따위가 마구 엉클어져서 수풀 같이 어수선하게 된 곳’을 뜻하니 ‘덤불 숲’이라고 할 수 있겠다. 화산암 돌무더기가 지반을 이루니 농사용으로는 쓸모가 없었다. 예부터 그저 방목지로 이용하거나 땔감을 얻고 숯을 만드는, 혹은 약초 같은 식물을 채취하는 장소로만 여겼던 이유다. 불모지에 가까웠지만 이제는 다르다. 세계에서 유일한 제주만의 독특한 식생이자 신비로운 숲으로 사랑 받고 있다. 

곶자왈의 독특한 생태는 어쩌면 곶자왈을 불모지로 만든 돌무더기 덕분인지도 모른다. 구멍이 숭숭 뚫린 화산암인지라 아무리 많은 비가 쏟아져도 고이지 않고 지하로 스며들며, 겨울에도 구멍을 타고 지하의 온기가 올라와 사시사철 푸르다고 한다. 바위를 덮은 이끼류와 고사리 같은 양치식물이 지표면을 장식하고, 그 위로 명가시나무, 개가시나무(환경부 멸종위기종 지정) 같은 이색 수종이 신비한 자태로 여기저기로 줄기를 뻗을 수 있는 이유다. 

정말 사시사철 푸를까? 겨울의 끝자락 2월 무렵에 교래 곶자왈에 들어서면서도 의구심은 가라앉지 않았다. 의심 많은 여행객을 맞은 것은, 촉촉한 바위와 그 바위를 덮은 파란 이끼류, 그리고 봄철만큼은 아니어도 나름 푸르른 잎을 펼친 고사리류였다. 푸른 기운이 여름 못지않았다. 한 여름이면 한껏 푸른 기세를 더하겠지…. 그래도 겨울인지라 줄기만 남은 수목과 높은 곳으로 갈수록 메마르는 바닥을 보면서 여름날 풍경을 상상했다. 성산 곶자왈 지대에 있는 비자림 역시 겨울에도 싱그러웠다. 비자림에서는 특히 여러 종류의 나무가 저마다의 자태로 선사하는 아름다움에 감동했다. 쭉쭉 하늘로 솟구치는가 하면 덩굴처럼 제 몸을 비비 꼬면서 서로 엉키기도 했다. 겨울에 즐기는 곶자왈 푸른 오솔길 산책은 그래서 더 호젓했다. 다른 계절의 골자왈은 어떨까, 다시 숲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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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김선주 기자 vagrant@trave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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