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푹 빠진 것이 있다. 와인이다. 선홍빛의 로제와인보다는 짙고 탁한 레드와인을 선호하는 편이다. 아직 와인을 제대로 배우려면 갈 길은 멀지만 포도 품종 서너 가지만 외고 쥐뿔도 모른 채 그저 마셔대기만 하던 시절과 비교하면 달라진 게 많다. 와인을 마시는 법이나 좋아하는 스타일의 와인을 찍어 맞추는(?) 스킬까지, 나름 입과 귀가 열리는 중이다. 

와인을 알수록 좋은 점은 또 있다. 출장이 즐거워졌다. 관심을 갖고 마시다 보니 와이너리 투어에서 가이드의 설명이 점점 들리기 시작했다. 유럽이나 미주 지역으로 출장을 가면 한 번쯤 들르게 되는 곳이 바로 와이너리 아니던가. 그 지역의 와인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맘에 드는 와인을 한두 병 고르는 재미가 쏠쏠해 졌다. 사실은 얼마 전 팸투어로 보르도에 다녀왔다. 와인의 도시 보르도 말이다. 지난해 6월 오픈한 와인 박물관에서만 반나절을 누비고 크고 작은 와인샵에 들러 제 돈 주고는 살 엄두도 나지 않는 비싼 와인도 테이스팅할 수 있었다. 테마 여행이 각광받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좋아하는 와인을 실컷 마시고 저렴한 가격에 사고, 관심 있었던 와이너리에도 가 보니 단순히 관광지만 들르는 것보다 훨씬 만족스럽고 풍성한 여행이 됐다. 

재밌는 일도 하나 생겼는데, 여행객들을 위해 개장한 샤또 레 까르므 오 브리옹(Chateau Les Carmes Haut Brion)에서 한국인 단체를 만난 것이다. 광명시 관계자들이었다. 양기대 광명시장을 비롯한 관계자들은 당시 국제식문화 사진전에서 광명 와인동굴과 한국의 와인을 알리기 위해 파리를 찾았고, 행사 일정이 끝난 후 스터디 투어로 보르도에 잠시 들렀다고 했다. 들어보니 광명동굴에서는 국내에서 생산되는 와인 175종을 판매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와인을 만든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은 적은 있지만 그 가짓수는 기대했던 것보다 더 많았다. 

국내에서도 와인 생산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국제와인품평회에 국내 와인을 출품하는 경우도 늘었고 기후조건에 맞는 포도품종 개발도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단다. 와인을 생산한다는 것은 와인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증거일 테다. 그럼 머지않아 더 재밌는 와인 투어가 많이 개발되지 않을까? 그렇다. 오늘 밤에도 와인을 마셔야 할 이유가 생겼다. 
 
 
손고은 기자 koeun@trave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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