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이다. 빼곡하게 잡힌 송년회나 내년 사업계획서보다 발을 동동 구르게 만드는 건 따로 있다. 남은 연차다. 바쁜 와중에 회사에서는 그동안에도 쓰지 못한 연차를 사용하라고 채근한다. 하지만 묻고 싶다. “정말 다 써도 되나요?” 내 것인 듯 내 것이 아닌 게 한국인 노동자들의 연차 아니던가. 

11월 마지막 주를 기준으로 몇몇 여행업계 직원들의 남은 연차를 살펴봤다. A여행사 직원의 남은 연차는 7.5일이다. 지난해 2월 입사해 올해 연차총 12일을 받았다. 지금까지 4.5일밖에 사용하지 못했지만 앞으로 남은 기간에 하루라도 쓸 수 있을 지는 장담할 수 없단다. B여행사 직원의 남은 연차는 1.5일이다. 훌륭하다. 하지만 알고 보니 최근 다녀온 출장에 개인 연차 6일이 소진됐다고 했다. C항공사 직원의 남은 연차는 십 여일이다. 남은 연차를 세는 것 보다 사용한 연차 2일을 기억하는 게 쉬웠다. C항공사가 휴가 사용에 눈치 주는 분위기는 아니지만 올해는 정말 바빴다고 했다. D여행사는 올해부터 연차 미소진 수당을 지급하지 않는다. E여행사는 최근 3년 간 연차 미소진 수당을 지급하지 않은 사실이 감사에 적발됐다. 2일 이상 연일 휴가를 내는 사람은 ‘정신 상태가 글러 먹은 직원’이 되고, 5일 이상의 휴가는 미주나 유럽 등 장거리로 휴가를 가야만 허락하는 곳도 있었다. 물론 부서의 분위기에 따라 강도는 천차만별이다.  

지난달 21일 정부는 국무회의에서 입사 1년 미만의 근로자에게 연간 최대 11일의 연차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지금까지는 1년 미만의 노동자에게는 1개월 개근시 하루의 연차를 부여했고, 이를 사용하면 다음 해 휴가일수 15일에서 차감됐다. 즉 신입사원들에게도 충분한 휴식을 보장하겠다는 의미의 개정안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다음날 하루 연차를 사용하며 ‘충분한 휴식이 곧 국가의 경쟁력’이라는 철학을 선행했다. 또 지난 추석 연휴 임시공휴일도 휴식과 레저를 독려하는 차원에서 지정됐다.  

올 한해 전 국민이 ‘욜로’를 외쳤다(물론 그 와중에 짠테크를 외친 사람도 많다). 정부에서도 휴식과 여가를 권장한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전 국민의 여행을 책임지는 전문가들부터 휴식을 지켜주는 솔선수범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로 나는 내일 휴가를 사수했다. 
 
 
손고은 기자 koeun@trave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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