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싶은 광주를 만났다. 토박이도 몰랐던 매력적인 광주 여행.
걷고 또 걸어도 볼거리가 새어나오니 이제는 날개를 달고 널리 알려져야 한다. 
 


월봉서원, 기대승의 인생길 따라가기
 
장성군과 광주 광산구를 잇는 황룡강을 따라 달리다 보면 한적한 길에 접어든다. 더 이상 차로 들어갈 수 없으면 본격적으로 도보 여행이 시작된다. 황토색 담벼락이 나란히 서있는 골목길을 걷다보면 여기가 광역시의 한 동네가 맞나 싶다. 그러다가도 하릴없이 걷다 보니 이곳에 눌러 앉고 싶어진다. 조금만 더 올라가면 산 아랫자락에 위치한 오늘의 목적지 ‘월봉서원’이 등장한다. 깜짝 놀라 탄성이 나올지도 모른다. 그만큼 의외의 장소에서 만나는 매력적인 공간인데 어떤 곳인지 알게 되면 월봉서원의 특별함에 한 번 더 놀란다. 작은 계곡을 넘어 본격적인 탐방에 나선다.

월봉서원은 퇴계 이황이 ‘당신이 나보다 한 수 위다’라고 칭찬한 고봉 기대승을 기리고 있는 곳이다. 기대승이 죽고 장남인 기효증이 선친을 기리기 위해 광산구 산월동의 월봉마을 이름을 따서 지은 곳이다. 그 후 정조가 기대승에게 ‘빙월설월’이란 뜻으로 빙월당 액호를 하사 했으나 1868년 대원군에 의해 서원이 헐리게 됐다. 1938년이 되어서야 전라남도 유림이 빙월당을 복원했다. 
 

우리가 보는 지금의 월봉서원이 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당과 외삼문, 장판각, 내삼문은 1981년에서야 만들어졌다. 단시간에 지어진 게 아니라 하나씩 정성 들여 만들어졌기에 오랜 시간이 지나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월봉서원에서 흐르는 안정감은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공통적인 정서이다. 더불어 기대승 선생도 쉬이 흐트러지지 않고 올곧게 자신의 가치를 지켜온 사람이었다.
 
조선 건국 이래 조선이 앓아온 내부 모순에 대한 생각과 비판을 아끼지 않은 일화는 유명하다. 기대승의 이런 끊임없는 비판의식과 대쪽 같은 성품이 결국 자신을 외롭게 만들고 44세의 나이에 관직을 버리게 만든다. 결국 이듬해 생을 마감한다. 월봉서원 마루에 걸터 앉아 고단한 삶을 살다간 기대승을 생각하면 이 공간이 그를 위한 것임을 새삼스레 느끼게 된다. 위와 아래가 통하지 않은 답답한 시대를 살다간 기대승 선생이 눈을 감은 후에라도 탁 트인 곳에서 편히 쉴 수 있도록 배려한 것처럼 느껴진다. 시야를 방해하는 것이 하나도 없어 하늘은 끝없이 펼쳐지고, 산으로 둘러싸인 이곳의 공기는 한없이 맑다. 결국 서원의 풍경은 그에게 심심한 위로가 되어 주고, 나에게는 신념을 끝까지 지킬 수 있는 용기를 준다. 
 
 
▶이곳엔 꼭! 
 
한옥카페 ‘다시’   
월봉서원으로 가는 길 초입에 있다. 한옥 안이나 바깥마당에서 한국적 분위기를 오롯이 즐기며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다. 월봉서원 방문 후에 그 여운을 이어가기 딱 좋은 곳이다. 화-토 10:00~18:00

황룡강 누리길
월봉서원 입구는 2코스 황룡강 마을 안길의 한 부분이다. 용진산에 올라 황룡강을 담고, 기대승의 선비 정신과 철학의 향기가 가득한 월봉서원까지 누릴 수 있는 1석 2조 걷기 코스이다. 6.70km 55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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