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날씨가 좋아 한강공원은 인산인해를 이뤘고, 나 또한 텐트를 치고 모처럼 느긋하게 주말을 즐기고 있었다. 그 중 한 커플이 눈에 띄었다. 치킨과 맥주 등을 예쁘게 늘어놓고서 연신 자신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는데 사진을 다 찍고 나서는 어느새 훌쩍 자리를 떠버렸다. 실제 피부로 느껴지는 부드러운 봄날의 강바람과 따스한 햇살보다 그들에게는 피크닉을 즐기고 있는 자신들의 모습을 SNS로 남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한 듯 했다. 


이렇듯 이미 일상에서도 현실과 가상 세계의 경계를 나누며 어느 쪽이 더 중요하고 진정성을 갖는 것인지 구별하기 어려워졌다. 또한 산업적 측면으로 보더라도 일종의 가상세계인 온라인이라는 말이 앞에 붙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대가 와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때도 많아졌다. 그렇지만 이런 가상 세계에 대한 고찰은 약 50년 전 TV 보급과 영화산업의 급격한 성장과 함께 유럽 철학계에서 이미 진행됐다. 


특히 1960년대부터 주요 활동을 이어온 프랑스의 철학 및 사회학자인 질 들뢰즈(Gilles Deleuze)는 당시의 현대사회를 ‘시뮬라크르(simulacre)의 시대’라고 말했었는데, 그로부터 약 50년이 지난 지금의 사람들이 올린 SNS 사진을 보면서 들뢰즈의 이 말이 새삼 와닿았다. ‘시뮬라크르의 시대’


위키백과의 정의에 따르면 시뮬라크르란 가상, 거짓 그림 등의 뜻을 가진 라틴어 ‘시뮬라크룸(simulacrum)’에서 유래한 말로 시늉, 흉내, 모의 등을 말한다. 이 시뮬라크르란 개념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플라톤(Plato)의 ‘이데아(Idea)’ 이론에서 시작됐다. 플라톤은 우리 세계는 동굴세계의 그림자와 같은 허상의 세계이고 진리의 원형인 이데아의 세계가 진정한 참세계이며 시뮬라크르의 세계는 복제의 복제로 가장 가치 없는 세계로 보았다. 세계에도 어떤 급이 있다고 전제하며 복제의 세계 즉, 시뮬라크르의 세계를 가장 낮은 급의 가치 없는 세계라고 평가한 것이다. 


하지만, 플라톤과 다르게 앞서 말한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는 시뮬라크르의 세계를 그 자체로 중요한 의미가 있는 하나의 동등한 세계로 인정했다. 그에 따르면 SNS를 통해 재현 혹은 연출된 세계도 현실 세계와 같은 무게를 지닌 또 다른 세계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프랑스 철학자인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는 한발 더 나아가 그의 저서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을 통해 모사된 이미지가 더 실제와 같은 하이퍼 리얼리티(hyper reality)가 생산된다는 이론을 주장했다. 이는 요즘 SNS에 올라오는 매력적인 일상, 여행, 음식 등의 사진들을 보다보면 깨닫게 된다. 파리의 어느 고즈넉한 카페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커피 잔을 손에 든 순간을 담아낸 누군가의 사진 한 장에서 우리는 다음 여행지에 대한 보다 즉각적인 영감을 얻기 때문이다. 


복잡한 철학 이야기지만 위에 말한 두 명의 프랑스 철학자는 여행업 종사자들에게 분명한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다. 지금 시대의 여행을 계획하는데 영감을 주는 것은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한 정보보다 오히려 실제보다 더 실제와 같은 하이퍼리얼리티가 중요하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 좀 더 사실적인 <걸어서 세계 속으로>보다는 여행을 모사하는 <뭉쳐야 뜬다>와 같은 프로그램에 사람들은 더욱 공감하는 것이다. 또한, 여행지를 선정할 때 고려하는 다양한 기준 중 하나로 최근 생겨난 것은 ‘사진 찍기 좋은 곳’ 인가, 즉 얼마나 멋진 혹은 특별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장소인가 하는 것이다. 이는 비단 여행지 자체뿐만 아니라 이동 중 기내 인테리어나 서비스 혹은 훨씬 이전 단계인 항공권이나 호텔의 구매를 결정하는 단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장 보드리야르는 디즈니랜드의 미키마우스를 예로 들며 사람들은 미키마우스가 쥐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진 것을 알고 있음에도 미키마우스를 쥐가 아닌 혹은 그보다 훨씬 특별한 가치가 있는 존재로 여긴다고 했다. 이제 여행은 여행객들이 단지 유명 관광지를 방문해 실제로 그것을 보고 체험하는 것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게 된 듯하다. 여행은 이제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어떤 이미지와 분위기를 재현 혹은 모사하는 것에 더욱 몰입하는 것, 바로 시뮬라크르다.  

IT Travel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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