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을 출발한 해랑은 중간 정차역에서 나머지 승객들을 모두 태우더니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목적지는 경주다. 객실 스피커로 이벤트칸 ‘포시즌’으로 모이라는 안내 방송이 나온다. 오리엔테이션 하려나 보네, 열차 탐험도 할 겸 일찍 나선다. 복도를 따라 열차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누빈다. 총 여덟 량 중 정중앙의 두 량을 카페와 이벤트 공간으로 꾸몄고, 그 앞뒤로 세 량씩 객실을 배치한 구조다. 남자들은 특히 4호칸과 5호칸을 주목한다. 카페 ‘선라이즈’와 이벤트 공간 ‘포시즌’이다. 술과 안주와 음료와 간식과 각종 요깃거리가 끊이지 않을뿐더러 전부 무료다. 채앵채앵 덜컹덜컹 기차의 리드미컬한 소리와 움직임에 몸을 맡기고 낮에는 맥주 탐닉, 밤에는 와인 홀릭이 되는 게 예의다. 여기 진짜 좋다, 1박2일 틈틈이 많은 시간을 이곳에 쏟겠노라고 미리 예고하듯 아내에게 말한다. 

해랑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이벤트 칸
해랑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이벤트 칸

 

이벤트칸으로 탑승객들이 모이자 여섯 명의 승무원들이 인사한다. 우리나라에 고작 아홉 명 뿐인 해랑 승무원 중 여섯 명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다. 해랑 승무원들은 만능 재주꾼이다. 노래며 가야금 연주며 성악이며 모두 수준급이다. 수 백 명의 KTX 승무원 중에서 뽑히고 해랑 승무원으로 특채됐으니 당연하다. 어쩜 노래를 그렇게 잘하세요! 아내가 한 여성 승무원에게 부러운 듯 건네자 맑은 웃음이 되돌아온다. 승무원이야말로 해랑의 내적 가치를 키우는 요소다. 언제나 반듯한 자세와 맑은 미소로 일인다역을 소화하는 승무원이 없는 해랑은 상상하기도 싫다. 


1박2일 여정을 함께 할 승객들도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하면서 거리를 좁힌다. 5살 아들 생일을 기념해 왔다는 가족부터 칠순 효도여행 왔다는 어르신 부부, 인생 최초로 자매끼리 여행 중인 이들까지 다채롭다. 그중에서도 유독 한 중년 부부가 시선을 끈다. 저 아저씨 진짜 상냥하다, 저렇게 좀 해보시지…. 다정스레 아내의 손을 잡고 있는 그 아저씨만큼 할 자신이 없어 벌컥 맥주를 들이키며 딴청을 부린다. 대신 마사지 해줄게, 어깨 마사지기를 걸어주니 웃는다.   


해랑이 기차역에 닿으면 승객들은 여행지에 대한 기대로 퐁퐁거리며 내린다. 마치 바다를 순항하다 기항지 육지에 내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애칭이 ‘레일 크루즈’인가 보다. 해랑 전용 관광버스가 역 바로 앞에 대기하고 있으니 기항지 투어는 수고스럽지 않다. 해랑 승객을 태운 버스는 경주 당일투어에 나선다. 문화유산해설사의 경주 설명은 깊고 넓다. 벚꽃이 터지기 직전의 경주는 봄의 경계에서 따스하다. 불국사로 향하니 몇 해 전 여행 왔을 때 보수 중이었던 석가탑이 온전한 모습으로 반긴다. 제대로 볼 수 있으니 좋네, 카메라에 다보탑과 석가탑을 다 담으려 하지만 쉽지 않다.

경주 불국사
경주 불국사

 

인파 속에서 해랑 배지를 단 일행들이 소풍 나온 학생들처럼 한 무리로 다니니 시선을 끈다. 석가탑이 온전해진 대신 이번에는 천마총이 공사 중이다. 덕분에 4월말 공사가 끝날 때까지 아예 대릉원 입장료가 무료란다. 해랑 여행에는 따로 돈 들 일이 없어 어차피 상관없는데 무료라니까 그냥 신난다. 신라 천 년의 역사를 머금은 고분 사이를 거닐다 살짝 아내의 손을 잡는다. 여행을 하면 이렇게 애틋한 감정이 되살아난다. 만개한 목련 꽃 아래 한복을 맞춰 입은 소녀무리가 까르르 웃으며 셀카를 찍는다. 인생의 봄을 기록한다. 저녁 식사는 조금 서두른다. 해랑은 경주역에서 8시30분 동해역으로 출발한다. 그 전에 경주 동궁과 월지 야경도 보고 가기 위해서다. 예나 지금이나 이곳은 인파로 북적인다. 그래도 변함없는 것은, 그 북적임과 소란을 모두 적요 속으로 빨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동궁과 월지가 빚어내는 야경은 환상적으로 아름답다는 점이다. 아직도 동궁과 월지를 ‘안압지’라고 잘못 부르는 이들이 있다며 안타까워하던 문화유산해설사 선생을 떠올리며 해랑으로 되돌아간다. 왠지 집에 가는 느낌이다.

기자가 체험한 우수여행상품
코레일관광개발 [레일크루즈 해랑]

김선주 기자 vagr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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