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령포 나룻배
청령포 나룻배

 

잘 잤어? 난 잘 잤는데…. 아내의 아침인사에 고개를 살짝 가로젓는다. 아무리 해랑이지만 잠귀 밝고 예민한 승객은 어쩔 수 없나보다. 경주역을 출발한 해랑은 승객들의 숙면 유도를 위해 11시부터 새벽 3시까지 4시간 정도 영주역에 정차했는데, 다시 출발할 때 덜커덩 닥친 위기를 넘지 못하고 깼다. 승무원은 미리 예견했다는 듯 둘째 밤부터는 적응해서 푹 자니까 다음에는 2박3일 여행상품을 이용하라고 농을 던진다. 2박3일이면 전국일주인데 더 재미있겠다, 아내가 덥석 미끼를 문다. 해랑의 매력에 빠져 14번이나 탑승한 일본인 고객이 있다는 답이 온다. 외국인한테도 인기가 있나보군, 왠지 뿌듯하다. 동해 바다를 바라보며 먹은 황태해장국 덕분인지 찌뿌드드했던 몸은 금세 풀린다. 그러고 보니 여정 동안 참 잘 먹는다.

첫날 경주 한우구이와 경주 한정식도 모자라 해랑 카페도 번질나게 드나들었으니…. 간밤에 승무원들이 펼친 특별공연이 흥을 한껏 돋워 그랬던 모양이다. 난타공연부터 마술쇼까지 흥겨웠다. 생일이거나 기념일인 승객을 위해 케이크도 준비해 함께 축하하고 함께 나눠 먹었다. 생일을 맞은 시어머니께 보내는 며느리의 편지는 사랑스러웠다. 고부갈등이라는 말이 왜 나왔는지 모를 정도로! 그렇다고는 해도 남들 다 방에 돌아갔는데도 아내와 둘이서 끝까지 음주가무를 즐긴 건 좀 무리였다. 아침 메뉴가 황태해장국인 걸 보면 우리만 그러는 게 아닌 거야, 합리화해보지만 궁색하다. 망상해수욕장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파도 일렁이는 찬연한 아침 바다로 성큼성큼 다가간다. 먼저 와 있던 가족의 모습이 아침 햇살에 실루엣으로 일렁인다.

 

 

점심은 영월 한우다. 이렇게 잘 먹어도 되나 짐짓 미안함이 든다. 단종의 한과 비애가 서린 곳 아닌가.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노산군으로 강등돼 이곳에서 유배 생활을 한 단종, 1458년 세조 3년 때 성삼문 등이 왕위 복위를 도모하다 탄로나 결국 이곳에서 사약을 받고 죽음을 맞았다. 시신도 수습하지 못하게 한 것을 영월 선비 엄흥도가 몰래 수습해 장례를 치렀다. 단종의 능인 장릉을 찾아 역사를 되짚고, 유배지였던 청령포로 향하는 여정은 애잔한 길이다. 뒤로는 절벽이고 앞으로 삼면은 물길인 청령포는 고립의 땅이다. 이곳에서 단종은 얼마나 한탄스러웠을지, 청령포 소나무 숲길에서 가늠해본다. 묵직한 울림으로 그렇게 1박2일 해랑 기차여행도 종착역으로 향한다.

망상해수욕장
망상해수욕장

기자가 체험한 우수여행상품
코레일관광개발 [레일크루즈 해랑]

 

김선주 기자 vagrant@trave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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