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 너머를 살랑대는 바람은 나의 여행을 축복하는 성배다. 일렁이는 물결은 지금의 나와 닮았다. 
한 템포 늦춰서 갈 수 있는 이 시간에 맞서, 우린 아주 많은 것들을 주워 갈 수 있었다.

다리 위에선 하늘 위가 보일 것만 같다. 거대함에 숨이 막힐지도
다리 위에선 하늘 위가 보일 것만 같다. 거대함에 숨이 막힐지도
도착한 화물들의 하선준비가 한창이다
도착한 화물들의 하선준비가 한창이다

 

반듯한 훼리에 올라탔다. 일본에서 배를 타 보는 것도, 배를 타고 하룻밤을 꼬박 보내 보는 것도 처음이다. 외국인 보다는 내국인이 훨씬 많은 탑승객들 사이에 우두커니 섰다. 여행은 시간조절이 생명이라고, 신칸센을 이용해 빠르게 목적지에 도달하면 되지 않나 싶었다. 훼리 여행의 목적을 전혀 간파하지 못한 채 말이다. 


꼬불꼬불 미로처럼 연결된 6층 구석에 오늘의 하룻밤을 보낼 방이 있었다. 같은 층에는 레스토랑과 50개가 넘는 객실, 복층으로 뚫린 공간이 자리했다. 식사를 하고 난 뒤에, 그리고 훼리의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나서 방으로 돌아갈 때 마다 방을 찾기 위해 두 눈과 머리를 계속해서 굴려야 했다. 이건 해양판 메이즈러너야. 훼리의 측면에 위용 있게 쓰여 있던 Ferry의 ‘F’자가 내 키보다 컸던 것이, 그제야 여기 꽤 크군, 싶다.


저녁 식사 후 7층을 통해 훼리의 갑판으로 올라섰다. 높은 하늘에서 바람과 비가 섞여 갑판 위로 점점이 뿌려지는 날씨였다. 땅에서와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느껴지던 비와 바람은 곧 두려움이 됐지만 이쯤 지나간다는 아카시대교(明石大橋)를 놓칠 순 없었다. 거짓말을 조금 쳐서, 바람을 타고 카메라와 함께 날아갈 수도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카메라를 들고 세로로 발을 벌려 몸을 지탱한 채 대교를 노렸다. 우주선이 내려올 법한 푸른 어둠과 강한 바람의 합작이었지만 이런 날의 사진은 환상이기 마련이니까. 


느린 속도로 근접하던 대교는 순식간에 훼리를 삼키고 지나갔다. 뷰파인더를 다시 들여다 볼 틈도 없었다. 대교의 걸음을 따라 머리를 옮겼다. 잡을래야 잡을 수 없는 순간이라 더욱 간절한 손끝이었다. 


훼리는 오후 6시 이즈미오쓰항(泉大津港)을 출발해 다음날 아침 6시 기타큐슈 신모지항(新門司港)에 닿는다 했다. 12시간이나 되는 시간을 무얼 하며 보낼까 싶었는데 벌써 9시다. 잠을 넉넉히 자야하는 사람들은 지금쯤 잠자리에 들면 되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또 하나의 대교인 구루시마 해협 대교를 기다리거나 5층에 준비되어 있는 다양한 엔터테인먼트를 즐기면 됐다. 5층부터 7층까지, 산책의 속도로 시설들을 쭉 훑어 보고 나서 결국 택한 것은 방으로 돌아가는 일이었다. 

한큐훼리의 다양한 객실들
한큐훼리의 다양한 객실들
훼리의 창을 통해서 보는 바다는 또 다른 세상이다
훼리의 창을 통해서 보는 바다는 또 다른 세상이다

 

방에 나 있는 창문, 그곳으로부터 보이는 깜깜한 바다 속 미세한 은빛을 잡아내고 싶었다. 언제 또 이렇게 밤바다 한가운데를 가까이서 볼 수 있을까. 숨죽인 바다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밤바다를 마주했을 때 비로소 나와의 여행이 시작됐다. 스폿과 스폿을 순간이동 하듯 거치는 여행과는 너무 다른 매력에 한동안은 시간이 필요했다. 서툰 생각은 지금 여기는 어디쯤일까, 하며 구글맵을 켜 보는 것을 시작으로 나중에는 꽤나 깊은 곳까지 도달했다. 쉽게 잠들 수 없었고, 쉽게 생각을 끊을 수도 없었다. 그 강렬한 사색의 과정이 꽤나 행복했지만 내일의 일정을 위해 침대 위로 올라설 결심을 해야 했다. ‘금방 잠에 들 수 없을지도 몰라', 싶었지만 집중할수록 느껴지는 작은 훼리의 진동 앞에서 이내 무섭게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새벽 5시경 눈이 떠졌다. 또 한 번 갑판 위 풍경을 놓칠 수 없어 서둘러 눈곱을 떼고 카메라를 들쳐 멨다. 모두 같은 생각이었을까. 우리는 갑판 위에서 또 만났다. 어제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 마치 다른 땅에 도착한 듯하다. 어서 오라 손짓하는 기타큐슈를 앞에 두고 여행 2막이 시작되었구나, 생각했다. 너무 조급해 할 필요가 없었다. 훼리는 우리를 안전하게 바래다주었으니까.  

 

▶오사카와 큐슈를 잇는 해상호텔 한큐훼리(Hankyu Ferry)


비행기를 타고 인기 스폿에서만 머물다 돌아오는 일본 여행이 식상해졌다면, 혹은 조금 더 합리적인 비용으로 효율적인 여행의 동선을 그리고 싶다면 훼리 여행이 답일 수 있겠다. 한큐훼리는 오사카의 이즈미오쓰항(泉大津港)과 고베의 롯코 아일랜드항(神戶 六甲アイランド港)에서 기타큐슈 신모지항(新門司港)까지 일본의 세토내해를 가로지른다. 


이즈미오쓰항과 신모지항을 잇는 이즈미(和泉)/히비키(.)는 2015년 새롭게 신설된 쌍둥이 선박으로, 오후 5시반 경 승선해 다음날 아침 7시경 하선한다. 목적지를 향해 가는 동안 승객들은 여유 있게 밤을 준비하고 아침을 맞이할 수 있다. 선내에 마련된 레스토랑에서의 식사는 훼리여행의 또 다른 매력. 레스토랑에는 신선한 재료로 만들어 낸 다양한 요리들이 승객을 기다린다.  생선회, 스테이크 등이 제공되는 선내식을 먹고 아늑한 숙면을 위해 노천탕과 대욕장을 찾아 여행으로 굳은 근육들을 풀어 주고 나면 일부러 훼리여행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이 실감이 된다. 5~7층에 마련된 객실은 일본의 사계를 테마로 디자인됐다. 8~14명을 수용할 수 있는 도미토리식 객실부터 호텔 수준의 서비스를 보여 주는 럭셔리한 특등 객실까지 여행 타입과 비용에 따라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다.

선내에는 다양한 뷔페식 음식이 기다린다
선내에는 다양한 뷔페식 음식이 기다린다

 

12시간 가량 되는 승선 시간이 지루하지 않도록 5층에는 게임코너, 노래방, 키즈룸, 매점 등의 편의시설이 준비되어 있지만 흥겨운 놀 거리에 집중하기 전에 갑판 위를 먼저 올라가 보자. 훼리 여행에서만 볼 수 있는 일몰과 일출은 당신의 심장을 간질이기에 충분하다. 

다양한 놀이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게임룸

 

목적지로 향하는 동안 훼리는 3개의 다리를 지나게 되는데, 세계에서 가장 긴 현수교인 아카시대교(明石大橋), 오카야마현(岡山.)의 구라시키시(倉敷市)와 시고쿠(四國)의 사카이데시(坂出市)를 잇는 세토대교(..大橋) , 3연속 현수교인 구루시마 해협 대교(.島海.大橋)가 그것이다. 웅장한 다리 아래로 훼리가 지나가는 광경은 가히 장관이라 소문이 났다. 5층 로비에 다리를 지나게 되는 시간이 기록되어 있고 그 시간이 되면 모두가 갑판 위로 향한다. 일부 객실이 제외되긴 하지만 로비에서는 와이파이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으며 흡연실, 애완동물 룸, 휴대전화 충전기 등이 구비돼 있어 여행의 불편함을 최소화했다.


다음날엔 일찍 일어나 바다 위로 떨어지는 햇살을 알람삼아 상쾌한 아침을 맞이해 보자. 이번 훼리여행이 100% 대성공이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글·사진=Traviest 최아름 취재협조=한큐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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