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은 가봐야 했다. 최남단 마라도,  최동단 독도에 가보고 싶은 것과 같은 이유다. 
북위 37도 52분, 10km만 가면 북한 땅이다. 여기는 남한 최북단의 섬, 백령도다. 

두무비경길

인천 연안부두에서 배는 정시에 출발했다. 540여 명을 실은 2,100톤급 배에게는 이제 한 가지 일만 남았다. 앞으로 4시간. 바다를 밀고 227km를 북서쪽으로 나아간다. 배는 소청도, 대청도를 거쳐, 드디어 대한민국 서북단의 섬 백령도에 도착했다. 도착은 잘 했으나 첫걸음부터 차질이 생겼다. 악명 높은 백령도의 안개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니 어느 곳도 갈 수 없으리라 생각했지만, 틀렸다. 안개가 자욱해서 더 특별해진 곳, 사곶 해변(천연기념물 391호)으로 갔다. 


원래 사곶 해변은 석영 성분이 많아 단단한 규조토가 3km 이상 펼쳐진 곳으로 유명하다. 비행기가 착륙할 수 있을 정도로 모래가 촘촘하고 단단해서 천연비행장으로도 사용했었다. 하긴 이미 모래사장 한가운데로 차를 끌고 들어온 참이다. 단단한 모래보다 신기한 것은 그곳에도 생명들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 부지런히 가리비를 채집하는 노인의 실루엣이 멀리 해무 속에서 짙어졌다 옅어졌다 반복했다. 


어둡고 희미할 때 필요한 것은 등대다. 사곶 해변 동쪽. 포구를 끼고 솟아오른 용기원산의 정상에는 등대가 하나 있었다. 1960년대까지 사용하다 지금은 전망대가 들어섰다. 올라가면 북한 장산곶까지 훤히 보이고, 그 사이 어딘가에 심청전에 등장하는 ‘인당수’가 있다고도 했다. 궁금했지만 올라가는 것보다는 내려가는 것을 택했다. 산책로를 따라 작은 언덕을 넘어야 접근할 수 있는 등대 해안에는 해식절벽과 해식동굴이 보물처럼 숨겨져 있다. 자세히 보면 바위마다 품고 있는 색다른 무늬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도 같은 것이 없는 바위의 지문이자 시간의 나이테다. 


해안가에서는 밀물 때가 되면 바다의 속살이 더 두드러지는데 이럴 때 바빠지는 이들이 섬의 아낙들이다. 너럭바위에서 금방 따낸 굴은 짭조름하면서도 고소했다. 시원한 소주를 곁들이지 않을 재간이 없었다. 


두무진(명승 제8호)은 백령도 서쪽 해안선의 담회색 기암절벽들을 일컫는 이름이다. 지금까지는 풍화작용만 이야기했지만 그 반대의 상상력도 필요하다. 신기하게도 수평에 가까운 규암층을 유지하고 있는 두무진의 암주들은 모래가 쌓여 만들어진 사암이 땅속에서 열과 압력을 받아 규암으로 변성된 후 다시 떠오른 것이다. 5~10억년 전 원생대의 이야기다.


절벽과 암주 사이마다 숨어 있는 작은 해변들은 때때로 불청객들이 발을 들여놓는 비밀의 문 역할을 한 모양이다. 역사적으로 해적이 침입하기도 했고, 선교사가 상륙하기도 했었기에 지금도 감시가 삼엄하다.

그러나 통제하고 금지만 하던 시절은 옛말이다. 데크 계단을 잘 정비한 두무비경길은 초소를 넘어 저 아래 해안까지 연결되어 있다. 50여 미터나 되는 절벽을 따라 오르내리는 길은 아찔하고 수고롭지만 그 가치는 내려가 본 이만 알 수 있다. 왜 이곳이 비경길인지를. 이럴 때 새들이 가장 부럽다. 느긋하게 날개를 말리고 있는 가마우지들에게 이보다 좋은 서식지가 또 있을까. 원래 백령도라는 이름도 새와 관련이 있다. 예부터 따오기(鵠)가 많이 살았는지 곡도(鵠島)라고 불리다가, 고려 때부터는 따오기가 흰 날개를 펼치고 날아오르는 모습이라고 하여 백령도로 부르기 시작했다.

마라도에 자장면이 있다면 백령도에는 냉면이 있다. 비빔냉면과 물냉면을 두고 고민했지만 정작 추천 메뉴는 메뉴판에도 없는 ‘반반’이었다. 비빔냉면에 육수를 더 자작하게 부은 것인데, 과연 매콤하면서도 촉촉하다. 주문이 올 때마다 직접 기계에서 뽑아 삶아 내는 메밀국수가 이 집의 자랑. 사료 대신 군부대에서 나오는 짬밥을 먹여 키웠다는 돼지고기 수육도 담백 쫄깃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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