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피었다. 매화꽃과 앵두꽃이 톡톡 망울을 터트렸다.
지리산 끝자락, 순천과 하동을 천천히 거닐었다.

겨울을 넘긴 순천만 습지. 노란 갈대가 봄 바람에 춤을 췄다
겨울을 넘긴 순천만 습지. 노란 갈대가 봄 바람에 춤을 췄다

 

순할 순, 하늘 천자를 쓴다. ‘하늘을 따른다’는 뜻이다. 지명을 따라 마을이 만들어지는 것인지, 그 반대인지 잘 모르겠다. 다만 순천에 올 때마다 모든 것이 순리대로 흘러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여행지를 고를 때마다 순천을 리스트에 올려놓는 이유다. 


서울에서 차로 4시간, 순천에 도착하니 봄 햇살이 포근했다. 순천만 습지에 융단처럼 깔린 노란 갈대숲이 봄바람에 넘실대는 것이 마치 춤추듯 계절을 맞이하고 있는 것 같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표정에도 마찬가지 기대가 묻어난다. 두꺼운 목도리를 풀고 가벼운 자켓을 펄럭이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남해로 둥글게 튀어나온 순천만 습지는 수평선을 멀찍이 밀어낸 듯 널찍하고 평평하다. 갈대밭이 5.4㎢(160만평), 갯벌이 22.6㎢(690만평) 규모다. 어림잡기도 쉽지 않다. 다만 우리의 눈과 발로는 한 번에 다 헤아릴 수 없는 크기라는 건 알겠다. 그리고 점점 더 커지고 있다. 퇴적물이 계속 쌓이고 있기 때문이다. 

순천 꼬막정식
순천 꼬막정식

순천만 습지는 미국 동부 조지아주 연안, 캐나다 동부연안, 아마존강 유역, 유럽 북해연안과 견주는 세계 5대 연안습지다. 규모도 그렇지만 더 의미 있는 것은 생명력이다. 수많은 갯벌 생물과 철새들이 망막한 이 땅을 터전 삼는다. 갈대숲 사이로 난 데크를 쉬엄쉬엄 걷다보면 자연스레 순천만의 생태를 알게 된다. 순천만에서는 국제적 희귀 조류 25종, 그리고 한국조류 220여 종을 볼 수 있다. 갈대숲이 새들에게 은신처가 되는데다 뻘 속에서 먹이를 구하기도 쉽기 때문이다. 가끔 도심에서 본 적이 있었던가 싶은 큰 새가 출몰하면 데크를 산책하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린다. 흑두루미, 재두루미 같은 큰 새들의 겨울 서식지라고 하니 아마 그런 종류의 새가 분명하다. 참고로 순천만은 우리나라 유일의 흑두루미 서식지란다. 


용산전망대에 오르면, 순천만의 대표적인 풍경이 한 눈에 담긴다. 동글동글한 갯벌이 섬처럼 놓여있고, 갈대숲이 펼쳐진 그 모습이다. 여름이면 붉은 빛으로 타오르는 칠면초 군락도 이곳에서 감상하면 감동이 배가 된단다.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순천의 이미지는 순천만국가정원이 생기면서 한층 배가 된 것 같다. 순천을 생각하면 순천만습지에 이어 ‘정원’이 딱 떠오르니까. 정원이란 단어가 연상시키는 분위기는 어떻고. 새소리와 물소리가 들리는 한가로움, 일상의 소란과 떨어진 평화. 


순천만국가정원은 2013년 열린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자리를 재단장한 곳이다. 박람회 후 2년 만에 ‘대한민국 제 1호 국가정원’으로 지정됐다.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는 전세계 23개국이 참여해 83개의 정원을 꾸며 열렸는데, 지금도 행사 당시의 모습이 거의 그대로 보존돼 있다. 풍차가 돌아가는 네덜란드 정원, 비밀스러운 정자가 놓인 중국 정원, 데칼코마니를 한 듯 균형미가 돋보이는 이탈리아 정원 등이다. 꽃과 식물이 깨어나기엔 이른 초봄이라는 게 아쉬울 뿐.  각국의 정원을 넘나드니 마치 세계여행을 하는 것 같아 한껏 기분이 들뜬다. 


순천만국가정원은 순천을 흐르는 동천을 사이에 두고 동-서쪽으로 나뉜다. 동쪽에는 호수정원과 세계정원이 모여 있고, 서쪽에는 한국정원과 야생동물원 등이 있다. 어디에서나 평화를 찾기 좋다. 특히 호수정원 인근의 벤치가 인기가 많다. 잔잔한 물결이 치는 호수와 호수 중앙에 봉긋하게 솟은 봉화언덕이 찰떡같이 어우러지기 때문이다. 봉화언덕은 능선을 따라 사람이 오를 수 있게 디자인 돼 있는데, 덕분에 언덕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정적인 풍경 사이에 언덕을 오르내리는 사람들만 유일하게 동적이다. 오묘한 안정감이 찾아든다. 

 

글·사진=차민경 기자 cham@trave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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