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개봉했던 왕가위 감독의 영화 <아비정전>의 주인공 아비(장국영)는 필리핀에서 홍콩으로 입양돼 자신의 뿌리를 알지 못한다. 이런 혼란스러운 정체성으로 인해 누구에게도 정착하지 못하는 아비의 모습에, 감독은 1997년 중국 반환을 앞둔 홍콩을 투영했다고 한다.


아비처럼 홍콩인들은 150년 동안 영국 치하에 놓여있었으며 스스로를 본토 중국인과 다르다고 믿었지만 그렇다고 또 영국인이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영국은 홍콩인에게  British National(Overseas) Passport, 약칭 BN(O)여권을 주었는데, 이는 영국을 자유롭게 왕래는 하되 일과 거주할 권리는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7월 마지막 주 마침 홍콩으로 출장을 다녀왔다. 연일 뉴스에서 접하는 홍콩의 시위 소식을 보고 비행기 좌석에 앉는 순간까지도 조금 걱정을 했었는데 만석인 기내를 보는 순간, 역시 괜한 우려를 했구나 하며 마음이 놓였다. 그러나 막상 현지 뉴스는 우리가 한국에서 경험하거나 보았던 시위보다 조금 더 과격해 보이는 영상을 내보내고 있었다. 


사실 이번 시위의 발단은 타이완에서 일어난 홍콩 관광객이 저지른 한 치정 살인사건에서 시작됐다. 홍콩인이 만일 국외에서 범죄를 저지른 후 홍콩으로 다시 돌아온다면, 홍콩 형법 상 ‘속지주의’를 근간으로 홍콩 밖에서 행한 범죄에 대해서는 처벌 받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홍콩 정부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홍콩 이외의 지역에서 일어난 범죄를 처벌할 수 있도록 타 국가와의 범죄인 인도조약을 맺으려고 했다. 하지만 이 조약이 체결되면 홍콩의 범죄인이 중국 본토로도 송환이 가능해진다. 이는 특히 정치범을 대상으로 악용될 우려가 있다고 본 홍콩인들은 이의를 제기했고 지금의 대규모 시위로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다. 


정치나 시위와 같은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홍콩인들이 현실적으로 느끼는 중국 본토의 영향력은 나날이 매우 커지는 듯 했다. 하루는 홍콩 현지인 친구와 점심을 함께하며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는 일도 전과 달리 경쟁이 치열해졌다는 푸념을 듣게 됐다. 최근 중국 본토에서 교육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홍콩으로 이주하고 있고 유치원 입학조차 등수를 매겨 상위에 들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당연히 집값도 천정부지로 뛰어올라 집을 살 엄두도 나지 않는다고 했다. 물론 반환 이후 중국의 경제 발전과 함께 홍콩도 큰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었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도 분명히 존재하는 듯 했다. 


South China Morning Post에 따르면 중국 본토에서 일 평균 150명 정도가 자녀교육 및 홍콩인과의 결혼 등의 이유로 홍콩으로 이주하고 있고 이렇게 본토로부터 유입된 인구는 홍콩 인구 중 약 13%를 차지하며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친구와 점심 식사 후에는 업계 파트너들을 만나서 홍콩 여행시장의 상황을 들어 볼 수 있었는데, 여행 시장 역시 중국의 OTA가 홍콩 시장에서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고 했다. 이에 맞추어 홍콩의 대표적인 오프라인 여행사인 Wing On Travel은 빠르게 온라인 여행사로의 탈바꿈을 시도 중이며 한편으로 온라인 여행사인 Hutchgo는 IT 부문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한때 활발하게 성업하던 Zuzi는 올해 초 홍콩에서 공식적으로 문을 닫았다.


가장 흥미로운 얘기 중 하나는, 홍콩 여행시장에서 항공권 메타서치는 한국과 달리 크게 성공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온라인 여행사들이 다양한 쿠폰을 발행해 항공권 할인을 하기 때문에 현지 소비자들은 굳이 메타서치를 통한 항공권 가격 비교의 실질적인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홍콩의 항공권은 Net fare형태로 판매되며 여행사가 판매 주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유연한 가격 할인이 가능한 것이다. 홍콩의 여행 시장은 어떤 부분은 우리와 매우 닮기도 하고 또 어떤 부분은 매우 다르기도 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공통점은 홍콩의 여행 시장 역시 빠르게 온라인 환경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20대에 처음 방문했던 홍콩은 내게 그저 놀라움, 그 자체였다.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오랜 시간 자연스럽게 얽히고 설켜 만들어진 건물, 좁은 골목, 음식, 그리고 무엇보다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 이국적이면서도 동양적이고 익숙하면서도 꽤나 낯선 느낌을 주는 그런 분위기에 압도되었던 기억이 있다. 오늘의 복잡한 정치상황은 접어두고 그저 한 명의 여행객으로 또는 여행업 종사자로 이런 홍콩의 매력이 그저 오랜 추억으로만 남게 되지 않길 바라본다.
 

양박사
IT Travel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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