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 관광청의 표현을 빌자면, 쿡 아일랜더들은 ‘최고의 연예인(Great Entertainer)’이다. 일상이 축제인 사람들이다. 오죽하면 중전마마 가체(加.)같은 화관(쿡 언어로는 ‘에이까뚜(Ei Katu)’ 라고 한다)을 쓰고 다닌다. 그것도 아주 크고 묵직한 것으로.

에이까뚜를 쓰면 얼굴이 주먹만 해 보인다. 그래서 한국에서도 쓰려고 사오긴 했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화관을 챙겨 쓰는 걸 보고 아연실색을 했다. 귀찮아서 목베게도 안 챙기는 나로 써는 이 거추장스런 화관이 뭐 길래 비행기 안까지 챙겨왔을까 싶다. 전 국민이 ‘공항패션’이라도 하는 모양이다. 


●‘배알도 없는’ 쿡 사람들? 


쿡 제도는 엄연한 독립국가다. 하지만 뉴질랜드 여권을 사용하며,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을 국가 원수로 모신다. 쿡과 뉴에는 아직도 ‘자발적으로’ 뉴질랜드의 보호를 받고 있다. 말이 ‘자유연합’이지 완전한 자립을 이뤄낸 사모아와 비교해 보면 식민 시대와 별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이들 입장에서 보면 혜택은 많은데 잃을 건 별로 없으니 식민시대와는 또 다르다. 인권, 자립을 존중하는 민주주의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 건지 또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쿡, 뉴에는 뉴질랜드와 오손 도손 잘 지내고 있다. 뉴질랜드가 이들을 정치적으로 간섭하거나 통제할 권한은 없지만, 경제, 군사 측면에서 보호하고 돕는다. 외교관계도 자유롭게 맺을 수 있다. 쿡 제도는 이미 중국을 포함해 52개, 뉴에는 20개의 나라와 수교를 맺었다(2016년 기준).


자존심이 상할 수 도 있지만,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물었더니, ‘쿡이란 섬나라를 아무도 모를 것 같아서’ 편의상 뉴질랜드 여권을 쓴다는 허무한 답을 들었다. 우리의 눈에는 배알 없이 지나 차게 실리를 따른 선택으로 보이지만, 사실 “Why Not(나쁠 것 없지 않나)?” 쿡 사람들은 제 집처럼 뉴질랜드와 영국을 자유롭게 드나든다. 반면 뉴질랜드 사람들은 쿡 제도에 3개월 이상 머물지 못하게 규제를 했다.

●마오리(Maori)가 뭐 길래


올해 3월 쿡 제도가 영국 식민지의 잔재를 떨어 버리기 위해 국호를 바꾸겠다고 나섰다. 이런 움직임이 처음은 아니다. 1994년에 국호를 바꿀지 여부를 두고 국민투표를 실시했지만 부결됐다. 이번에는 분위기가 다르다. 마크 브라운 부총리가 나서서 입김을 모으고 있다. 강한 기독교 정신과 마오리의 전통이 담긴 이름으로 지을 예정이며, 국민들의 선호를 반영한 60개의 후보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이라고 밝혔다. 가장 유력한 이름은 아바이키 누이(Avaiki Nui)로, 아바이키는 폴리네시안 조상들의 영혼이 모여 있는 정신의 고향(spiritual homeland)이다. 실체가 정확히 밝혀진 바는 없으나, 폴리네시아인들의 최초 정착지를 일컫는다고 한다. 누이(Nui)는 위대하고, 웅장하다는 뜻의 마오리어다. 쿡의 공용어는 영어와 마오리 어인데, 쿡 아일랜더들이 일상에서 영어라는 그릇에 담아 쓰는 거의 모든 일상어는 마오리어를 모르면 짐작조차 불가능할 정도다. 쿡 어디를 가나 마오리족의 캐릭터(메갈로돈 수인족)인 탕가로아(Tangaroa)가 정승처럼 서 있다. 1달러 동전에도 험상궂은 탕가로아다. 이렇게 많은 각이 진 동전은 처음 본다. 다른 동전에 비해 더 묵직하기도 하다.

●Aitutaki
쿡의 페르소나(Persona) 아이투타키

쿡 제도를 이루는 15개의 섬 중 어떤 섬이 가장 매력적이냐 묻는다면 단연 아이투타키(Aitutaki)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쿡에 오는 이유이자 목적이다. 에어 라로통가가 독점하는 구간으로 비행시간은 약 40분, 항공료는 편도에 10~15만 원 선이다. 국내선 치고 비싸다 생각할지 모르지만 쿡까지 왔는데 아이투타키에 가지 않는 건 이성적인 판단이 아니다. 물론 라로통가도 아담하고 예쁘지만, 아이투타키가 없었다면 이 정도로 쿡이 유명해졌을 리 없다. ‘쿡은 아이투타키로 완성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투타키 섬이 가진 극강의 바다 빛과 분위기는 한 미모 한다고 하는 세계 여느 유명 섬들과도 견주기 어려운 매력을 지녔다. 


아이투타키는 삼각형 모양의 산호섬으로 안정적인 구도다. 그래서 쿡 제도에서만 쓸 수 있는 쿡 화폐의 동전이 삼각형 인지도 모르겠다. 허니문 아일랜드, 원풋 아일랜드 등 아이투타키 안에서도 아름다움을 과시하듯 경쟁하는 섬 들이 즐비하다. 해변을 거닐면서도 맨눈으로 1m가 넘는 큰 물고기들이 유영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 있고, 스노클링 기어만 끼고 바로 바다로 뛰어들면 산호 군으로 둘러싸인 언더워터 세계가 눈앞에 펼쳐진다.


실제 바다의 모습만큼이나마 아이투타키의 위성사진은 실로 비현실적이다. 기다란 아이투타키 섬을 삼각형 모양으로 산호초가 둘러싸고 있다. 보트를 타고 아이투타키 인근의 섬을 둘러보다 인적 드문 섬에 잠시 내리기라도 하면 이내 무인도에 상륙한 것 같은 기분에 빠져든다. 모래사장에서 몇 미터도 채 떨어지지 않은 바닷 속에 커다란 물고기가 유유히 헤엄친다. 고속보트보다 빠르게 쏜살 같이 날아 사라지는 거북이도 보았다.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파충류, 거북이는 바닷 속을 날아다닌다는 걸 내 눈으로 확인했다.  

●Rarotonga
폴리네시아 인형의 집으로 놀러오세요

‘라로통가(Rarotonga)’는 감자모양의 섬이다. 섬 한가운데에는 685m 높이의 테 망가(Te Manga)라는 큰 산이 우뚝서 자욱한 연기를 산신령의 모자처럼 쓰고 있다. 섬의 동서 길이는 10km, 폭은 6km 정도다. 섬 둘레 길이는 30km를 겨우 넘긴다. 인구는 고작 1만 5천 명. 쿡에는 타히티도 있고 뉴질랜드도 있고 사모아도 있고 하와이도 있다. 이 모든 폴리네시아 섬들의 캐주얼한 축소판이랄까. 아담하지만 단단하고 야무지다. 거실 부엌 옷장 있을 건 다 있는데 크기만 작은 인형의 집에 놀러 온 듯하다. 

라로통가에는 맥도날드도, 신호등도, 코코넛 나무보다 큰 건물도 없다. 고개를 돌리면 패션 푸르츠 나무, 코코넛 나무가 보인다. 하지만 원시적인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다. 괴상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아무리 여행이 생활이고 생활이 여행인 사람이라도 난생처음 닿은 여행지에서 현지인들의 삶에 순식간에 적응해 만족을 얻기엔 도심에서 나고 자란 우린 너무 나약한 존재다. 원시 자연 속에서도 ‘모던하고 깨끗한 4성급 이상 호텔’을 찾는 미개인들이다. 쿡은 그런 점에서 ‘남태평양 입문지’다. 꽃과 풀로 뒤덮인 식물원 같은 사모아 한가운데 뉴질랜드 시골 마을을 들여놓은 듯하다. 풍경은 원시림인데 딱히 부족하다 느낄만한 건 없다. 예쁜 브런치 카페, 메뉴도 다양한 레스토랑, 주말에는 큰 장도 서고, 나이트클럽도 있다. ‘이게 무슨 남태평양이란 말인가’ 원주민이 나무 위에 기어올라 코코넛을 따다가 그 자리에서 불을 때고 음식을 해줄 걸로 생각했다면 실망감이 클 수도 있다. 

스쿠터 타고 섬 한 바퀴 


라로통가는 산호바다와 하얀 모래사장을 가진 사랑스러운 해변에 둘러싸인 섬이다. 돌아오는 날엔 무리(Muri)비치에서 과하다 싶을 만큼 ‘무리하게’ 많은 사진을 찍었다. 섬 주위는 전부 산호인데 특히 남쪽은 산호바다의 길이가 1km에 달한다. 섬을 둘러싼 산호 암초 너머는 깊은 대양이다. 다이빙이나 낚시를 하기에는 좋다지만 흑백처럼 대조를 이루는 두 파란색이 왠지 무섭다. 고리 모양의 산호초인 환초(環礁) 안쪽은 얕은 바다지만 바깥쪽은 깊은 바다와 닿아있다. 난데없이 나타날 바닷 속 절벽이다. 마치 침입자를 막아 섬을 보호하려는 듯하다. 영화 <모아나>에서 마을 사람들에게 저 환초 밖을 나가면 무서운 일이 일어날 거라 경고하는 추장의 말이 쿡에 와 보니 와 닿는다. 


라로통가 섬은 하나고 무척 작다. 얼마나 작냐면 스쿠터로 섬 한 바퀴를 도는데 1시간이면 족하다. 길이 단순하고 골목골목  눈길을 끄는 마을 풍경, 산도 있으니 스쿠터를 타는 게 아무래도 쿡을 여행하는 가장 좋은 방법 같다는 생각이 든다. 스쿠터를 빌리려면 면허시험을 봐야 하는데 그리 어렵진 않아 보인다. 경찰서 앞에 100미터 정도 장애물을 놓아 만든 시험장에서 지그재그로 갔다가 돌아오면 끝이다. 스쿠터를 타려면 꼭 면허를 취득해야 하지만, 정착 도로에서 헬멧을 쓴 사람을 거의 볼 수 없다. 맞아, 쿡에서 헬멧이라니, 좀 어울리진 않는다. 

라로통가에는 해안을 따라 두 개의 도로가 나 있다. 해안도로인 ‘아라 타푸(Ara Tapu)’와 내부 도로인 ‘아라 메 투아(Ara Metua)’다. 버스 노선이 재밌다. “나 시계방향 탔어.” “난 시계 반대방향 탔어.” 여기선 버스를 타고 친구에게 전화라도 하면 이런 식이 되겠다. 라로통가에선 몇 번 버스를 타는 게 아니라 ‘시계방향’ 버스 또는 ‘시계 반대방향’ 버스를 탄다. 동화책에나 나올 것 같은 버스지만 한 시간에 꼬박꼬박 두 대가 다닌다. 

●One foot Island 
여권 훼손? 그래도 찍을 거야!


‘원 풋 아일랜드’에 갈 때엔 여권을 꼭 챙겨가야 한다. 여권에 찍어주는 귀여운 발자국 스탬프가 아이투타키를 ‘버킷리스트’에 넣게 만든 이유기도 하니 말이다. 물론 여권에 함부로 도장을 찍으면 안 된다. 여권이야 다시 만들면 그만이지만, 살아생전 쿡에, 아이투타키에, 원풋 아일랜드에 그것도 주중에 다시 오리라는 보장은 없기 때문에 전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쿡의 삼성’ 퍼시픽 리조트


관광산업이 산업의 뼈대인 쿡 제도에서 퍼시픽 리조트는 ‘삼성’과도 같은 존재다. 리조트 시설과 서비스의 품질유지가 잘 되어있어, 이름은 생소해도 ‘퍼시픽 리조트 호텔 그룹’ 에 속한 리조트라면 크게 실망할 일은 없다. 그렇다고 판에 박힌 ‘쉐라톤’ 스러운 분위기가 아니라 스몰럭셔리(SLM)의 브랜드를 달고 있는 리조트가 대부분이라 개별 호텔들의 개성은 유지하되 매니지먼트의 수준을 국제규격으로 함께 높였다고 보면 된다. 쿡을 처음 찾는다면 당연히 숙소 선택이 고민일 텐데, 리조트 품질과 서비스가 어느 정도 보장되어 있기 때문에 첫 몇 박을 예약하고 다른 곳으로 옮길지 계속 이 계열이 머물지 결정해도 좋을 것 같다.

 

*에어 뉴질랜드, 버진 오스트레일리아, 젯스타항공 그리고 에어 타히티가 쿡 아일랜드에 취항한다. 
에어 뉴질랜드와 버진 오스트레일리아는 일주일에 각 6회, 5회씩 오클랜드-라로통가 구간을 운항한다.

남태평양 관광기구 박재아 대표
남태평양 관광기구 박재아 대표

글=남태평양 관광기구 박재아 대표 Daisy Park
SPTOKorea@gmail.com
사진=쿡아일랜드관광청(cookislands.travel) 남태평양관광기구(southpacificislands.tra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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