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 통일전망대에서는 한반도 대자연의 아름다움도 오롯이 감상할 수 있다
고성 통일전망대에서는 한반도 대자연의 아름다움도 오롯이 감상할 수 있다

 

새로 생긴 통일전망타워는 옛 전망대보다 높아서인지 마치 상공에서 내려다보는 것 같은 색다른 조망미를 선사했다. 해발 70m 고지에 세워진 높이 34m의 전망타워, 1984년부터 한 자리를 지켜온 옛 통일전망대의 역할을 이어받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밖에서 보면 건물은 가운데가 뚫린 알파벳 D자를 닮았는데, DMZ의 D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전시관, 교육실, 홍보관, 실내외 전망대가 이 3층 타워를 촘촘하게 채웠다. ‘통일되면 평양냉면 먹으러 가즈아’, ‘통일 되면 기차타고 런던에 갈 거예요.’ 수많은 이들의 소원지가 홍보관 벽면에서 알록달록 재잘댔다.


북녘의 산과 바다를 조망하는 데서 멈출 일은 아니다. 왜 남과 북으로 분절됐는지, 어떤 아픔인지, 무엇을 소망해야 하는지…. 진중한 상념은 마땅하고 당연하다. 6·25전쟁체험전시관과 DMZ박물관은 그 관문이다. 과거지만 미래를 말하고 전쟁에서 말미암았지만 평화를 지향한다. 6·25전쟁체험전시관으로 향했다. 전망대 주차장 끄트머리 쪽에 있고 외관도 이렇다 할 게 없어 자칫하면 그냥 지나칠 수 있다. 그래서일까? 전시관 앞 퇴역 탱크와 6·25라는 글자가 유독 선명하고 크게 느껴졌다. 전쟁을 기록한 옛 사진과 영상물은 참혹했다. 그래서 지금의 일상이 새삼 고마웠고 지속되기를 바랐다. 


휘익 보면 20~30분이면 족한 6·25전쟁체험전시관과 달리 DMZ박물관은 규모가 커 1~2시간은 할애해야 한다. 2009년 8월14일 개관했으니 올해로 10주년이다. 유료로 운영되다가 2018년 6월1일부터 무료 관람으로 개방됐다. 군 검문소를 지나 전망대 가는 도중에 있으니 아마 우리나라 최북단 박물관일 것 같다. DMZ에 초점을 맞춘 박물관이다. 무엇보다 DMZ 뜻풀이가 맘에 쏙 들었다. 비무장 지대 ‘Demilitarized Zone’이 아니라 꿈을 실현하는 지대 ‘Dream Making Zone’이란다. 군대와 무기가 배제된 비무장지대로서의 DMZ가 아니라 꿈을 실현하는 땅으로서의 DMZ다. 그 꿈은 평화와 생명이다. DMZ은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각각 2km씩 총 4km의 폭으로 서해 임진강 하구부터 동해 고성까지 248km에 걸쳐 흐른다. 6·25전쟁이 낳은 비극의 땅, 인간의 개입이 사라지자 그 땅에는 비로소 평화와 생명이 움텄다. DMZ박물관은 그렇게 말하고 싶은 듯했다. 비록 지금은 남측 DMZ 뿐이지만 언젠가는 북측 DMZ 얘기도 모두 들려주겠노라….

김일성 별장 뒤로 화진포가 보인다
김일성 별장 뒤로 화진포가 보인다

이승만·김일성 별장 너머 화진포


고성은 우리나라 현대 역사의 생생한 현장이자 그 자취를 고스란히 간직한 박물관이다. 고성통일전망대처럼 민간인 출입통제선을 넘어 북으로 바투 올라야만 만날 수 있는 아니다. 화진포를 빼놓을 수 없다. 한 때 바다였지만 오랜 세월에 부서진 바위와 풍랑이 나른 모래에 물길이 막혀 이제는 호수가 된 석호. 누구는 우리나라 석호 중 최고라고 엄지를 치켜세우기도 한다. 호수와 바다가 작은 육지를 경계선으로 마주 보고, 그 땅 위에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곱고 너른 모래해변이 길게 내달린다. 호수와 바다, 송림과 해변, 사람과 동물…. 아름답다. 한반도 격동의 시기, 남과 북의 권력자들도 그 아름다움에 매료됐었나 보다. 이승만과 김일성이 이곳 별장에서 휴양했고, 북한 군 간부가 휴양소로 사용했던 별장을 나중에는 남한의 부통령이 별장으로 썼다. 


김일성 별장이 가장 궁금했다. 정식 명칭은 ‘화진포의 성’이지만 1948년부터 1950년까지 김일성이 여름 휴양지로 사용했다고 해서 김일성 별장으로 더 잘 불린다. 화진포해수욕장 한쪽 끝 소나무 숲 우거진 해안가 산 중턱에 앉아 있다. 나무 계단을 따라 오르니 돌계단 위로 돌로 외벽을 쌓은 별장이 단단한 자태로 맞았다. 지하 1층 지상 2층의 석조 건물인데 1964년 우리나라 육군이 철거한 다음 재건축했고 1995년에는 개보수해 장병 휴양시설로 사용했다고 한다. 지금 건물은 2005년 옛 모습으로 재건된 것이다. 건물 앞 돌계단에는 이곳이 김일성 별장이었음을 알려주는 흐릿한 사진 한 장이 걸려있다. 1948년 당시 6살이었던 김정일이 돌계단에 앉아 찍은 사진이다. 1994년 아버지 김일성이 죽고 난 뒤 북한을 이끌던 그 꼬마도 2011년 사망하고, 이제는 그 꼬마의 아들이 그 자리에 있다. 


김일성 별장에서 이기붕 별장은 걸어서 3분 정도면 충분할 정도로 가깝다. 이승만 자유당 정권 아래에서 부통령으로서 권력의 2인자로서 단맛을 누렸던 인물의 말로는 비참했다. 1960년 3·15 부정선거로 촉발된 4·19혁명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하고 자유당 정권이 몰락하자, 맏아들에 의한 일가족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이승만 별장은 이곳에서 1km쯤 떨어진 화진포 호숫가 산 중턱에 있다. 기념관도 함께 들어서 있어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생애를 간략하게 훑어볼 수 있다. 이런저런 상념이 일었지만 화진포의 호젓한 기운에 금세 씻겨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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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김선주 기자 vagrant@trave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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