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초록이다. 한탄강 댐 근처에 물색이 에메랄드빛을 띈다는 재인폭포로 갔다.
폭포라기엔 작은 크기다. 높이로는 18~20m인데 강수량이 받쳐줘야 물이 쏟아진단다.

에메랄드빛으로 반짝이는 재인폭포
에메랄드빛으로 반짝이는 재인폭포

재인폭포는 지금도 아주 천천히 뒷걸음질 중이다. 50만 년 전부터 지금까지 쭉 그래왔다. 원래 재인폭포의 위치는 지금보다 380m 정도 앞에 있어 폭포에서 떨어진 물줄기가 한탄강으로 곧바로 이어졌다고. 시간이 지나면서 바위가 깎이고 깎여 지금의 위치까지 이동하게 됐다. 폭포 옆으로 난 주상절리를 봐도 짐작 가능하다. 주상절리는 세 개의 층을 이루고 있는데 맨 아래부터 5m까지가 50만 년 전 처음 용암이 분출해 굳은 지층이다. 그 위로 44만 년 전 12m 지층이 생기고 12만 년 전쯤에는 8m 정도의 지층이 더해졌다. 세월이 겹겹이 쌓인 그곳엔 지금도 멸종위기 식물인 분홍장구채며 천연기념물 민물고기 어름치도 산다. 그들이 살만하다는 건 여러모로 반가운 얘기다. 


문화해설사 말로는 요즘 ‘초딩들’ 사이에서 재인폭포는 대통령 폭포라 불린단다. 거참, 재치 있는 애칭을 얻었다. 하지만 재인폭포 전설 속 재인은 줄 타는 광대였다. 전설은 상반된 두 가지로 나뉘지만 믿고 싶은 쪽 하나만 전하고 싶다. 아주 옛날 재인에게는 너무나 아름다운 아내가 있었는데 아내를 탐낸 원님이 폭포를 사이에 두고 재인에게 줄을 타게 했다. 재인이 줄을 타는 사이 줄을 끊어 죽게 하고 재인의 아내에게 수청을 들라 명했다. 하지만 절개를 지키고자 한 아내는 수청을 들게 된 날 원님의 코를 물어뜯고 폭포에 떨어져 자결했다는 슬픈 전설이다. 그 후 원님의 코를 물었다 해서 마을 이름이 ‘코문리’로 불렸고 차츰 어휘가 변해 지금의 고문리가 됐다는 기록도 있다. 


종이 울리는 그날까지 


너무 늦게 온 게 아닐까. 조용할 날 없는 이 땅에 살면서도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는 그다지 실감하지 못하던 나였다. 수풀 속에 힐끗 보이는 삭막한 초소며 철조망에 붙은 지뢰 주의 경고문을 지나서야 온몸이 쫄깃해진다. 열쇠전망대에 도착하자 그곳을 지키는 군인이 주의를 당부한다. 사진 촬영은 정면으로 바라보는 전망대 외관과 맞은편 성모마리아상만 가능하다고. 파주나 철원, 고성 등 좀 더 관광지로 이름을 알린 전망대보다는 아담한 편이라지만 공기는 삼엄하다. 


전망대는 평일이어서인지 한산했다. 아니, 혼자였다. 쭈뼛쭈뼛한 움직임이 이경찬 상병 레이더망에 걸렸다. 그의 안내에 따라 전망대를 올랐다. 1인이든 단체든 원하는 방문객이라면 해설을 돕는다고 했다.

 
탁 트인 사방에서 바람이 분다. 코앞으로 보이는 구역이 비무장지대(DMZ)가 아니라면 이곳은 비통할 리 없는 풍광 좋은 전망대다. 열쇠전망대는 육군 열쇠부대가 1998년 건립한 안보관광 코스다. 전망대에서는 최전방 감시 초소 GP를 볼 수 있고 과거 북한의 선전마을이었다는 마장리 모습도 눈에 들어온다. 오른쪽 북측으로는 3개의 능선이 겹쳐있는데 그 중 가운데가 영화 <고지전>의 전투 배경지인 철원 백마고지다. 실제 6·25 전쟁 때 격전지이기도 했다. 또 지척으로 화살머리고지가 있다. 국방부가 올해 4월부터 지뢰를 제거해 유해 발굴을 시작한 현장이다. 10월31일까지 최초로 민간인에게도 방문 기회가 열렸다. 디엠지기와 두루누비 홈페이지에서 온라인으로 접수하면 추첨을 통해 하루 40명 방문할 수 있다고. 반가운 이야기지만서도 또 그다지 달가워할 일도 아니다. 상흔이 어린 곳이므로.

 

글·사진=손고은 기자 koeun@trave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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