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새재는 영남지역에서 한양으로 가는 고갯길 중 가장 빠른 길이었다
문경새재는 영남지역에서 한양으로 가는 고갯길 중 가장 빠른 길이었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문경에서의 시간은 한 박자 느려졌다가
또 빨라졌다. 문경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터널 어느 즈음인 것 같았다. 


흙길 따라 당신과는 천천히


첫 번째 목적지는 ‘길’이었다. 조선시대, 영남지역과 한양을 잇는 중요한 관문이었던 문경새재. 높고 험한 고개였지만 한양으로 향하는 가장 빠른 길이자 선비들이 과거길에 오를 때 고집할 만큼 의미가 깊었던 길이다. 문경새재는 1981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됐고, 지금은 걷기 좋은 길 위로 수많은 인파가 모인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걷기 여행에 나선 이들을 따라 부지런히 걸어보기로 한다. 비포장 고갯길 위로 은은한 흙냄새가 좋다. 나무도 새도, 개울도 있다. 단풍이 아름답기로 소문났다지만 사계절이 모두 예쁜 모습일 것만 같다.

무형문화재이자 문경 도예 명인인 도천 천한봉 선생의 작품이 전시된 도천 도자기미술관이벤트
무형문화재이자 문경 도예 명인인 도천 천한봉 선생의 작품이 전시된 도천 도자기미술관이벤트

6.5km의 길은 많은 것들을 품고 있다. 옛길박물관부터 생태문화갤러리, 오픈 세트장 등이 볼거리를 더한다. 특히 지난 2000년, 사극을 촬영하기 위해 만들어진 오픈 세트장이 <태조왕건>, <광개토대왕>, <광해> 등 각종 드라마와 영화 촬영지로 얼굴을 알리면서 사람들의 발걸음은 더욱 많아졌단다. 제1관문 지나야 만날 수 있는 세트장에는 초가집이며 기와집, 왕궁 등 마을이 형성돼 있는데, 규모도 어마어마하거니와 어느 기와집 앞마당 감나무까지 꽤 현실적으로 재현됐다. 과거로 툭 돌아간 듯한 마을을 몇 발자국 걷다보면 괜히 이런저런 전생을 상상하게 될지어다. 

문경새재 제1관문 주흘관 옆으로는 천이 흐른다
문경새재 제1관문 주흘관 옆으로는 천이 흐른다

수더분한 흙길만큼, 문경에서 만들어진 도자기도 꾸밈없이 소박하다. 투박해 보이지만 순수한 멋이 있다. 문경에서는 화려한 작품보다는 서민들이 일상생활에 필요한 생활자기가 주로 생산됐다. 이곳에서는 대접과 접시, 찻사발, 종지 등이 ‘주류’다. 문경 도자기는 11~12세기 동로 청자가마터가 발견된 것을 시작으로 수많은 도요지가 발굴됐다. 도자기 제작에 필요한 흙과 땔감 그리고 물이 풍부한 곳에서는 도자기가 발달하기 마련인데, 문경은 한양으로 향하는 길목, 교통의 요충지라는 지리적 조건까지 갖췄던 것. 문경에서 도자기 부문 무형문화재로 등재된 명인이 여럿인 이유다. 특히 넉넉한 크기의 찻사발이 많이 제작됐다. 문경 도자기 박물관에 전시된 찻사발을 둘러보다 생각한다. 제대로 된 하나의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땀이 필요했을까. 전혀 서두를 것이 없어 보인다.


글·사진 손고은 기자 koeun@trave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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