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train 서해금빛열차타고 떠나는 낭만가득 보령 나들이] 당일 下

꽃보다 아름다운 카페 리리스의 시간들
꽃보다 아름다운 카페 리리스의 시간들

천 년의 세월이 주는 무게감은 언제나 되직하다. 천 년의 사랑, 천 년의 역사, 천 년의 신화. 보령 개화예술공원엔 천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돌, ‘오석(烏石)’이 있다. 예부터 돌이 풍부했던 보령은 돌을 가공하는 기술이 발달해왔다. 특히 보령에서 풍화에 강하고 이끼가 끼지 않는 신비로운 돌로 이름난 석재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오석이다. 오석은 석질이 좋아 글씨를 오래 보존할 수 있어 신라시대 때부터 비석과 벼루의 재료로 많이 쓰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엔 왕릉 비석의 절반 정도를 오석으로 만들었고 오늘날에도 대통령 묘비에 오석을 사용했다고 하니, 그 품질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보령의 오석은 시간이 지날수록 흠을 감추고, 다른 돌들은 세월이 갈수록 흠을 드러낸다는데. 여러 모로 오석을 닮고 싶은 날이다. 개화예술공원은 탁 트인 곳에서 질 좋은 오석으로 만든 갖가지 조각품들을 여유롭게 감상하기 최적의 공간이다. 말 형상부터 물고기 모양까지 작품의 종류도 다양해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현재 전시된 작품들도 천 년이 지나도록 그대로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당장 확인해볼 순 없겠지만 후대의 누군가는 그 말이 진실이었음을 깨닫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총 면적 약 18만㎡를 자랑하는 개화예술공원에선 개화허브랜드도 소문난 볼거리다. 5,000㎡(1,500평) 규모의 대형 온실은 사계절 내내 푸르름을 유지하고 있다. 온실에 들어서자마자 푸릇푸릇한 관엽식물들이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실내 연못엔 수생식물을 비롯하여 각종 민물고기와 양서류들이 서식하고 있다. 입구에서 천 원을 내면 물고기 밥을 구입할 수 있는데, 앞서가던 한 아이는 이미 천 원의 행복을 누리고 있었다.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오렌지 자스민 나무와 700년 된 대유자나무가 온실의 향기를 책임지고 있었고, 물레방아가 돌아가며 물을 쏟아내는 소리는 지나가던 이들의 귀를 간지럽혔다. 철갑상어의 지느러미와 거대한 육지 거북의 등껍질에 눈을 떼지 못하던 아이들에게 개화허브랜드는 더없이 훌륭한 자연 학습장이었다. 


1년 내내 꽃향기가 가득한 ‘카페 리리스(Cafe Riris)’는 허브랜드와 맞붙어있다. 많은 이들의 발걸음을 붙잡은 리리스는 확실히 인스타그래머블한 장소다. SNS에 개화예술공원을 검색하니 리리스의 사진들이 넘쳐났다. 평소 꽃에 둔감했던 나조차 리리스에선 화려한 꽃 잔치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름다운 꽃, 아기자기한 소품, 분위기 좋은 조명. 삼박자가 갖춰지니 셔터음이 연달아 터질 수밖에. 공간에 취했던 것일까. 드라이플라워로 장식된 엽서 하나를 사서 평소 좋아하던 시 구절을 적었다. 수취인이 불명확했지만 어쩐지 상관없었다. 테스트 삼아 뿌려본 꽃 향수의 향은 집에 도착할 때까지 달콤히 남아있었다. 한 병 챙겨오지 못한 걸 두고두고 후회했다. 잔향이 더 향긋한 걸 보니, 향수와 추억은 비슷한 점이 많다.

우럭, 광어, 삼치만큼 대게 맛도 일품이다
우럭, 광어, 삼치만큼 대게 맛도 일품이다

입안 가득 서해바다를 담다


우럭은 회로도, 매운탕으로 먹어도 맛있다길래. 덩치 좋고 튼실한 놈으로 덥썩 골라버렸다. 대천항 수산시장의 인심은 푸짐했다. 덤으로 두 손 가득 얹어준 가리비와 조개, 문어는 탕에 들어가 국물 맛을 더해줬다. 만 원 세 장으로 싱싱한 우럭이 한 상 가득 차려졌다. 쌈 놓고 회 얹고, 쌈장에 고추와 마늘까지 더해지니, 서해바다가 입안에서 일렁였다. 겨울에 삼치 먹으러 오라는 횟집 아주머니의 말에 보령을 한 번 더 방문할 정당한 이유가 생겼다.


여행이 끝날 즈음, 속에서부터 든든함이 느껴졌다. 바다에, 산에, 카페에, 푸근한 음식까지. 아무래도 한 상 가득 대접을 받고 온 것 같다. 12첩 반상 풀코스로, 보령을 제대로 맛봤다. 마음까지 배불러졌다.
 

글·사진 곽서희 기자 seohee@trave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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