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악산 능선은 겹겹이 아득했고 쭉쭉 뻗은 금강소나무는 꼿꼿했다.
원주에 가면 나도 모르게 사색에 빠져든다. 무언가 채워지는 기분이랄까.

거돈사지는 허허벌판일 뿐이지만 묘하게 압도적이다
거돈사지는 허허벌판일 뿐이지만 묘하게 압도적이다

●구룡사
치악산을 품에 안은 천년고찰


구룡탐방지원센터에서 구룡사까지는 1km밖에 되지 않아 느긋한 걸음으로 25분 정도면 도착한다. 구룡사까지 이어지는 숲길에는 소나무 중에서도 으뜸으로 치는 금강소나무가 빽빽하게 솟아 있다. 금강소나무는 백두대간 줄기를 타고 경북 울진과 봉화까지 이어지는데, 그 시작이 금강산이다. 결이 워낙 곱고 단단해서 귀한 목재로 취급받아 주로 왕실에서 사용했다는 금강소나무는 다른 소나무와 다르게 줄기가 붉고 마디가 길며, 잘 휘지 않고 직선으로 곧게 자란다. 소나무 길은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하다. 솔향기는 와사비처럼 코끝을 자극해 감기로 막혔던 코가 뻥 뚫렸다. 졸졸졸 흐르는 계곡 물소리에 귀도 즐겁다.

 
소나무 산책길이 끝나면 겹겹이 쌓인 치악산의 능선이 수묵담채화처럼 펼쳐진다. 그리고 미륵보살이 반기는 사찰 하나가 나타난다. 구룡사는 치악산의 너른 품 안에 쏙 안겨 있다. 구룡사의 ‘구’는 현재는 거북을 뜻하는 ‘구(龜)’ 자를 쓰지만 과거에는 아홉 ‘구(九)’ 자를 썼었다. 전설에 따르면 연못에 아홉 마리 용이 살았는데, 의상대사가 지세를 살핀 결과 그곳이 절을 세우기에 가장 좋은 곳이라 판단해 용들을 연못에서 모두 내쫓았다고. 용 여덟 마리는 절 앞산을 여덟 조각내면서 동해로 달아나고 한 마리는 눈이 멀어 도망가지 못한 채 연못에 머물렀다. 구룡사에서 동해를 향해 있는 산봉우리가 여덟 개로 쪼개져 있는데, 여덟 마리의 용이 급히 도망가느라 생긴 골이란다. 


구룡사는 템플스테이도 운영한다. 새벽예불, 수행자의 삶 체험하기, 다담, 공양게, 수계식, 듣기·향·호흡·걷기, 108배 등 명상을 통해 나를 찾는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다.

구룡사
구룡사
구룡사 들어가는 길
구룡사 들어가는 길

●거돈사지
고요하게 압도적이다

 
현계산 기슭 조용한 시골마을로 들어서자 네모반듯한 대지가 넓게 펼쳐진다. 흐린 오후, 인적이 없는 폐사지에 홀로 서 있으니 현실로부터 동떨어져 툭 던져진 느낌이다. 어딜 가나 폐사지에는 이상한 기운이 흐른다. 허허벌판일 뿐이지만 묘하게 압도적이다. 국내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폐사지 가운데 고려시대 폐사지는 거돈사지, 법천사지, 흥법사지 뿐인데 셋 모두 원주에 모여 있다. 


거돈사지 입구에는 커다란 느티나무가 석축에 뿌리를 박고 서 있다. 나이가 700살이 넘었다니 거돈사의 흥망성쇠를 지켜본 유일한 존재라 할 수 있다. 신라 말기에서 고려 초기 사이 지어진 거돈사는 고려시대 대찰의 면모를 갖췄다. 조선 전기까지 형태를 유지해 오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고 전해지나 정확한 기록은 없다. 지금은 약 5만8,000m2(7,500여 평)의 텅 빈 절터에 바람만이 윙윙 퍼져 나간다. 남은 것이라고는 보물 750호인 삼층석탑과 부처님을 모셨던 금당터 뿐이다. 사찰을 떠나는 길, 안개 속에 느티나무와 석탑이 아스라하게 보인다. 고요한 사색 속으로 나도 모르게 빠져 들었다.

 

글 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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