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힐링프로젝트] 곶, 오름, 올레 그리고 바당 3일 上
눈길 닿는 곳마다 다른 빛이 너울거렸다. 끝을 알려주지 않는 바다, 바람에 곁을 내어준 억새.
한 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운 색을 바라보며 용기를 얻었다. 그래, 애써 분명하게 살지 않아도 괜찮겠다고.
굳이 방향을 알려주지 않아도
꼬닥꼬닥(천천히) 누군가의 발자취를 좇았다. 올레길은 제주 한 바퀴를 직접 걸어 이은 길이다. 이 길이 맞나 싶은 자연 그대로의 흙길, 걷기 쉽게 만들어 놓은 나무 보행로, 돌고 돌아 마을 어귀로 들어가는 시멘트길까지 그 모습도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해안 절경을 그대로 품어 아름답기로 소문난 올레7코스를 걸었다. 시작은 황우지해안이다. 저 멀리 짙은 푸른색부터 발치의 연한 풀빛까지. 파도가 출렁일 때는 명도를 달리하며 수시로 변신을 거듭한다. 세상의 모든 색을 담을 수 있는 건 어쩌면 물이 아닐까. 이른 봄 한가로이 앉아 바다에 풍덩 몸을 던지는 상상을 해본다.
우거진 나무 사이로 외돌개를 만났다. 홀로 우뚝 솟았다는 뜻의 외돌개는 다양한 이름을 지녔다. 고려 말기 몽골족이 장군인 줄 알고 놀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전설에서 비롯된 장군석, 풍랑을 만나 돌아오지 못하는 할아버지를 기다리다 그대로 바위가 되어버렸다는 할망바위. 외돌개는 철썩철썩 몰아치는 파도에 제 몸을 내어주며 무려 150만 년 간 이야기 속 주인공 자리를 지켰다.
파란색 혹은 주황색. 화살표를 따라 걷다 보면 이따금씩 갈림길이 나온다. 외돌개와 돔베낭길 사이에 멈춰 주위를 둘러본다. 어느 길이 맞는지 망설이다 한 쪽을 택했다. 한 걸음씩 옮기다 보니 이내 무용한 생각임을 깨달았다. 갈래갈래 흩어진 샘물이 아래로 흘러 큰 강을 이루듯 결국 같은 줄기였음을. 방향이 있는 한 세상의 모든 길은 하나로 통하지 않던가! 굳이 이정표를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된다.
글·사진 이은지 기자 even@trave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