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서희 기자
곽서희 기자

세 시간을 기다렸다.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랐을 무렵 띵동, 마침내 카톡이 떴다. 내 차례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화려한 가방들에 황홀해진다. 신상백이고 시즌백이고 눈이 빙글빙글 돈다. 클래식 라인은 두말하면 입 아프다. 며칠간 눈독들인 가방을 보여달라고 요청하니, 셀러가 난처한 표정으로 답한다. 어쩌죠, 이미 오늘 새벽부터 줄 선 고객님들이 다 사가셨어요. 이상 지난주 명동의 한 백화점 방문기.


방구석 생활에 지쳐있던 사람들이 지갑을 열기 시작했다. 이른바 ‘보복소비’라고들 한다. 코로나19가 새롭게 만들어낸 용어다. 전염병이나 재난 등 외부요인에 의해 억눌려있던 소비심리가 상황이 안정화되면서 한꺼번에 분출되는 현상을 말한다. 보복소비의 최대 수혜자는 백화점이었던 걸까. 통계에 따르면, 4월30일부터 5월3일까지 국내 백화점 3사의 매출신장률은 전년동기대비 8~13% 늘었다. 특히 해외명품 매출의 경우 34.6%에서 많게는 55.8%까지 수직상승했다. 유통업계 관계자들은 코로나19 여파로 해외여행에 쓰였을 돈이 명품 구입으로 옮겨갔다고 입 모아 얘기했다. ‘여행 대신 명품’이란 말이 수치로 증명된 셈이다. 


보복소비는 매장에만 국한된 얘기는 아니다. 이번 5월 황금연휴에는 국내여행 수요도 증가했다. 대부도로 들어가는 입구부터 차량은 통제가 불가능한 수준이었고, 강릉의 인기 숙소들은 전부 5월 중순까지 풀부킹된 상태였다. 최근 업무 차 만난 한 여행업계 관계자는 연휴에 강화도를 다녀왔는데, 평소 40분이면 갈 거리지만 2시간 넘게 소요됐다고 전했다. 울릉도 관광안내소는 굳게 닫았던 빗장을 열었고 주요 관광지들을 전부 재개장하기 시작했다. 제주도관광협회는 4월29일부터 5월5일까지 제주도 관광객 수를 19만3,000여명으로 추정하기도 했다. 


최악의 1분기였다. 2분기는 조금은 달라야한다. 한층 후끈해진 날씨만큼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타이밍이다. 변화를 위해선 달콤한 보복이 필요하다. 보복의 대상이 여행이라면 언제든 환영일 것만 같다. 그런 복수라면, 그런 앙갚음이라면, 몇 번이고 되풀이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재난문자가 도착했다. 5월6일부로 사회적 거리두기는 생활 속 거리두기로 변경된다는 안내문자다. 보복소비의 다음 수혜자는 부디 여행업계이길. 다음번 복수를 기다려본다. 

 

곽서희 기자 seohee@trave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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