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에르토 몬트행 비행기에 몸을 싣기 위해 산티아고공항에서 꼬박 3시간째 기다리고 있다.
“푸에르토 몬트 현지에 안개가 많이 낀 관계로 비행기 출발이 지연되고 있습니다."" 되풀이
되는 안내 방송. 얼른 가서 조금이라도 더 봐야하는데, 마지막인데…. 조바심에 자꾸 입술을
핥는다.

호수를 닮은 맑은도시
비행기 기다리며 착찹함을 가누다
벌써 마지막이다. 이제 남미 여정의 대미를 장식해 줄 푸에르토 몬트만이 우리를 기다릴 뿐
이다. ‘마지막'이라는 말은 늘상 어딘가 씁쓸한 기운을 풍기는데, 아니나 다를까 묘한 착찹
함이 목구멍 한가득이다. 방금 전 설탕을 담뿍 넣은 ‘다방 커피'를 쭈욱 들이켰는데도 말
이다. 그런데 하늘도 그 마음을 헤아리는가 보다. 유난히 낮은 구름을 잔뜩 띄우고는 지표면
에 바싹 다가와 있다. 한바탕 비라도 뿌릴 기세다.

남미 같지 않은 남미
“어.""
두꺼운 구름을 뚫고 푸에르토 몬트 공항에 도착하자 한 눈에도 뭔가 틀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기자기한 모습의 공항 외관도 그렇고, 공항을 막 빠져 나와 맞닥뜨린 노란색의 낙엽
과 약간 쌀쌀한 날씨도 여기가 남미의 어디쯤이라는 현실감을 간단히 무뎌지게 만든다. 그
러고 보니 차창 밖으로 보이는 건물들의 양식도 확 틀려 보인다.
웬일인지 길거리에 사람이 드물다. 그러나 어쩌다 나타나는 이 고장 사람들은 차장 안 우리
를 향해 수줍은 웃음을 던지는데 박하사탕 마냥 시원하다. 담백하다. 손까지 흔들어 주는 그
모습이 그렇게 순박하고 정겨워 보일 수가 없다.
지금까지 둘러 본 남미의 도시들은 그 명칭이 곧 도시 자체를 간명하게 설명해 주는 경우가
많았다. ‘세계의 배꼽' 쿠스코에서는 세계 문명의 중심을 자처했던 그 녹록치 않은 문화유
산과 거세된 위풍당당함을, ‘늙은 산' 마추피추에서는 장렬한 최후를 목도하고 장구한 고
독을 감내한 천년의 세월을 읽었다. 또 ‘천국같은 계단' 발파라이소에서는 산허리와 정상
을 향해 치닫는, 저마다 색깔을 달리한 어여쁜 집들과 가로수 불빛이 드리운 골목골목의 음
영을 감상했다.

무언가 하지 않고 그냥
푸에르토 몬트에 대한 단서는 그 자신이 속한 주(州)의 이름에서 찾을 수 있다. 푸에르토 몬
트는 칠레의 10번째 주인 로스 라고스의 주도인데, 로스 라고스는 ‘맑은 호수'라는 뜻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곳에는 호수가 많다. 그 중에서도 총 길이가 무려 877km에 달하는 바다같
은 호수 양키우에가 인상적이다. 양키우에란 말은 또 ‘깊은 곳(deep place)'이라는 뜻을 지
닌다고 하니 절묘한 작명이다. 제일 깊은 곳은 350m에 달한다. 거대한 호수에서 이는 바람
이 겉옷의 안쪽을 파고들더니 그동안 빠듯한 일정에서 겹겹이 쌓였던 피로가 이내 흩어진
다.
푸에르토 몬트에서 뭘하면 좋을까? 박물관에 들르고 빙하투어를 하고, 양키우에 호수에서
수상스키와 윈드서핑을 즐길 수 있지만 제일 권하고 싶은 것은 아무 것도 하지 말자는 거
다. ‘아무 것도 하지 말라'고 강제하는 것은 아니지만 푸에르토 몬트에 발을 딛는 순간 굳
이 뭘 해야한다는 강박관념은 스르르 사라진다.
‘장미의 도시'로 불릴 만큼 아름다운 정원으로 잘 가꾸어진 프루티야르는 인구 3만의 소담
한 도시. 해발 2,652m의 오소르노화산의 봉우리가 수평선 너머로 버티어 섰고, 예의 양키우
에가 마을을 휘감아 돈다. 호숫가를 따라 아름다운 집들이 죽 늘어섰는데, 발파라이소와는
또 다른 맛을 자아낸다. 얼핏 뉴질랜드 남섬의 퀸즈타운이 연상되기도 하는데 이 역시 정확
한 표현이라 하기는 어렵다.
프루티야르 곳곳을 유유자적 걸으면 그림처럼 이쁜 집들이 눈을 즐겁게 하고, 서늘한 바람
이 얼굴을 간지럽힌다. 그냥 그렇게 가벼운 산책을 하자. 마을의 소박한 정취에 그렇게 물들
자. ‘어떤 이름 모를 마을에서 한갓지게 쉬어간다'는 표현은 이곳에서 가장 어울릴 듯 싶
다.
1850년 처음 이주한 사람들이 독일인이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듯, 프루티야르 거리의 모
습이나 정원에는 지금도 독일의 그림자가 남아있다. 푸에르토 몬트가 유럽을 닮은 모습으로
비쳐지는 것은 이 때문인데, 이들 초창기 독일 이주민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박물관도 있
다. 박물관이라지만 딱딱하거나 건조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여타 건물들과 마찬가지로 아름
다운 정원과 함께 어울려 있어서이다.

고즈넉한 밤을 즐기다
푸에르토 몬트에서 1박이라도 하고 간다면 늦게 잠자리에 들지어다. 고즈넉한 도시의 밤과
호수를 배경으로 얘기꽃을 피워보자. 모든 집들이 그렇지만 우리가 머물렀던 숙소 앞에도
잔디가 가지런한데, 늦은 밤 한 손에 맥주 한 캔을 들고 벤치에 앉았더니 하늘이 더욱 가깝
다. 정원 아래로 흐르는 호수를 바라보며 홀짝홀짝 들이키는데, 때묻지 않은 풍경에 마음이
맑아져서인지 알콜이 잘도 퍼진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좋지만 함부로 입을 놀려도 그대
로 시가 될 것만 같다. 날은 어둡지만 마음은 오히려 환하게 밝아옴이 느껴진다.

다시 낮아진 하늘과 기타연주곡
참 기묘한 조화다. 산티아고공항에서 출발할 때도 그렇더니 이곳 푸에르토 몬트에서 떠나는
날도 날씨가 어둡다. 푸에르토 몬트를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언덕에 올라 시가지 전체를
바라보자 비가 듣기 시작한다.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비려니….
정말 막바지라는 생각에 셔터를 누르는 손길이 바빠지고, 언제 다시 올까하는 생각에 동공
은 더욱 확대된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버스에 올라타니 어느새 가이드가 기타연주곡을 틀어
댄다. 낮아진 남미의 하늘과 먹장구름, 그리고 기타연주곡. 다소 생뚱맞다 싶었는데 뜻밖에
잘 어울린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밖을 바라본다. 비로 인해 차창이 흐려지고 있는데, 어느
새 내 눈도 함께 흐려진다.
취재협조 : 란칠레항공 02-775-1500
라틴투어스 20-756-2721
칠레 푸에르토 몬트 = 노중훈 기자win@traveltimes.co.kr

수산시장서 느끼는 신선한 삶의 활력!
푸에르토 몬트의 고즈넉한 분위기에 한껏 취한 후 또 다른 기운을 섭취하고자 한다면 빙하
투어에 참가하거나 수산시장을 방문해 보자.
양키우에에서 20분 정도 호수 도로를 타고 가면 푸에르토바라스가 나타난다. 오소르노화산
뒤편의 트레킹 코스로 이름난 토도스 로스 산토스 호수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이 곳에서 배
를 타고 산토스 호수를 건너 아르헨티나로 넘어가기도 한다. 푸에르토 몬트의 호수 색깔들
이 다 선명하기 짝이 없지만 특히 빙하투어를 할 때 보게 되는 계곡수는 빙하가 녹아 내려
온 것으로 유난히 수소 함량이 많은 탓에 물빛이 꼭 에머랄드 빛이다. 압권이다.
역시 사람들의 정겨운 내음을 맡기에는 생선시장이 최고다. 사람들의 왁자함과 생선의 비릿
내가 오히려 정겹다.
그 중 대표적인 곳이 중앙광장에서 해안선을 따라 서쪽으로 약 2km 간 곳에 있는 앙헬모
어항인데 전복, 성게, 게 등 신선한 생선과 조개를 실컷 먹을 수 있다. 특히 이면수와 비슷
한 콘그리오가 아주 맛있다. 생선뿐만 아니라 이곳에는 선물점, 민예품점, 건어물상점 등이
즐비하다. 특히 눈에 자주 띄는 것들은 말린 조개와 루체라고 하는 미역 비슷한 해초로 만
든 목걸이 및 코차유요라고하는 해산물이다. 선물상점에서는 각종 목공예품 및 은세공품을
파는데, 잘 고르다 보면 의외로 마음에 드는 것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시장의 시끌벅적함
을 배경으로 해안을 따라 천천히 산책을 즐기거나 보트를 빌려 레롱카비만을 일람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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