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periences in JAPAN Relaxation

마쓰시마 군도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
마쓰시마 군도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

마음이 편안해지는 여행지가 있다. 자연, 미식, 온천, 트레킹 등 여러 요소가 어우러져 일상에서의 스트레스를 씻어내고 온전한 휴식에 빠져드는 그러한 곳. 일본은 곳곳의 놀라운 자연과 살가운 환대 문화, 진귀한 재료로 뽐낸 음식 등으로 다채로운 여행을 선사한다. 복잡한 빌딩 숲을 뒤로하고, 초록색으로 물든 산과 숲, 파란 하늘과 조화를 이룬 영롱한 바다에서 자연을 만끽한다.

따뜻한 온천수에 몸을 담가 치유하고, 지역별 별미로 미각을 깨우고, 산림을 거니는 등의 특별함으로 우리의 일상을 채운다. 지역도 한두 곳이 아니다. 도쿄, 오사카, 후쿠오카, 삿포로 대도시뿐만 아니라 조금만 눈을 돌리면 또 다른 보석 같은 공간에서의 힐링도 가능하다. 스마트폰과 노트북 등 쉼을 방해하는 것들과 잠시 단절한 채 온전히 일본의 쉼 속에 묻혀보는 건 어떨까. 여행자 마음에 신선한 영감을 불어넣을 휴식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


●4가지 기쁨으로 채워진  
우레시노


어느 지역으로 여행을 가더라도 꼭 해봐야 할 게 있다. 
미인 온천으로 유명한 사가현 우레시노에는 온천을 비롯해 무려 4가지가 준비돼 있다. 하루만 머물기에 빠듯한 이유다. 

온천을 즐길 수 있는 료칸
온천을 즐길 수 있는 료칸

우레시노에는 온천, 녹차, 두부, 도자기 4가지 기쁨이 있다. 우레시노라는 이름 자체가 이곳 강에서 온천이 솟는 것을 발견한 신공 왕후가 그 온천수로 병사들이 치유되자 ‘아, 기쁘다!(우레시이)’ 라고 말한 데서 유래했다. 

족욕
족욕

우레시노는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로 사가현의 남쪽에 있다. 우레시노강에는 두루미가 자주 찾아와 ‘두루미가 즐기는 온천’ 이라고도 불린다. 일본 3대 피부 미인 온천 중 한 곳으로 손꼽힌 우레시노 온천은 1,30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하루 3,000톤의 용출량을 자랑하며 온천 수질이 좋기로 유명하다. 온천수에 포함된 다량의 나트륨이 피지를 제거해 온천욕이 끝나면 미끈미끈한 피부를 경험할 수 있다. 어렸을 때 목욕탕에 다녀오면 엄마를 졸라 바나나우유를 먹어야 비로소 목욕이 끝이 난 것처럼 우레시노에서는 녹차를 즐겨야 한다. 우레시노는 에도시대부터 차 재배를 시작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수령 300년이 넘는 큰 차나무가 있을 만큼 녹차도 유명하기 때문이다. 료칸이나 거리에 있는 카페에서 쌉싸름하면서도 구수한 녹차 한모금의 여유를 빠트리지 말자. 달달한 화과자나 디저트를 곁들이면 온천욕을 제대로 마쳤다고 할 수 있다. 

우레시노에서 꼭 맛봐야 할 유도후 정식
우레시노에서 꼭 맛봐야 할 유도후 정식

노곤해진 몸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맛있는 음식도 필수다. 이곳에서는 온천 유도후도 꼭 한 번 맛봐야 한다. 유도후는 다시마를 우려낸 뜨거운 국물에 두부를 살짝 데쳐 양념장에 찍어 먹는 요리다. 유명 맛집도 즐비하다고 하니 취향에 맞춰 선택만 하면 된다. 


마지막 기쁨인 도자기는 이곳에서 400년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도자기마을 ‘요시다사라야’에서 찾을 수 있다. 도자기를 바구니에 가득 담아 구매하는 요시다사라야 트레저헌팅에 참여하면 된다. 한적한 시골 뒷골목에 있는 곳곳의 도자기 가게에서 밥공기부터, 주전자, 술잔, 물컵 등 다양한 종류의 도자기를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제주의 외돌개와 비슷한 바위 ‘오레이시’
제주의 외돌개와 비슷한 바위 ‘오레이시’

●치유와 상생의 길  
미야기올레


미야기현 올레길을 걸었다. 바다는 고요했고 숲은 여전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상처를 보듬어 걷는 시간
게센누마·가라쿠와 코스


치유와 상생의 길로 알려진 미야기올레는 미야기현의 온화한 기후와 풍부한 자연을 가득 담았다. 코스는 게센누마·가라쿠와, 오쿠마쓰시마, 오사키·나루코온천, 토메 총 4가지가 준비돼 있다. 그중에서도 태평양을 마주한 게센누마·가라쿠와 코스와 일본 삼대 절경 마쓰시마를 바라보며 크고 작은 섬마을을 지나는 오쿠마쓰시마 코스가 미야기올레의 시작이다.

시작은 10km 거리의 게센누마·가라쿠와 코스다. 가라쿠와반도 비지터센터를 시작으로 오사키 미사키 곶, 쓰나미이시, 야에몬자카, 가라쿠와 고텐 마을길, 사사하마 항구, 한조로 이어진다. 게센누마 앞바다는 일본 3대 어항 중 하나로 손꼽히는 곳이다. 한류와 난류가 만나는 지점인 게센누마는 예부터 풍부한 해산물을 전국 각지로 보내면서 크게 번성했다. 그렇지만 그들에게 바다는 마냥 복덩이만은 아니었다. 최근 몇 번은 딱 37년을 주기로 대지진과 쓰나미가 들이닥쳤다. 그럴 때마다 주민들은 신사를 세워 풍어와 안녕을 기원했다. 절벽 위를 아슬아슬하게 걷고, 우거진 숲을 헤쳐 바다가 잘 보이는 곳에 서서 기도를 올렸지만 바다는 무심했다. 

미야기올레에서 만날 수 있는 풍경들
미야기올레에서 만날 수 있는 풍경들

그럼에도 이곳 사람들은 여전히 게센누마를 지키고 있다. 결국 그들이 신사에 다녀오거나, 포구에 나가거나, 이웃을 만나기 위해 오갔던 길은 미야기올레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 여행자들을 맞이하는 따뜻한 길이 된 셈이다. 한 곳을 딱 집어 최고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길이 아름답지만, 압도적인 풍경은 단연 오사키미사키 곶이다. 일본 지질 100선에 뽑힌 대표 명소로, 2억5,000만년 동안 켜켜이 쌓인 퇴적암과 태평양의 거센 파도가 만들어낸 환상적인 풍경이다.


숲길도 다시 울창해졌다. 몇 년 전, 수십 층의 고층빌딩 높이에 버금가는 파도가 덮쳤던 곳이라고는 상상도 못 할 정도로 제 모습을 되찾았다. 자연은 다시 숲을 만들었고, 그새 또다시 쌓인 나뭇잎은 이 길을 푹신하게 지탱하고 있다. 과거의 상처는 그렇게 조금씩 아물어 갔다. 울창한 숲 사이로 잔잔한 오르막과 내리막이 번갈아 나타난다. 나무로 얼기설기 만든 안내판이 눈앞에 등장하는데, ‘쓰나미이시’라는 세 글자가 선명하게 쓰여 있다. 2011년, 게센누마를 덮쳤던 쓰나미가 끌어다 놓았다는 그 바위들이다. 무게만 해도 150톤에 육박하는 바위가 세 개, 그보다 작은 것까지 합치면 더 많단다. 그 거대한 바위들이 파도의 힘만으로 육지까지 밀려왔다. 


길은 마을 어귀에서 두 갈래로 나뉜다. 가케하마를 지나 해안 쪽으로 걷는 길이 A코스, 마을을 둘러 사사하마( 항구로 가는 길이 B코스다. 바다를 쉬이 포기할 수는 없으면 A코스다. 몽돌이 파도에 구르는 소리가 일정 간격으로 고막을 두드렸다. 청명한 소리가 마음을 편안하게 했고, 포구를 나서는 어선 한 척이 푸른 캔버스 위에 한 줄기 그림을 더해준다.


마쓰시마의 속살
오쿠마쓰시마 코스


에도 시대의 유학자 하야시 가호가 일본 3대 절경으로 칭송한 마쓰시마는 260여 개의 섬이 바다에 옹기종기 모여 있어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 미야기의 두 번째 올레길은 이곳에서 탄생했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그 마쓰시마시는 아니고, 마쓰시마 군도를 아우르는 지역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 ‘오쿠’마쓰시마다. 마쓰시마의 속살을 제대로 둘러볼 수 있는 길이다.

마쓰시마 군도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
마쓰시마 군도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

오쿠마쓰시마 코스는 순환형 코스다. 10km에 달하는 길이 오쿠마쓰시마의 주요 포인트를 거쳐 되돌아 나오게 된다. 여행자 커뮤니티센터 ‘세루코홈 아오미나’가 출발점이자 종점으로, 특산물과 간식을 판매하는 매점과 무료 족욕 시설을 갖추고 있는 휴식처다. 세루코홈 아오미나에서 시작된 길은 바로 앞에 솟은 오타카모리 산에서 갈린다. 파란색 화살표가 산 중턱에서 해안 쪽으로 내려가는 정방향 코스를, 빨간색 화살표는 산 정상으로 여행자를 안내한다.

먼저 오타카모리산을 넘는다. 숲길을 걷는 내내 동백나무들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그러다 갑자기 눈앞에 등장하는 건 마쓰시마의 풍경. 그것도 태풍이 완전히 지나간 뒤의 평온함만이 가득한 마쓰시마만의 바다다. 섬 끄트머리에 서 있는 붉은 도리이와 주변에 정박해 있는 어선들, 그리고 파란 하늘을 하얗게 물들인 구름이 수면에 비치며 더욱 아름답게 어우러진다.

마을을 지나 작은 언덕을 하나 더 오르내린다. 마을 어귀와 논밭의 둑, 자연이 만들어 낸 오솔길이 차례로 등장한다. 바다를 메우고 제방을 쌓아 만든 밭에는 마침 미야기의 특산물인 풋콩이 무르익어 가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오쿠마쓰시마 코스 풍경과 미야기올레 스탬프
오쿠마쓰시마 코스 풍경과 미야기올레 스탬프

제주의 용머리해안을 닮았다는 바위 ‘신하마미사키’를 지나면 한동안 평지를 걷는다. 길은 오타카모리산으로 향한다. 오쿠마쓰시마 코스를 걷는 내내 만나 볼 수 없던, 가파른 경사와 거친 산길이 연달아 나타난다. 정상에 마련된 데크에 올라선 순간 모든 힘듦이 싹 사라진다. 마쓰시마만이 한 폭의 풍경화처럼 파노라마로 펼쳐지는데, 오쿠마쓰시마 코스를 마무리하는 최고의 작품을 마주하게 된다.

 

●우리가 고토로 간 이유  
고토열도


고토에는 보고만 있어도 편안해지는 색, 파랑과 초록이 가득하다. 바다 풍경이 예쁜 국립공원이 즐비하고, 한 번쯤 올라보고픈 산도 있다. 마음의 위안을 줄 특별한 공간은 덤이다. 

성지순례의 한 코스로만 알려진 고토열도에는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비경이 곳곳에 숨어있다. 특히 자연의 품에 안겨 신선한 영감을 받고 싶은 여행자에게 제격이다. 고토는 일본 나가사키현의 서쪽 140여 개의 유·무인도가 이어진 열도다. 주요 섬은 5개로, 나카도리지마와 와카마쓰지마를 ‘위쪽 고토’를 뜻하는 가미고토라 부르고, 후쿠에지마·히사카지마·나루시마를 ‘아래쪽 고토’라는 뜻으로 시모고토라고 부른다. 대부분의 지역이 사이카이국립공원에 속해 있을 정도로 바다 풍경이 아름다운 곳이다. 또 섬이라서 보존될 수 있었던 깨끗한 자연과 고립감을 토양으로 생명력을 키워 온 기독교공동체 문화, 섬 특유의 느슨한 라이프스타일을 모두 가지고 있다. 여행법도 다양하다. 캠핑, 로지 등의 베이스캠프를 마련해 한곳에서 오래 머물거나, 자전거를 대여해서 일주할 수도 있다. 렌터카로 좀 더 편안한 여행도 가능하다. 곳곳에 바다가 가까우니 스노클링, 낚시도 필수다.

고토 열도는 자전거로도 즐길 수 있다
고토 열도는 자전거로도 즐길 수 있다

여행의 시작은 고토열도 중 가장 큰 섬인 후쿠에지마다. 섬의 랜드마크로는 ‘오니다케’와 아분제 용암해안이 있다. 오니다케는 해발 315m의 구상화산으로 정상부가 모두 잔디로 덮여 있는 곳으로. 잔디 썰매를 탈 수도 있을 정도로 수북하다. 아분제 용암해안은 보드라운 평화가 오기 전에 분출됐던 화기와 열기의 흔적이 새겨진 곳으로 길이가 7km에 이른다. 아분제 관광안내소에 들러 화산섬의 지형을 이해하고 흥미로운 민속자료도 관람할 수 있다. 이곳에서 시작된 작은 만을 끼고 있는 마을이 작은 항구 마을인 도미에이고, 산산도미에 캠핑장도 있다. 후쿠에지마의 중요한 풍경은 또 있다. 아세츠곶에 올라서 관음상전망대 앞으로 펼쳐지는 다카하마 해수욕장이다. 도미가 담긴 바구니를 들고 서 있는 관음상은 가장 높은 곳에서 풍어와 안전을 빌고 있다. 다카하마 해수욕장은 계곡에서 흘러내린 물이 모래사장에 길을 만들며 바다로 흐르는 것이 특색이다. 조금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돈토마리 해수욕장이 고운 풀등을 드러내 놓고 있다.

다카하마 해수욕장
다카하마 해수욕장

고토열도의 가장 북쪽으로 향하면 신카미고토초에 속하는 나카도리지마와 만난다. 유서 깊은 성당들은 물론이고, 고래잡이의 역사를 보여 주는 경빈관 박물관, 고토 우동이나 동백기름을 만들어 볼 수 있는 체험, 관광물산 센터도 있다. 고토열도 내에서 꽤 넉넉한 여행 인프라가 갖춰진 곳이다. 

캠핑으로 즐기는 고토
캠핑으로 즐기는 고토
가이도 신사
가이도 신사
지옥 냄비 우동
지옥 냄비 우동

마음이 허하다면 동쪽 끝의 부속섬 가시라가시마에 있는 천주당으로 향해 보자. 무인도였던 곳에 ‘숨은 기리시탄’들이 들어와 은신하면서 마을이 만들어졌고 유명한 가시라가시마 천주당을 세웠다. 규모는 아담하지만 바다를 배경으로 둔 성당의 평온함은 우리의 마음을 다 채울 만큼 충분하다. 일본에서도 보기 드문 석조 성당이라 12개의 유네스코 문화유산 리스트에도 이름을 올렸다. 마음의 평안을 얻었다면 점심 메뉴로는 고토의 명물인 고토 지고쿠 다키지옥 냄비 우동을 추천한다. 일본 3대 우동으로 꼽히는데, 끓는 물에 면을 익혀 날치 육수 장국 혹은 날계란을 푼 장에 바로 담갔다 먹는다. 면에 동백기름을 발라서 면이 쉽게 불지 않는 것도 특징이다. 누구나 간편하게 해 먹을 수 있는 요리라서 선물용 국수세트도 인기다. 당나라를 오갔던 견당사들로부터 처음으로 면 문화를 받아들인 지역이 바로 기항지였던 신카미고토초였음을 기억하는 의미도 있다. 

고토의 바다를 지키는 성모상
고토의 바다를 지키는 성모상

신카미고토초는 5개의 지구로 나뉘고 각각의 특징이 있다. 그중에서도 동쪽 아리카와 지구는 에도시대부터 고래잡이로 번성했던 곳이다. 고래의 턱뼈로 만들어진 가이도 신사의 도리이가 그 증거다. 구지라 미야마 전망대는 고래를 관찰하고 출어 신호를 보내기에 가장 유리한 위치에 만들어졌다. 이밖에도 히사카지마, 나루시마 등 고토열도에서 찾아가야 할 곳이 많다. 그렇지만 보통 첫 여행에서 다 방문하기는 어렵다. 여행은 때로 아쉬움을 남겨 놓을 때가 더 아름답다. 우리가 이곳을 다시 가야 할 이유기도 하다.

 

이성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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