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periences in JAPAN Art

사방이 전면 유리인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은 탁 트인 공간감을 선사한다
사방이 전면 유리인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은 탁 트인 공간감을 선사한다

말하자면 ‘예술 알레르기’가 좀 있었다. 예술에는 문외한이라는 이유로 병적으로 미술관을 멀리했다. 여행 일정에서도 갤러리와 박물관은 제외시켰다. 프랑스 파리에 처음 갔을 때에도 그 유명하다는 각종 미술관들은 전부 피해 다녔으니, 병세가 꽤 심각했다. 무자비하고, 편협한 결단이었다. 이런 나에게 처방전을 내려준 건 일본의 한 미술관이었다. 여행 중 우연히 들린 그곳에서 예술이 모두에게 열려있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하게 됐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들어오고 나갈 수 있는 곳. 미술의 ‘미’자도 모를지라도 충분히 웃고 즐길 수 있는 곳. 편히 쉬다 가볍게 떠날 수 있는 곳. 그곳을 여행하면서 미술관과 일상공간의 딱딱한 경계는 무참히 허물어졌다. 예술은 더 이상 낯설지 않았다. 


예술을 보면 지역이 보인다. 예술가들의 작품에는 흔히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에 대한 사랑이 묻어있기 마련이다. 지역의 곳곳에 예술의 흔적이 유적, 또는 폐허의 형태로 존재하는 경우도 많다. 지역이 보이면 애정이 생기고, 애정은 곧 그리움과 추억으로 변한다. 그렇게 여행은 한 단계 깊어진다. 나는 이제 보다 깊고 진득한 여행을 위해, 일정에 미술관을 넣어보려 한다. 처방전의 약효가 나타나는 모양이다.

아이들도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21세기 미술관
아이들도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21세기 미술관

●너와 나, 모두의 미술관 
가나자와

 
가나자와를 ‘전통’으로만 기억하는 건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에 대한 실례다. 

유료 전시뿐 아니라 무료 관람이 가능한 현대미술작품들도 다수 전시돼있다
유료 전시뿐 아니라 무료 관람이 가능한 현대미술작품들도 다수 전시돼있다

겐로쿠엔과 히가시차야만으로 가나자와가 전통만 고수하는 도시라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겐로쿠엔에서 가까운 21세기 미술관에 가면, 기발한 미술관과 작품들에 깜짝 놀라게 된다. 세지마 가즈요와 니시자와 류에가 설계한 21세기 미술관은 독특한 콘셉트의 건축물로 2004년 문을 열자마자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외관은 UFO를 닮았다. 둥그런 원형 모양으로, 벽면이 전면 유리로 돼있어 안과 밖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를 구경하는 독특한 구조다. 지극히 간결한 디자인은 새로운 세계에 들어선 기분을 느끼게 한다. 총 5개의 출입구는 도심과 바로 연결돼 있다. 바쁜 도심의 풍경과 단조롭고 단순한 미술관의 디자인이 극명하게 대비된다. 또 모든 곳이 시원하게 오픈돼있다. 누구나 언제든 쉽게 드나들 수 있다는 얘기다. 

21세기 미술관은 누구나 자유롭게 쉬었다 갈 수 있는, 열린 미술관이다
21세기 미술관은 누구나 자유롭게 쉬었다 갈 수 있는, 열린 미술관이다

21세기 미술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은 아르헨티나 작가 레안드르 에를리치의 ‘수영장’이다. 물을 채운 수영장 바닥에 강화유리를 깔아서 수영장 아래와 위에서 수영장을 내려다볼 수 있도록 했다. 미술관 잔디 곳곳에 설치된 12개의 관도 각각의 소리를 이어 주는 신기한 작품이다. 일부 현대미술작품은 직접 만지고 앉아볼 수 있는 체험형 작품으로 무료 관람도 가능하다. 미술에 조예가 깊지 않아도 괜찮다. 21세기 미술관은 미술이 특정 계층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쉽게 참여하고 놀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아이와 부모, 지역 주민들 등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준비돼있다
아이와 부모, 지역 주민들 등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준비돼있다

다양한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부모와 아이가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키즈 스튜디오가 대표적이다. 아이가 직접 작품을 제작하거나 전시회 및 계절에 맞는 테마로 예술 체험을 하는 워크숍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미술관이 되겠다는 게, 21세기 미술관의 철학 중 하나다. 가나자와 시내에 위치한 초등학교, 중학교와 연계 사업도 진행한다. 가나자와 시내의 모든 초등학교 4학년을 미술관에 초대해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중학교와도 연계해 아티스트와 워크숍을 실시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들도 미술관에 참여한다. 지역 주민들은 전시회 및 장기 프로젝트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자원 봉사자로 활약하고 있다.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모두를 위한 미술관. 21세기 미술관이다.

 

21세기 미술관
주소  1 Chome-2-1 Hirosaka, Kanazawa, Ishikawa 920-8509
시간  평일 오전 10시~오후 6시(금·토요일은 오후 8시까지), 매주 월요일 휴무
가격  미하엘 보레만스 마크 만다스전 1,200엔, 컬렉션전 450엔, 교류존 무료
전화번호  076-220-2800  
홈페이지  www.kanazawa21.jp


●가장 현대적인 놀이터  
도야마


미술관과 놀이공간의 구분조차 무의미해졌다. 
도야마현 미술관은 현대미술관이자 아늑한 휴식처인 동시에,
아이들에겐 가장 감각적인 동네 놀이터다.  

저녁 무렵 도야마현 미술관 옥상에서 본 후간 운하의 야경
저녁 무렵 도야마현 미술관 옥상에서 본 후간 운하의 야경

예술 작품과 공장제 상품, 작가와 관객, 주류와 비주류. 현대미술에서 이들을 구분 짓는 것은 이제 무의미하다. 미술관도 더 이상 젠체하는 공간이 아니다. 자연, 지역 문화, 체험을 누릴 수 있는 놀이공간으로 다채롭게 변모하고 있다. 도야마현 미술관은 그런 의미에서 가장 현대적인 미술관이라고 할 만하다. 3개 층, 5개 전시실로 규모가 작은 편이지만 현대미술 거장들의 회화 작품부터 포스터, 디자인 가구까지 소장품만 1만 점이 넘는다. 격월마다 바뀌는 소장품 전시를 보기 위해 멀리서도 일부러 찾아올 정도다. 

가구 전시실에서는 다양한 건축가들의 가구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가구 전시실에서는 다양한 건축가들의 가구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가구 전시실에 있는 르코르뷔지에의 안락의자, 안토니오 가우디의 나무 벤치는 천재 건축가들의 또 다른 재능을 여실히 보여 준다. 다키구치 슈조 컬렉션도 흥미진진하다. 도야마현 태생의 미술평론가 다키구치 슈조가 뒤샹, 재스퍼 존즈, 쿠사마 야요이, 골드 베르크 같은 유명 예술가로부터 받은 선물과 작품을 소장한 전시실이다. 그중 호안 미로가 그림을 그리고, 다키구치 슈조가 시를 쓴 작품은 사뭇 감동적이다. 낙서처럼 자유롭게 쓴 글과 그림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 마치 두 사람의 순수한 우정을 표현한 듯하다. 미술관의 분위기 또한 인상적이다. 계단과 2층 복도를 도야마산 삼나무로 감싸서 내 집 마루처럼 정감 있고 아늑하다.

도야마현 미술관은 규모는 작은 편이지만 1만 점이 넘는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도야마현 미술관은 규모는 작은 편이지만 1만 점이 넘는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도야마현을 대표하는 미술관인 만큼 지역의 색채도 최대한 흡수했다. 2층 로비에선 통 유리창을 통해 눈 덮인 다카야마 산봉우리가 보이고, 야외 전시 공간에는 귀여운 백곰 가족 세 마리가 싱긋 웃고 있다. 동물을 주로 조각하는 미사와 아쓰히토의 작품으로, 목각용 조각칼로 통나무를 수천 번 다듬어 완성했다. 곰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눈을 맞추면, 오드아이(odd-eye)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한쪽 눈은 파랑색, 나머지 한쪽은 초록색이다. 각각 도야마의 깨끗한 물과 푸른 산을 상징한다. 

도야마현 미술관 앞 환수 공원은 미술관과 함께 둘러보면 좋을 또 하나의 명소다
도야마현 미술관 앞 환수 공원은 미술관과 함께 둘러보면 좋을 또 하나의 명소다

아이들에겐 미술관이 동네 놀이터다. 컬렉션 전시를 제외하면 모든 공간이 무료로 운영되고, 그중에서도 특히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 많다. 몸동작으로 그림을 그리는 3D 애니메이션 코너, 직접 작품을 만들어 보는 아틀리에가 있고 건물 옥상은 아예 놀이동산이다. 탁 트인 하늘 아래 디자인 조형물을 놀이기구 삼아 신나게 뛰놀 수 있다. 


저녁 무렵 옥상에서 보는 후간 운하의 야경도 눈부시다. 야간 조명이 켜질 때쯤, 미술관 앞 환수 공원을 산책해 보자. 2008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스타벅스로 꼽힌 환수공원 스타벅스에서 잠시 몸을 녹이는 것도 좋겠다.

 

도야마현 미술관
주소  3-20 Kibamachi, Toyama Prefecture 930-0806
시간  오전 9시30분~오후 6시, 매주 수요일 휴관
가격  컬렉션 전시 300엔, 초·중·고등학생 무료
전화번호  +81 76-431-2711   
홈페이지  tad-toyama.jp

 

곽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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