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도락 3탄 강릉+속초 1박2일] 中

실내 여행지라고 얕봤다면 지금이야말로 겸허해질 때다.

욕심 많은 하슬라아트센터는 바다도, 숲도, 모두 품었다

가까운 것에 관심 두지 않았던 날들에 대한 반성은 의외로 강릉의 한 책방에서 비롯됐다. 잦은 방문으로 낯설지 않은 강릉이었지만, 고래책방은 초행이었다. KTX 강릉역에서 도보 13분. 복작복작한 도심을 지나 도착한 서점은 어딘가 바다를 닮아있다. 

고래책방의 참맛은 아늑한 지하공간에 있다
고래책방의 참맛은 아늑한 지하공간에 있다

넓은 공간감 때문일까 했는데,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고래책방에는 한계가 없었다. ‘책방’이라는 상호는 그저 상호일 뿐, 고래책방은 무한한 다른 공간으로 변형이 가능했다. 칸칸이 책들로 빼곡한 가운데, 1층 한쪽 구석에서는 향긋한 커피 향과 고소한 빵 냄새가 났다. 먹음직스러운 빵을 판매하는 고래빵집이다. 독서에는 커피와 빵이 빠질 수 없지. 좋은 조합이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돌리니 반대편에는 편집숍 못지 않은 공간이 조성돼있다. 강릉의 유명 관광지 일러스트가 그려진 엽서, 감각적인 에코백과 티셔츠 등이 거침없이 유혹한다.

고래책방의 활용도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2층은 어린이들을 위한 책방으로 아기자기하게 꾸며졌고, 3층은 세미나실이자 브런치 카페로 운영되고 있다. 이쯤 되니 고래책방은 단순한 서점이 아닌 복합문화공간이라고 칭하는 게 맞겠다. 층수 별로 구경을 마치고 지하로 내려가니 책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공간이 펼쳐졌다. 편히 독서를 하기에도, 도란도란 수다를 떨기에도 부족함이 없는 장소다. 일상에 지쳐 마음이 아주 너덜너덜해질 때, 오랜 친구와 함께 좋아하는 책 한 권 손에 들고 부담 없이 찾고만 싶다. 


고래책방에서는 속초, 포항, 목포, 제주 등 바다 가까이 있는 전국의 11개 서점에서 큐레이션한 도서들도 판매하고 있다. 제목만 봐도 가슴이 설레는 책들이 많다. 기꺼이 믿고 맡겨보기로 하고, 책 한 권을 뽑아 들었다. 계산을 끝내고 돌아서는데 벽면에 적힌 한 문구가 마음을 사로잡았다. ‘서점만큼 인간의 심성이 약해지는 곳이 어디 있는가?’ 약해진 심성과 말랑해진 감성으로 서점을 나선다. ‘고(go)래(re)’의 이름에 담긴 뜻처럼, 조만간 이곳을 곧 다시 찾게 될 것 같다. 


강릉 글·사진=곽서희 기자 seohee@trave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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