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 나만 알고 싶은 아지트 같은 곳, 대단하지 않아도 특별한 마을.
유독 애틋한 소도시의 기억을 더듬어 봤다.

●동화 같은 하루
아일랜드 킬케니 Kilkenny, Ireland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서 차로 약 2시간 거리에 있는 작은 도시, 킬케니는 더블린을 찾는 여행자들의 당일치기 근교 여행지로 알려져 있다. 유럽 중세의 모습을 간직한 여느 소도시들과 비슷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특히나 로맨틱한 분위기가 감도는 것만은 확실하다. 드넓은 초록 잔디에 둘러싸인 킬케니성(Kilkenny Castle), 마을을 가로지르는 강변에 다닥다닥 붙은 색색의 건물 등 마을 그 자체로 동화 속 장면 같다. 호숫가에 노니는 백조와 함께 여유로이 시간을 보내는 일도 이곳에선 당연한 일상이다.

작은 서점, 베이커리 등 구경거리도 심심찮게 포진해 있는 편인데 이 모든 걸 뚜벅뚜벅 걸어서 누릴 수 있다. 평소 크림 에일 맥주를 좋아한다면 마을 펍을 전전해 볼 것. 킬케니는 아일랜드에서 가장 오래된 양조장 스미딕스(Smithwick’s)가 1700년대부터 생산해 온 ‘킬케니’ 맥주의 본고장이다. 기네스처럼 풍성한 거품을 자랑하면서도 쓴 맛이 덜하고 더 부드럽다.

▶Comment by  | 김예지 기자
영화 <노트북>을 본 적이 있다면 백조가 얼마나 낭만적인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는지 잘 알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 혹은 사랑에 빠지고 싶은 사람과 킬케니의 호숫가로 향하면 좋겠다. 해가 지는 늦은 오후, 마을 강변에 놓인 다리를 함께 건넌다면 단언컨대 그린라이트의 확률은 치솟는다.

●왕실의 여름 휴양지
포르투갈 카스카이스 Cascais, Portugal


오늘 오후엔 해변에서 일광욕을 할까, 해변도로를 따라 자전거를 탈까. 카스카이스에서 할 수 있는 고민이라곤, 고작 이런 행복한 것뿐이다. 리스본에서 서쪽으로 28km. 기차를 타고 40분을 달리면 푸른색보단 초록빛에 가까운 바다가 차창 밖으로 넘실거린다. 카스카이스는 포르투갈 사람들 사이에서도 손꼽히는 휴양지로, 1870년에는 포르투갈 왕실의 여름철 거처로 선택되기도 했다. 대서양의 온화한 기후와 따뜻한 햇살 덕에 10월까지도 해수욕을 즐기는 이들도 많다. 인근의 유명 관광지와 함께 묶어 여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사실 카스카이스에선 하루를 꼬박 있어도 부족하다. 환한 여름달이 뜨는 늦은 오후, 자전거로 9km의 해안도로를 달리다 보면 야금야금 저무는 해가 아쉬워진다. 카스카이스에 간다면 맨발만큼 편한 운동화와 수영복은 배낭 속 필수템이다.

▶ Comment by  | 곽서희 기자
그리 길지도 않은 여정이었건만, 본의 아니게 포르투갈에 머무는 동안 카스카이스를 두 번이나 갔다. 수영복을 깜빡하고 챙겨 가지 않았던 탓이다. 물론 발걸음은 한껏 가벼웠다. 이틀 정도는 기꺼이 할애할 가치가 있는 곳이었기에. 두 번 모두 날씨는 경험할 수 있는 최고치에 가까웠고, 바닷물은 살결보다 따뜻했으며, 불만이라고 한다면 한 번 더 오고 싶은 마음을 누를 길이 없었다는 것 정도다. 

 

●동화 같은 하루
일본 긴잔 Ginzan, Japan


아련하다. 뭉근한 온천 연기가 피어오른다, 그리고 목조 료칸.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배경지다. 야마가타현에 위치한 긴잔은 작은 온천 마을이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긴잔강 양쪽으로 삐걱대는 료칸이 가득하다. 1968년, 국민 보양 온천지로 지정될 당시만 해도 획기적인 현대식 건물이었다. 무려 목조 발코니 건물이다. 외부는 우리나라로 치면 단청에 해당하는 ‘고테예’로 장식한 것이 특징이다. 긴잔의 정취는 밤에 최고조에 달한다. 긴잔강을 감싼 가스등이 은은하게 목조 료칸을 밝힌다. 유카타 차림을 한 사람들이 하나둘씩 산책에 나선다. 마법 같은 순간. 10분이면 마을을 전부 돌아볼 수 있다. 긴잔에 간다면 다이쇼 시대의 분위기를 당장 오늘이라도 느껴 볼 수 있는 것이다.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히노키탕에 몸을 담근다. 긴잔의 하루는 그렇게 간단하고, 아련하다. 

▶ Comment by  | 강화송 기자
긴잔에는 다양한 료칸이 있다. 그중 고잔 카쿠라는 료칸은 유독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가득하다. 객실까지 오르는 나무 계단에서는 삐걱 소리가 들리지만, 다다미는 여전히 견고하고 식사 시간이면 기모노를 곱게 두른 할머니가 매번 상을 차려 주신다. 온천 역시 대중탕이 아니라 아담한 히노키탕. 그 어느 곳보다 사색에 잠겨 긴잔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포인트다.

 

●탁발과 미사
태국 찬타부리 Chantaburi, Thailand


방콕에서 동남쪽으로 250km를 달리면 찬타부리에 도착한다. 찬타부리는 과거 프랑스와의 국경 분쟁으로 무려 11년 동안 프랑스의 지배 하에 있었던 도시다. 당시 베트남에서 건너온 수많은 가톨릭 이주민들이 찬타부리에 터를 잡으며 도시 곳곳에 가톨릭 문화가 깃들기 시작한다. 1711년, 태국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찬타부리 대성당이 그 결과다. 내부에는 1.2m에 달하는 마리아상이 있는데, 총 20만 개의 사파이어와 루비, 에메랄드, 금이 박혀 있을 뿐만 아니라 밑에 놓인 거대한 지구본에는 블루 사파이어가 수놓아져 있다. 약 2만 캐럿 이상의 보석을 금세공 업자들이 기부해 탄생시켰다고 한다. 찬타부리의 새벽은 놓치면 안 되는 포인트. 한쪽으로는 성스러운 미사가 열리고, 한쪽으로는 황색 가사를 걸친 승려들의 탁발 행렬이 이어진다. 성당 앞을 지나치는 수도승의 모습, 오로지 찬타부리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Comment by  | 강화송 기자
찬타부리는 ‘과일의 땅’이라고 불린다. 과일을 먹다 무심코 버린 씨앗마저 쑥쑥 자랄 정도로 땅이 비옥하기 때문이다. 거리에는 각종 열대과일이 널려 있다. 람부탄, 망고스틴, 망고, 용과 등등. 특히 두리안이 유명하다. 매년 태국에 유통되는 두리안의 절반은 찬타부리에서 수확된다. 과육은 달콤하지만, 냄새는 적응하기 어렵다.

●예술이 깃든 도시
프랑스 생 나제르 Saint NazAire, France


프랑스 서부의 대표적인 도시로는 낭트, 렌, 생 말로 그리고 생 나제르가 있다. 생 나제르는 주도인 낭트의 외항이기도 하다. 어업과 조선업에 조예가 깊은 도시, 그보다 예술이 깃든 도시다. 루아르강 하부를 따라 60km에 걸쳐 뻗은 아트 트레일 ‘에스튀에르(Estuaire)’를 따라 여행하자. 현대 미술가 황용핑(Huang Yong Ping)이 바다에 띄워 낸 뱀의 뼈대, 루아르강변 비스듬히 세워진 ‘메종 덩 라 루아르’, 공장 벽면에 그려진 삼각형의 연속 ‘쉬트 드 트리앙글’ 등이 대표적인 예술 작품이다.

브리에르(Briere) 습지도 빼놓을 수가 없다. 1970년대부터 프랑스 정부가 지역자연공원으로 지정해 보존하고 있는 곳이다. 들판에는 거위와 양, 말이 가득하다. 배를 타고 습지를 천천히 돌아다니다 보면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속 풍경이 펼쳐지는 것만 같다. 인간이 만든 예술작품이 지천에 널려 있고, 동물이 있고, 무엇보다 대서양이 있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할까.

▶Comment by  | 강화송 기자
생 나제르 다리는 길이가 무려 3,356m에 달하는 대교다. 그 뒤로 15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프랑스 최대 조선소, 샹티에 드 라틀랑티크(Chantiers de I’Atlantique)가 펄쳐진다. 조선소 외곽으로 향해 잠수함 에스파동 옥상으로 올라서면 2km에 달하는 거대 설치미술 작품 ‘스위트 드 트리앙글(Suite de Triangles)’을 볼 수 있다. 별건 아닌데, 참 감명 깊다. 예술은 보통 그런 것이다.

 


글·사진 트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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