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랭지 언덕은 바람으로 가득하다. 희미하게 바다 내음도 실려 온다.
수직의 산과 수평의 바다는 그렇게 이어진다. 하늘 다음 태백은 높고 그 아래 삼척 바다는 너르다. 

태백 바람의 언덕. 대형 풍력발전기들이 세찬 바람을 맞으며 서 있다
태백 바람의 언덕. 대형 풍력발전기들이 세찬 바람을 맞으며 서 있다

 

●가장 높은 곳에서 깊은

태백은 높다. 태백산이 우뚝하고 여러 고봉이 격랑처럼 솟구치며 그 뒤를 따르니 어딜 가도 높다. 가마득한 옛날부터 사람들은 태백산 꼭대기(1,567m)에 천제단을 쌓고 하늘에 제를 올렸다. 사람의 바람이 닿을 만큼 하늘과 가깝다고 생각해서 그랬다. ‘하늘 다음 태백’이라 불리는 이유다. 이러니 태백 여행도 높을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동굴인 용연동굴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동굴인 용연동굴

태백에서는 동굴도 높은 곳에서 깊다. 우리나라 동굴 중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용연동굴이다. 수억 년 세월이 굳은 석회동굴이다. 매표소에서 꼬불꼬불 산길을 따라 1.1km나 더 올라야 동굴 입구에 다다르니 높긴 높다. ‘전국 최고지대 동굴, 해발 920m’라는 수식어에 빨려들 듯 컴컴한 동굴로 내려간다. 영월 고씨동굴, 단양 고수동굴, 울진 성류굴, 삼척 환선굴…. 웬만한 우리나라 석회동굴은 다 만났으니 뭐 새로울 게 있겠냐 싶으면서도, 우리나라 모든 동굴을 통틀어 가장 높다는 독보적 가치 덕분에 조바심마저 인다. 동굴길이는 843m로 제법 길다. 내부에는 뻥 뚫린 대형 광장도 있다. 죠스, 맘모스, 박쥐, 지옥문 등등 기발하거나 엉뚱하거나 가끔은 생뚱맞은 이름이 붙은 석주, 종유석, 석순, 터널이 반긴다. 새롭거나 대단할 거야 없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것들이니 새롭고 대단하다. 

 

●태백 높은 언덕에 바람 물결

태백 높은 걸 한눈에 확인하고 싶어 ‘바람의 언덕’으로 향한다. 해발 1,305m 매봉산 능선을 따라 대형 풍력발전기들이 주르륵 늘어서 바람을 맞는다. 산의 한쪽 가파른 경사면은 온통 고랭지 배추밭이다. 마침 산비탈 배추밭 여기저기서 농부들이 배추 모종을 심느라 구슬땀을 흘린다. 바람의 언덕으로 오르는 시멘트 포장도로는 원래 고랭지 배추 농사를 위한 길이다. 하필 배추심기가 한창일 때 굳이 비좁은 농로를 비집고 올라도 괜찮을까, 농사를 방해할까 죄스러운 마음에 머뭇거리는데, 마주 오던 트럭이 길을 내주며 어서 가라 손짓이다. 배추 농부의 그 환대 아니면 무관심에 용기가 난다. 산비탈을 지그재그로 오르는 농로는 좁고 꽤 가팔라 아찔하다. 그래도 지그재그를 한 번 완료할 때마다 시야가 높아지고 풍경은 넓어지니 오르기를 멈출 수는 없다. 

바람의 언덕 한쪽 비탈면은 고랭지 배추밭이다
바람의 언덕 한쪽 비탈면은 고랭지 배추밭이다

 

한순간에 사방이 탁 트이면 바람의 언덕에 도착한 거다. 거대한 풍력발전기 아래 너른 터에 선다. 산 능선을 넘는 바람은 제법 세차다. 대형 풍력발전기 날개도 돌리는 바람답다. 바람이 오는 쪽으로는 푸른 산줄기가 겹을 이루며 뻗어 나가고, 바람이 가는 쪽으로는 하늘이 아득하게 멀어진다. 왠지 바람은 산에서 내려와 바다로 가는 것만 같다. 바람이 잠시 잦아든 틈을 타, 여기저기서 풍경을 담고 풍경 속에 자신을 담느라 여념이 없다. 관심 없다는 투로, 풍력발전기는 슁~슁~슁 제 큰 날개를 무심하게 돌릴 뿐이다. 배추가 한껏 부풀어 오르면 온통 푸른 물결로 가득 차겠구나, 아직은 황톳빛인 배추밭을 내려다보며 온통 푸르를 한여름 풍경을 미리 담는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역인 추전역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역인 추전역

 

●거슬러 오르면 만나는 풍경 

‘우리나라 제일 높은 역’도 태백 차지다. 해발 855m에 있는 추전역이다. 태백은 험준한 산악지형 탓에 교통의 오지일 수밖에 없었다. 태백의 무연탄을 전국으로 수송하는 데도 어려움이 컸던 터라, 이를 해결하기 위해 1973년 태백선 철도를 깔고 추전역도 만들었다. 추전역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역이라는 타이틀을 유지하고 있다. 지금이야 관광열차만 가끔 정차하는 작고 오래된 시골 간이역에 불과하지만, 높은 역을 찾아 낮은 곳의 사람들이 끊임없이 찾아오니 외롭지 않다.

물길이 석회암 산을 뚫고 지나가면서 구문소를 만들었다
물길이 석회암 산을 뚫고 지나가면서 구문소를 만들었다

물길을 거슬러 오르면 그 시작점에 이른다. 한강은 태백 검룡소에 이르고, 낙동강은 태백 황지에서 멈춘다. 한강과 낙동강의 발원지를 모두 품고 있을 정도로 태백은 높다. 검룡소까지는 왕복 3km에 이르는 산길을 걸어야 한다. 아쉽게도 시간이 부족하다. 한강 대신 낙동강 발원지로 향한다. 황지는 태백시 한복판 공원에 있어 쉽게 찾을 수 있다. 상지, 중지, 하지 3개의 작은 연못으로 이뤄져 있는데, 상지의 수굴에서 하루 5,000톤의 맑고 차가운 물이 솟는다고 한다. <동국여지승람>에도 ‘황지가 낙동강의 근원지’라고 기록돼 있다 하니, 오래전부터 인정받아온 셈이다. 돈에 인색하기 짝이 없던 ‘황부자’가 벌을 받아 그의 집이 땅으로 꺼져 황지가 됐다는 전설도 만날 수 있다. 

낙동강 발원지인 황지
낙동강 발원지인 황지

황지에서 흘러나온 물은 낙동강을 향해 아래로 흐르다 커다란 석회암 산에 막혔는데, 오랜 세월 끝에 결국 뚫고 지나갔다. 그렇게 구문소가 생겼다. 구문소를 보고 있노라면, 멈춤이 없는 시간과 끈질기게 흐르는 물을 경외할 수밖에 없다.

 

●넓고 푸른 삼척 바다를 달려

 

물길이 석회암 산을 뚫고 지나가면서 구문소를 만들었다
장호항에서 투명 카약을 즐기는 여행객들

삼척의 넓고 푸른 바다를 오른쪽에 두고 아래에서 위로 달린다. 삼척 아래쪽 임원항이 시작점이다. 이곳에서 수로부인 헌화공원에 오른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해가(구지가)’ 속 수로부인 이야기를 토대로 만든 공원이다. 절세미인 수로부인을 용이 납치해 바다로 들어가자 사람들이 노래를 불러 수로부인을 구출했다는 이야기다. 거북아 거북아 수로부인을 내어라, 내놓지 않으면 그물을 넣어 잡아 구워 먹으리…. 어디선가 구지가가 들리는 듯하다. 용에게 납치당하는 수로부인을 형상화한 큰 조형물이 중심지다. 공원 정상에 서니 넓고 푸른 바다가 한눈에 들어와 시원하다.

장호-용화 구간을 왕복 운행하는 삼척 케이블카
장호-용화 구간을 왕복 운행하는 삼척 케이블카
수로부인 헌화공원 정상에 서면 시야가 탁 트인다
수로부인 헌화공원 정상에 서면 시야가 탁 트인다

다음은 장호항이다. 삼척 케이블카에 오른다. 탁 트인 바다 위를 케이블카가 미끄러지듯 달린다. 장호-용화 구간 874m를 10분 정도 날아간다. 투명 카약으로 맑고 투명한 바다를 누리는 사람들도 내려다보인다. 건너편 용화역에 내려서는 옥빛 용화해수욕장에 매료된다. 용화에서 출발하는 해양 레일바이크에 신이 나기도 잠시, 당일 매진이라는 안내문에 낙담한다. 케이블카도 그렇고 레일바이크도 그렇고 모두 인기가 좋다.

새천년해안도로를 달리면 만나는 풍경
새천년해안도로를 달리면 만나는 풍경

해양레일바이크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려 삼척항으로 바삐 옮긴다. 삼척 해안드라이브의 백미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삼척해수욕장까지 이어지는 4.8km의 새천년해안도로다. 꼬불꼬불 바다에 바짝 붙어 달리니 아름답고 또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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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삼척 글·사진=김선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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