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색적인 곳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들어 봤을법한 ‘삼성궁(三聖宮)’. 궁이라는
이름 때문에 얼핏 관광지의 화려함을 상상하게 되지만 지리산 삼신봉 깊숙히 자리잡은 이곳
은 수련하는 사람들로 엄격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청학동으로 오르는 지리산길목에서 ‘삼성궁’이라는 푯말을 따라 걸어야 하는데, 장승 두
개가 버티고 서있는 평탄하지 않는 길을 오르다보면 협곡과 어우러진 그 길 자체가 수련의
하나라는 느낌까지 든다.
해발 850m에 위치해있는 입구에 도착하면 삼성궁임을 말해주는 표지판과 안내문구를 볼 수
있다. 굳게 닫혀진 문앞의 큰 징을 크게 세 번 치면 고구려시대의 복장과 얼굴을 반쯤 가린
삿갓을 쓴 ‘수행자’가 나타나 정중하게 인사를 한다. 이곳에서는 수련을 막 시작한 사람
을 지사라 하고 수양을 거쳐 수자에서 법사, 선사, 진인의 단계로 부른다. 일반인을 안내하
는 것은 두 번째 단계인 수자의 몫인 경우가 많다.
수자는 삼성궁내에서는 자신과 같은 고구려복장을 입고 우리의 시조인 삼선에게 삼배를 올
릴 수 있는지를 묻는데, 이것을 거부하면 입장할 수 없다. 종종 절하는 것에 민감한 종교인
들이 작은 소동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일행중 한명만 삼배를 올려도 되기 때문에 대개 무난
히 해결되곤 한다.
입구로 들어가 수자가 건네주는 옷을 걸치면 삼성궁내부로 향하는 입구로 안내해주는데, 눈
앞에 펼쳐진 황토빛의 넓은 공간과 편안하면서도 생경한 어떤 느낌에 잠깐 할말을 잊는다.
나무 그림자 맑게 드리운 커다란 호수와 곳곳에 세워진 크고 작은 솟대. 고구려 복식으로
삼삼오오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까지 시대를 거슬러 올라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옆의 수자가 다시 주의사항 몇가지를 말한다. 환웅과 환인 그리고 단군을 모셔놓은 건국전
에서 삼배를 올리고 정숙해야 한다. 삼배를 한 곳을 꼭지점으로 그려지는 삼각형안에서는
사진촬영을 할 수가 없으며 이 삼각형 안에서는 화살표가 그려진 정해진 길을 따라 움직여
야 한다. 이 삼각형 외에서는 자유스럽게 이곳의 정취를 맛볼 수 있다.
담벼락 옆으로 넓고 길다란 길을 따라 삼성궁을 둘러보다보면 조형물 하나하나에 깃든 정성
과 세심함에 감탄하게 된다. 특히 하늘과 땅을 이어준다는 솟대는 틈 없이 쌓여진 정교함도
그렇지만 그 규모에 놀라게 되는데 3,333개의 솟대를 쌓기 위해 현재도 계속 쌓고 있다고.
지금까지 쌓아 올린것만 해도 500개가 넘는다.
한눈에 보이는 곳만 3만평이 넘고 언덕위쪽으로 다져놓은 곳까지 합치면 10만평에 달한다니
지리산 자락 어느 구석에 이리 넓은 장소가 숨어있을 수 있단 말인가. 도대체 이곳이 뭐하
는 곳인지 삼배를 마친 후 2년째 수행중인 수자를 잡고 물었다. 그는 세간에서 떠도는 ‘도
닦는 곳’이나 ‘종교집단’이 아닌 ‘민족성지’라는 말로 대답을 대신한다. 일본의 민족
말살정책아래 우리의 민족종교가 한낮 ‘푸닥거리’로 전락된 것처럼, 우리 고유의 정신세
계가 퇴색되어 가는 것을 아쉬워한 사람들의 ‘민족성지 복원’인 셈이다.
이곳에서는 고조선의 삼일신고에 기록되어 있는 삼법수행을 수련하고 있는데 모든 속된 것
을 끊고 숨을 고르게 하는 것을 말한다. 가끔 소문을 듣고 찾아온 사람중에서는 무예를 가
르쳐주는 곳으로 알고 오는 이들도 있는데 우리의 전통무예의 전수와 검법등을 수련하기 때
문이다. 매체를 통해 단편적으로 소개된 삼성궁의 보도를 보고 많은 이들이 다녀갔지만 수
련은 겉보기만큼 화려하거나 재미있지 않다. 처음엔 수련할 수 있게 해달라고 사정을 하지
만 도중하차한 사람만도 천명이 넘는다고 한다. 매년 동아리나 단체에서 일정기간동안 수련
을 하러 들르는데 그 숫자까지 합치면 삼성궁을 거쳐간 사람만도 수천명에 이른다.
수행자의 검법과 권법등을 구경할 수 있는 날은 일년에 1번. 매년 음력 10월 열리는 개천대
제 때다. 올해로 17회를 맞는 이 행사에는 매년 5천명이 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일반인들이 둘러볼 수 있는 곳 외에 왼쪽 언덕배기에 도인들의 수련장소가 있다는데 대략의
위치도 가르쳐줄 수 없다 한다. 이렇게 다져놓은 수련장 또한 2-3년 안에 일반인에게 공개
할 예정이라고.
관광지 구경왔듯이 쓱 한번 훑어보는 것이 아닌 성지로서의 고즈넉한 편안함을 즐기려면 최
소한 반나절은 잡고 올라가는 것이 좋다.
방문객들을 안내하던 한 수자는 “후다닥 돌아보고 사진 찍고 나가기 바쁜 사람들을 보면
이곳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다”며 “신기한 것을 보는 시선이 아닌 우리의 민족성지
라는 생각으로 아껴주었으면 좋겠다”고 당부한다. 삼성궁 882-8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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