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사랑하는 여행기자가 소개한다.
조금 친환경적으로 서울을 여행하는 법.

마포 석유비축기지가 안전상의 이유로 폐쇄된 이후 문화비축기지로 다시 돌아왔다
마포 석유비축기지가 안전상의 이유로 폐쇄된 이후 문화비축기지로 다시 돌아왔다

●여행이 불편해졌다  


나는 환경보호 운동가도 아니고, 제로 웨이스트 실천가도 아니다. 나는 마트에서 쇼핑을 할 때 비닐봉지에 과일이나 채소를 담는다.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간편식도 종종 구매하며, 물티슈도 서너장씩 시원하게 뽑아 쓴다. 하지만 나는 손바닥만하게 접어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에코백을 가방에 두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쓴다. 깨끗하게 잠시 사용한 비닐봉지는 잘 접어 보관하다 두 세 번씩 다시 사용한다. 올바른 분리수거에 노력하고, 일주일에 하루는 물티슈 사용하지 않는 날로 정해두고 규칙을 지키고 있다. 멀쩡하지만 나에겐 불필요한 물건은 무료 나눔하거나 굿윌스토어에 기부한다.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에서 제로 웨이스트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쓰레기 줄이기’는 실천할 의지만 있다면 완전 가능하다. 겨우 이 정도 노력만 해도 될까, 부끄러운 날들도 많지만 나는 장기적으로 환경보호를 위한 노력을 이어가려면 완급 조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무엇이든 너무 갑작스럽게 변화하려면 금방 지치기 마련이므로. 그리고 개인의 이런 사소한 노력은 다소 미미해보일지언정 어떤 모습으로든 선한 영향력이 될 것이라 믿고 있다. 


환경보호에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되면서 여행기자에게 ‘일상’인 ‘여행’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다. 여행지에서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기 위해 집에서 챙겨가는 짐이 많아졌고, SNS를 위한 레스토랑이나 카페보다 불필요한 서비스와 유통 과정을 줄인 곳을 찾기 위해 종종 고민한다. 이동할 때 웬만한 거리는 걷는다. 나의 발걸음이 세상에 조금이라도 유의미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목적지를 찾는다. 그러다보니 몸은 조금 불편해졌고 때로는 따분해지기도 했지만, 마음은 조금 많이 편안해졌다. 


이번 여행을 서울로 결심한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다. 이왕이면 덜 쓰고, 덜 버리는 여행을 하고 싶었다. 조금 불편했던 서울 여행을, 벅찬 마음으로 전한다. 

따릉이는 무동력 수단으로 따릉이를 타고 이동하면 탄소 배출량은 0이다
따릉이는 무동력 수단으로 따릉이를 타고 이동하면 탄소 배출량은 0이다

 

●따릉이 타고 여행하며 얻은 기록 


나는 이번 서울 여행에 몇 가지 규제를 붙였다. 차량을 이용하는 이동을 최소화 할 것, 환경을 고려한 의미 있는 장소를 방문해 볼 것, 텀블러를 가지고 다닐 것. 까다로운 이동을 자처했으나 도전과 같은 여행을 앞두고 심장이 마구 쿵쾅거렸다. 


집밖을 나서는 순간부터 여행은 이동의 연속이다. 그래서 여행의 본질적인 성질은 이동이다. 온실 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이동이 가능하려면 걷거나, 무동력 수단을 이용해야 한다. 첫 번째 규제를 고려해 이번 여행은 가까운 곳에서 시작했다. 목적지는 문화비축기지. 서대문구 연희동 집에서 자전거 도로 기준 5.2km 거리에 위치해 있어 ‘따릉이’를 이용하기로 했다. 따릉이는 서울시가 2014년 시범 운영을 시작한 이후 서울시 곳곳에서 이용할 수 있는 공용 자전거다. 1시간 이용 기준 1천원, 일주일 무제한 이용료는 3천원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보다도 저렴했고, 5.2km를 이동하는 동안 탄소 배출량 0을 실현했다는 뿌듯한 기록. 그러니 콧잔등에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탱크의 녹슨 철벽과 인부들이 오르락내리락 이용했던 계단이 그대로 남아 있다
탱크의 녹슨 철벽과 인부들이 오르락내리락 이용했던 계단이 그대로 남아 있다

문화비축기지는 폐쇄된 석유 탱크를 열린 문화 공간으로 만든 공원이다. 서울시는 1973년 석유파동 이후 서울시민들이 안정적으로 석유를 사용할 수 있도록 ‘마포 석유비축기지’에 탱크 5개를 만들어 석유를 보관했는데, 서울 월드컵 경기장 바로 길 건너에 위치해있던 이곳은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안전상의 문제로 폐쇄됐다. 탱크는 일반인들의 접근이 통제되고 그대로 방치된 채 10년 이상을 흘려보냈다. 이후 2013년 시민아이디어 공모를 통해 문화비축기지로 변신하게 됐다. 석유를 보관하던 공간이 문화를 담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난 것. 다시 만나 다행이다.

 

지금 문화비축기지에는 6개의 탱크가 있다. 기존의 탱크(T) 1부터 5까지는 각각 문화마당, 파빌리온, 공연장, 탱크원형, 복합문화공간, 이야기관으로 탈바꿈했고, T1과 T2를 해체하며 나온 철판을 가지고 여섯 번째 탱크(T6)를 커뮤니티센터로 만들면서 하나가 더 추가됐다. 탱크 원형의 구조와 녹슨 철판의 사용감을 그대로 유지한 만큼 건축물 자체만으로도 시각적인 매력이 가득한 공원이다. 한 바퀴를 가볍게 걷는 데에는 1시간 정도면 충분하지만 탱크 속 문화 공간을 좀 더 밀착 경험하고 싶다면 한 끼 도시락 정도는 챙겨 와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참고로 문화비축기지는 따릉이를 타고 방문하기 적절한 곳이다. 공원 입구에 따릉이 대여소가 자리해 있고, 인포메이션 센터에는 무료 물품보관함이 설치돼 있으니 가볍게 걸으면 된다.

양화대교와 연결된 선유도공원 입구
양화대교와 연결된 선유도공원 입구

 

●서울, 섬 그리고 공원 


이날 따릉이의 두 번째 목적지는 선유도공원이다. 평소에 날씨가 좋으면 종종 찾는 난지 하늘공원과 망원 한강공원을 지나 양화대교 가운데 선유도공원 입구에 멈췄다. 선유도공원은 자전거 출입이 금지된 공원이다. 근처에 따릉이 대여소는 없지만 공용 자전거 거치대에 잠시 세워두고 들어가면 된다. 

선유도공원도 서울시의 작품이다. 선유도는 1978년부터 2000년까지 서울 서남부 지역에 수돗물을 공급하는 정수장 역할을 했는데 폐쇄된 이후 서울시가 164억원을 들여 공원으로 꾸민 케이스다. 약 11만㎡(3만3,275평) 규모의 공원은 각종 수목과 풀, 꽃 등의 초록 물결로 일렁인다. 공원을 둘러싸고 흐르는 한강을 주제로 한 전시관부터 식물원, 놀이터, 정원 등이 자연스럽고도 반듯하게 조성돼 있다. ‘초록스럽다’는 말이 있다면 선유도공원을 두고 하는 말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형형색색 아기자기하게 꾸민 온실 정원은 사계절 내내 향긋할 것 같아 마음에 들었고, 정수지의 콘크리트 상판 지붕을 들어내고 남은 기둥을 담쟁이 넝쿨이 질서정연하게 감싸고 있다. 무엇보다 나는 수질정화원에 마음을 뺏겼다. 수질정화원은 네모 반듯한 약품침전지를 재활용해 수생식물이 어떻게 물을 정화하는지 관찰할 수 있는 공간이다. 정수장이었던 선유도공원의 본래 옛 역할을 보다 자연친화적인 방법으로 개선한 모습이다. 

꽃으로 잔잔하게 꾸며진 선유도공원
꽃으로 잔잔하게 꾸며진 선유도공원

정말 외딴 섬 같았다. 빌딩숲 세상과 가까우면서도 동떨어진 섬에는 선유도만의 평화로움이 있다. 가지를 길게 늘어뜨린 버드나무 아래 의자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노부부, 초록 잔디 위 돗자리를 깔고 누워 햇빛을 즐기는 연인, 섬 속에서 홀로 피아노를 치던 어느 중년의 남성까지, 선유도공원을 찾은 이들은 이렇게 저마다의 방법으로 섬 속의 평화를 유영하고 있었다. 함께 선유도공원을 걸은 H는 이런 말을 했다. 여행인 듯, 아닌 듯. 여행인 듯했다는 건 아마도 그동안 마주하던 서울과는 색다른 풍경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고, 여행이 아닌 듯했다는 건 아마도 여행이라고 하기엔 선유도공원이 몹시 가까웠기 때문일 것이다. 

소재은행에는 매일 버려진 새로운 소재들이 모인다
소재은행에는 매일 버려진 새로운 소재들이 모인다
커피 자루로 에코백부터 화분, 파우치 등 다양한 모습의 소품을 만들었다
커피 자루로 에코백부터 화분, 파우치 등 다양한 모습의 소품을 만들었다

 

●잘 버린다는 의미 


재활용과 새활용은 다르다. 재활용(recycling)은 다 쓴 물건을 재가공해 다시 쓰는 일을 말한다. 새활용(upcycling)은 다 쓴 물건에 디자인 또는 활용도를 더해 더 나은 것으로 만드는 일을 의미하는 우리말이다. 다시 사용한다는 점에서 맥락은 비슷하지만 새활용이 재활용보다 보다 상위 개념으로 통한다. 재활용을 위해서는 재가공 과정에서 분쇄나 파쇄, 폐기물이 발생하고 물리적으로나 화학적인 변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새활용은 자원의 활용법을 바꾼다는 측면에서 환경을 오염시키는 물질 배출을 최소화하는 방법이다. 

자전거 체인으로 만든 조명.샹들리에 느낌을 살려 멋스럽다
자전거 체인으로 만든 조명.샹들리에 느낌을 살려 멋스럽다

서울새활용플라자는 이처럼 새활용의 가치를 소개하고, 실천하는 곳이다. 서울 성동구에 2017년 9월 개관했다. 새활용에 대한 개념을 소개하고, 새활용을 통해 만들어진 예술품이나 제품을 직접 보고, 만들고,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누군가 버린 쓸모없는 자원이 이곳에서는 쓸모 있는 자원이 된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다. 

공병으로 만든 샹들리에와 박스로 만든 하마 조형물. 생활 쓰레기의 약 40%는 박스라고 한다
공병으로 만든 샹들리에와 박스로 만든 하마 조형물. 생활 쓰레기의 약 40%는 박스라고 한다

서울새활용플라자 지하 1층 소재은행에는 이처럼 새활용을 기다리는 수많은 소재들로 가득하다. 아름다운가게와 연계해 매일 5톤 차량이 15~20회 차례 버려진 소재를 공급하러 온다. 하지만 새활용이 불가능한, 오염된 소재가 70%에 달한다고 한다. 새활용 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잘 버리는 것’도 ‘버리지 않는 것’만큼이나 중요해 보인다. 전문가들이 선별한 각종 소재들은 온·오프라인에서 조회하고 구매할 수 있고, 체험 공간에서 직접 작품을 만들어 볼 수도 있다. 새활용 및 친환경 관련 스튜디오와 작가들이 작업한 제품을 둘러보기만 해도 의미 있을 것이다. ‘버리는’ 행위는 물론 무언가를 구매하는 행위 자체에 대한 시선이 달라질 테니. 누군가에게 보낸다는 마음으로 버린다면 이곳에 모이는 소재는 더욱 풍성해질 수 있다. 

지하 1층부터 5층까지 각 층마다 새활용과 관련된 체험, 공방, 작업실, 식당 등이 마련돼 있다
지하 1층부터 5층까지 각 층마다 새활용과 관련된 체험, 공방, 작업실, 식당 등이 마련돼 있다

텀블러를 챙겨간 것은 한수였다. 서울새활용플라자는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는 세계 최초의 건물이다. 카페와 식당을 운영하고 있지만 일회용품은 사용하지 않는다. 테이크아웃을 원한다면 개인 텀블러를 가져가야 한다. 텀블러를 내밀며 자신 있게 커피를 주문했다. 자부심이 넘쳤다.

 

 

●다시 돌아온 널 위해 


2019년 기준 우리나라에서 하루에 발생한 폐기물은 약 49만톤이다. 이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폐기물 종류는 무엇인지 아는가? 다름 아닌 건설 폐기물이다. 전체의 44.5%를 차지한다. 사업장 배출 시설계 폐기물이 40.7%, 생활계 폐기물은 11.7%다. 기업이 짊어진 사회적 책임이 무거워야할 이유다. 아니, 앞으로 더 무거워질 필요가 있어 보인다. 

1970년대 서울역 앞 쭉 뻗은 고가도로는 서울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통했다고 한다
1970년대 서울역 앞 쭉 뻗은 고가도로는 서울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통했다고 한다

 

부수고, 버리고, 다시 짓는 일에 익숙한 현대사회에서 ‘서울로(Seoullo) 7017’은 그래서 의미 있다. 1970년 서울역 앞에 개통한 고가도로는 서울역에서 퇴계로를 잇는 길로 상경한 이들이 처음으로 마주하는 서울의 얼굴이었다고 한다. 당시 쭉 뻗은 고가도로는 한국 산업 근대화의 상징물이기도 했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며 오래된 고가도로는 교량 안전성에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안전성 평가 D등급을 받으며 이용이 금지됐다. 할 일을 잃은 도로를 어쩌나. 서울시는 조기 철거를 검토하기도 했지만 2014년 보행자 전용 도로로 역할을 다시 부여하기로 결정했다. 국제현상설계 공모를 통해 네덜란드 비니 마스(Winy Maas)가 제출한 설계안을 적용해 2017년 다시 태어났다. 그렇게 1970년 ‘찻길’에서 2017년 ‘사람길’로 돌아온 도로는 ‘서울로 7017’로 불린다. 

서울로 7017는 주로 만리동과 청파동 등 주민들과 서울역 인근 직장인들이 산책하기 위해 찾는다
서울로 7017는 주로 만리동과 청파동 등 주민들과 서울역 인근 직장인들이 산책하기 위해 찾는다

서울로 7017 산책은 1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만리동 방향 정원교실에서 시작하거나 명동 방향 서울로 안내소에서 시작하는 게 좋다. 그래야 놓치는 부분 없이 고가도로를 쭉 걸을 수 있다. 처음 마주한 서울로 7017은 길게 뻗은 야외 식물원 같았다. 한발 한발 내디딜 때마다 곱게 자라고 있는 각종 꽃과 나무, 풀을 만났다. 회색 바탕에 초록색을 덕지덕지 크게 바르고 울긋불긋, 알록달록한 여러 색으로 점을 찍은 듯한 그림이었다. 게다가 친절하게도 나는 쥐똥나무요, 나는 초롱꽃이요, 라고 이름표를 달고 있다. 수종 50과 287종이 ‘가나다’ 순으로 배치되어 있다는데 우연이라고 하기엔 잘 만든 꽃다발처럼 조화롭다. 

 

지난 4월30일 기준 서울로 7017에는 총 3,173만6,000명이 다녀간 것으로 기록됐다. 인근 직장인들과 상인들 그리고 청파동, 중림동, 후암동 등 주민들의 발걸음이 가장 많을 것이고, 코로나19가 나타나기 전에는 서울시를 대표하는 도시재생 공간으로서 외국인 관광객들의 관심도 많이 받았다. 오가는 사람이 늘어나면 어디든 활기가 더해진다. 굳이 부수고 새로 짓지 않더라도 이로 인해 발생하게 될 경제적, 사회적 그리고 환경적 가치는 숫자 그 이상의 가치를 보여준다. 우리가 다시 태어난 공간을 이왕이면 종종, 자주 가까이 해야할 이유다.

 

*기자가 체험한 우수여행상품
어뮤즈트래블 [‘따릉이를 타고 달리는 2박3일 리사이클&도시재생 테마여행’]

 

서울 글·사진=손고은 기자 koeun@trave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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