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의 실패 끝에 다시 국토 최남단 도전에 나섰다. 
우리나라 맨 끝에 닿고 싶은 욕구는 그렇게 강하다. 
겨울과 봄의 경계에서 따스했던 어느 날, 
마라도를 한 바퀴 산책했다.  

왼편 마라도 성당과 그 뒤쪽의 등대가 관광객을 맞이한다
왼편 마라도 성당과 그 뒤쪽의 등대가 관광객을 맞이한다

●국토 최남단에 닿고 싶은 욕구


제주 서귀포시 운진항(모슬포 남항), 마라도로 향하는 정기 여객선이 출발하는 항구다. 인근 송악산항(산이수동 방파제)에도 마라도행 여객선이 있지만, 날씨 탓에 발길을 돌렸던 지난 첫 도전의 아쉬움이 생생히 떠올라 다시 이곳에서 도전을 잇는다. 그렇다. 국토 최남단에 서기 위해서는 기상 행운도 따라야 한다. 마라도는 제주 본섬에서 겨우 11km 떨어져 있지만 바람과 파도가 거세면 닿을 수 없는 먼 섬이다. 

마라도의 해안 절벽
마라도의 해안 절벽

다행히 재도전에는 날씨 운이 따랐다. 이렇게 쾌청하고 잔잔한 날이면 운진항에서 마라도까지 25분이면 족하다. 25분은 금세 흐른다. 여객선 뒤로 멀어져 가는 산방산과 한라산, 형제섬 풍경에 빠져 있다 보니 어느새 배 왼편 수면 위로 작은 섬이 떠올랐다. 가파도다. 제주 본섬과 마라도 사이에 있는 섬으로, 마라도 면적(0.3㎢)의 3배(0.9㎢)에 달하지만, 그래봤자 작은 섬이고 섬 최고 높이(20.5m)는 오히려 마라도(39m)보다 낮아서 바다에 바짝 엎드린 모습이다. 가파도도 잠깐, 그 너머로 또 다른 섬이 희미하게 나타나더니 점점 뚜렷해지고 커진다. 우리나라 최남단 섬 마라도다. 

여객선에 있는 빠삐용 조형물
여객선에 있는 빠삐용 조형물

마라도는 동서 500m 남북 1.3km로 세로로 길쭉한 모양이다. 누구는 고구마 모양이라 하고 또 누구는 망고 모양이라고도 하는데, 무엇이 됐든 둘레 길이는 고작 4.2km다. 마라도 탐험에 나선다. 마을 길을 따라 시계 방향으로 돌든 그 반대로 돌든 마라도를 한 바퀴 산책하는 데 1시간에서 1시간 30분이면 충분하다. 그래서 여객선 왕복 승선표의 간격은 대개 2시간 30분이다. 오고 가는 데 1시간을 쓰고 나머지 1시간 30분 동안 마라도를 여행하는 게 일반적인 패턴이다. 

살레덕 선착장으로 다가오는 여객선
살레덕 선착장으로 다가오는 여객선

 

●톳짜장면 먹고 마라도 탐험


작은 섬이라지만 나름 볼 것도, 할 일도 많으니 발걸음을 재촉한다. 살레덕 선착장에서 내린 뒤 시계 반대 방향으로 방향을 잡으니 가장 먼저 주르륵 늘어선 짜장면집들이 반긴다. ‘짜장면 시키신 분~~’이라고 외치는 TV 광고가 인기를 끌고 예능 프로그램에서 마라도를 찾은 연예인들이 짜장면을 먹은 뒤로 마라도와 짜장면은 불가분의 존재가 됐다. 마라도의 톳과 각종 해산물을 얹어 만든 톳 짜장면과 해물 짬뽕을 먹고 나니 뭔가 밀린 숙제라도 한 듯 신이 나고 후련하다.

톳 짜장면과 해물 짬뽕
톳 짜장면과 해물 짬뽕

이젠 길을 따라 걷기만 하면 마라도의 명물들을 차례로 만날 수 있다. ‘해녀의 집’이며 ‘토박이 집’이며 TV 프로그램 ‘백년손님’에 나온 집이며 여러 가게와 식당들이 얼굴을 내민다. 저 앞 너른 잔디밭에는 가파초등학교 마라분교가 소박하게 앉아 있다. 옛날에는 마라도가 가파도 소속이었다니 가파도와 마라도는 형제 사이나 다름없다. 이 작은 섬에 불교?천주교?기독교 3대 종교가 모여 있다더니 정말로 ‘기원정사’라는 절도 얼굴을 내민다. ‘마라도 성당’과 ‘마라도 교회’도 있으니 남은 길이 설렌다. 국토 최남단 지점도 아직 나타나지 않았으니 더욱 설렐 수밖에 없다. 

마라도 동네 길과 풍경
마라도 동네 길과 풍경

마라도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국토 최남단 지점은 소박하다. 한자로 ‘대한민국 최남단’이라고 새겨진 비석이 없었더라면 그저 평범한 해변에 불과했을 이곳에서 여행자들은 줄을 서서 기념촬영을 하며 우리나라 남쪽 맨 끄트머리에 선 순간을 축하한다. 우리나라 가장 남쪽 땅이라는 상징성은 그렇게 묵직하다. 최남단비 뒤 쉼터에서 물끄러미 남쪽 바다를 응시하는 중년 부부 앞으로 젊은 커플이 일 년 뒤에야 배달한다는 ‘느린 우체통’에 엽서를 넣는다. 일 년 뒤 그들은 과연 어디를 여행하고 있을까.

국토 최남단비
국토 최남단비
국토 최남단 지점의 포토존
국토 최남단 지점의 포토존

●소박하지만 묵직한 ‘그 자리’


최남단 지점까지 왔다면 섬의 절반을 구경한 셈이다. 나머지 절반은 다소 높다. 완만한 오르막길을 올라야 하는데 저 앞에서 달팽이를 닮은 앙증맞은 건물이 호기심을 자극해 힘들지 않다. 마라도 성당이다. 마라도에서 잘 잡히는 전복, 소라, 문어를 형상화한 디자인이라는데, 아무리 봐도 달팽이를 쏙 닮았다.

마라도 등대
마라도 등대

성당 뒤 언덕에는 하얀 등대가 서 있다. 그곳이 바로 마라도에서 가장 높은 지점(39m)이다. 마라도 등대는 일제 강점기인 1915년 처음 불을 밝혔다는데, 지금은 여행객들의 포토존 역할도 톡톡히 한다. 등대 앞 해안 절벽은 ‘빠삐용 절벽’으로 불린다. 마라도의 가장 높은 곳이니 절벽 역시 가장 깊을 터, 새까만 현무암 절벽이 아찔하게 내리꽂힌 모습이 영화 ‘빠삐용’의 절벽 같다 해서 그렇단다. 아, 그래서 여객선에 빠삐용 조형물이 있었구나…. 뒤늦게 알아챈다. 빠삐용 절벽 위에 서니, 마라도와 바다, 저 멀리 제주 본섬이 한눈에 들어오며 멋진 풍경을 선사한다. 빠삐용도 절대 탈출하고 싶지 않았을 것 같은 매혹적인 풍경이다.


여객선이 다시 선착장으로 다가온다. 국토 최남단 여행을 마친 이와 이제 여행을 시작하는 이의 발걸음이 교차한다. 떠나고 찾아오는 여행객을 마라도는 그저 묵묵히 또 묵직하게 바라볼 뿐이다.

빠삐용 절벽에서 바라보면 산방산을 비롯해 제주 본섬의 풍경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빠삐용 절벽에서 바라보면 산방산을 비롯해 제주 본섬의 풍경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느린 우체통
느린 우체통


마라도 글·사진=김선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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