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 산맥의 멘리헨(Mannlichen) 봉우리, 해발고도 2,230m.
유럽의 지붕이라 불리우는 융프라우요흐(Jungfraujoch 해발 3454m)를 오르는 길목에 우뚝 솟아있다. 전문등산가가 아니면 오를 수 없을 정도로 험준한 봉우리이지만 상관없다. 케이블카가 있으니.

눈이 있어 더욱 아름다운 알프스
구름을 헤치고 올라가는 케이블카 밑으로 아찔한 풍경이 전개된다. 숨이 헉 막힌다.
케이블카에서 내리자마자 어느 정도의 높이인지 확인해볼 요량으로 밑을 내려다보지만 사방에 반사되는 강렬한 은빛 광선에 눈을 뜰 수조차 없다.
잠시동안 눈을 질끈 감은 채 놀란 시신경을 달랜다. 살며시 눈떠 조심스레 내려다본 광경에 이젠 숨통이 확 트인다. 시원하다. 조금 전 케이블카에 오를 때만 하더라도 하늘은 잔뜩 찌푸려 있었는데 이곳에서 바라보는 하늘은 청명 그 자체다. 한없이 맑고 밝다. 이제껏 본 적 없지만 말로만 듣던 ‘구름 한점 없는 맑은 하늘’이다.
하긴 구름이 있을리 없다. 모두 발밑에 깔려 있으니.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구름이 한없이 여유롭고 평화롭다. 항상 올려다 보아야했던 녀석들이지만 이젠 발밑 한참 아래에 있다. 알프스의 영봉들 사이를 푸근하게 메운 저아래 구름들이 마치 호수위에 피어오른 새벽 물안개처럼 아늑하기만 하다.
스위스를 여행한 사람치고 융프라우요흐에 올라보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로 융프라우요흐는 스위스 관광의 빼놓을 수 없는 명소다. 등산열차와 융프라우 철도를 이용하면 손쉽게 융프라우 정상에 오를 수 있지만 열차에만 의존해 융프라우요흐 전망대에 오른다는 것은 사실 너무 단조롭다.
뭔가 평생 간직하고픈 독특한 경험이 필요하다면 중간역인 벵겐(Wengen 1,274m)이나 그린델발트(Grindelwald 1,034m)역에서 용기있게 내리면 된다. 이곳에서 케이블카를 타면 10여분 뒤엔 멘리헨 봉우리까지 오를 수 있다. 그러면 평생 잊지 못할 즐거움과 감동의 파노라마가 펼쳐지게 된다.
새하얀 눈 그리고 짙푸른 하늘과 함께하는 알프스 산맥 하이킹을 떠나보자. 멘리헨에서 등고선을 따라서 클라이네 샤이덱(Kleine Scheidegg 2,061m)까지 기차레일이 아닌 두발로 걸어가는 것이다. 융프라우요흐에 오르려면 클라이네 샤이덱에서 융프라우철도(JB)에 올라 타면 된다.
일반적으로 알프스 하이킹은 6월에서 10월까지가 절정이다. 이 시즌의 하이킹은 알프스하면 곧바로 떠오르는 푸른 초원과 갖가지 꽃들과 함께 하는 하이킹이다. 반면에 그 외의 계절엔 푸른 초원 대신 은빛 백설이 하이커들을 반긴다. 온통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알프스의 봉우리들과 백설에 반사된 눈부신 광선들로 가득하다. 선글래스를 착용하지 않으면 눈을 뜰 수조차 없을 정도로 눈부시다.
한반도에 봄꽃이 흐드러지게 만개하는 계절에도 이곳 알프스산맥엔 유럽에서 가장 긴 알레취 빙하와 두껍게 눈 쌓인 영봉들로 온 천지가 새하얗다. ‘뽀드득 뽀드득’ 눈 밟는 소리도 아주 맛난다.
저 아래 낮게 깔린 구름들과 짙푸른 바다를 닮은 하늘 그리고 은빛 백설. 풍경화를 그릴라치면 물감은 파랑과 흰색 두가지로 족하다. 파랑색으로 티끌 하나 없이 짙푸른 하늘을 그리고 나머지는 흰색으로 칠하면 그만이다.
하이킹으로 클라이네 샤이덱까지는 약 1시간20분 가량의 시간이 소요되는데 그야말로 자연과 하나가 되는 시간이다. 한걸음 한걸음 안내표지판을 따라 걸어가다 보면 알프스의 봄을 기다리며 꿋꿋하게 서 있는 침엽수림이며 크고 작은 야생동물들과 조우하게 된다. 주변의 절경도 시시각각 그 모습과 감흥을 바꾼다. 내딛는 걸음마다 탄성과 감동이 함께 실린다. 저 멀리 보이는 바다같이 넓고 한없이 고요한 알프스의 풍경은 한 폭의 그림이다. 그림 이상이다. 제아무리 유능한 화가라도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화는 그리지 못할 것이다.
꼬불꼬불 오르락내리락 이어진 하이킹 코스를 걷다 보면 어느새 등골엔 송글송글 땀이 맺히고 목도 타오른다. 영하의 날씨지만 강렬하게 내리쬐는 알프스의 뜨거운 햇빛과 거침없이 내딛어지는 가벼운 발걸음에 어김없이 찾아오는 신체적 반응이다. 하지만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 밟기조차 미안할 정도로 맑고 눈부신 눈 조심스레 한움큼 떠 입안에 넣으면 그 맛이 꿀맛처럼 달고 시원타. 영롱한 빛 발하며 반짝이는 조그마한 고드름 또옥 따 입안에 넣으면 온몸이 상쾌함으로 떨린다. 이보다 더 깨끗하고 순수한 대자연의 선물이 어디 있으랴.
백설위를 걷다 보면 구름속으로 절경속으로 멋드러지게 활강하는 스키어들의 모습에 부러움과 시샘이 동시에 교차하기도 한다. 손에 들고 있던 비닐백을 썰매삼아 있는 대로 탄성을 지르며 그들의 뒤를 좇아보지만 어림없는 호기일 뿐이다. 하지만 스키 못지 않은 스릴과 재미에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개구쟁이가 되고 만다.
목적지인 클라이네 샤이덱 부근도 스키어들로 활기가 가득하다. 막바지에 접어든 하이킹의 이쯤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재미 한가지가 있다면 바로 스키 리프트를 타고 클라이네 샤이덱역에 오르는 것. 3프랑 정도의 추가요금으로 하이킹의 대미를 낭만으로 꾸밀 수 있다.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알프스의 상징적인 봉우리 아이거, 묀히 그리고 최종 목적지인 융프라우를 외경으로 맞이하면서 말이다. 취재협조 스위스항공(Tel.02-757-8242) 동신항운(Tel. 02-756-7560)

경이로움 그 자체 융프라우철도
융프라우철도는 클라이네 샤이덱(2,061m)역과 유럽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철도역인 융프라우요흐(3,454m)까지 운행하는 산악철도이다. 총 12km에 불과한 노선이지만 한번이라도 이 철도를 이용해 융프라우에 올라본 사람이라면 경이로움과 경탄을 금하지 못한다.
험준한 산악지역의 암반을 뚫고 유럽정상에까지 철로를 개설한 저력도 놀랍지만 104년전인 1896년에 첫 삽질을 시작해 16년만인 1912년에 완공했다는 사실에 이르러서는 경이롭기까지 하다.
처음 2km 정도의 산악구간을 지나면 아이거 봉우리와 묀히 봉우리의 암반을 뚫고 지나가는 터널구간으로 운행된다. 이미 100여년 전에 변화무쌍한 산악지역의 혹독한 기후와 기압조건, 장비조달의 어려움 등을 이겨내고 거대한 암반을 뚫어 철로를 개설했다는 걸 상기하면 이건 단순한 철로가 아닌 신비로움 그 자체가 된다. 게다가 터널 속에는 두 개의 전망대를 만들어 놓아 암반 속에서 알프스 산맥의 숨막히는 비경을 조망할 수도 있어 신비로움은 배가 된다. 험준한 산악지역의 가파른 철로를 오르기 위해서 고안한 ‘토블러’라는 톱니레일도 흥미로운 볼거리다.
경이로운 융프라우철도가 안내해준 유럽의 정상 융프라우는 길게 펼쳐진 빙하와 얼음 동굴의 세계다. 또 1996년에 완공된 스핑크스 전망대를 비롯해 레스토랑, 유럽 최고도에 위치한 우체국, 영화관 등의 구조물이 있어 서너시간 즐기기에도 부족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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