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의 전설이 담긴 고장 ‘남원’
전라북도 남원은 우리민족의 사랑에 대한 정서를 집약적으로 간직한 문화의 고장이다. 성춘
향과 이몽룡의 아름다운 사랑, 흥부와 놀부의 형제애, 변강쇠와 옹녀의 뜨거운 사랑까지 이
작은 도시 남원은 판소리 6마당 중 3마당의 무대가 되었을 뿐 아니라 최초의 한문소설인
‘만복사 저포기’와 최명희 선생의 대하소설 ‘혼불‘의 배경 이기도 하다.

‘어화둥둥 내사랑 춘향아!’
사랑의 전설과 전통의 고을 남원. 이제 이 도시의 주인은 이몽룡과 춘향같은, 그 옛날 문학
속의 연인들이 아니다. 이제 막 고통스런 사랑을 시작한 여드름 투성이 그들과 황금의 시기
를 맞은 신혼부부들, 그리고 권태기를 지나 이제는 한 몸인 듯 어울리시는 노년의 그들까지,
남원이라는 작은 무대의 주인공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랑하는,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다.
춘향이와 이몽룡이 처음 만났다는 광한루(廣寒樓)에 올라 수줍은 고백을 해 보자. 세월이야
몇 백년, 몇 천년이 지나도 이 고백의 순간만은 변함 없이 어렵고 떨리는 법. 18세 이몽룡의
당돌한 용기를 교훈 삼아 보자.
하지만 광한루라는 공간이 너무 노골적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겠다. 그러면 이 곳을 천상의
세계, 달나라라고 여겨보자. ‘21세기 사이버 세상의 사랑 고백은 달나라에서!’
실제로 ‘광한(廣寒)’이라는 말의 본래 뜻은 달나라 궁전인 월궁(月宮)이고 광한루 앞의
연못은 은하수, 이 연못 위의 돌다리는 오작교이다. 광한루원의 정문인 청허부(淸虛府)는 월
궁의 출입문이며 완월정(玩月亭)은 지상의 사람들이 천상의 세계를 꿈꾸며 달나라를 즐기기
위해 지은 것으로 달이 뜨는 동쪽을 향해있다. 이처럼 광한루원 자체가 천체우주를 상징하
며 옥황상제가 살고있는 천상세계, 옥경(玉京)을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적인 배경은 이렇다. 보물 제281호인 광한루의 원래 명칭은 광통루(廣通樓). 1419년 황
희(黃喜)정승이 남원에 유배되어 그의 선조가 쓰던 서실을 헐고 누각을 지었다. 이후 1444년
에 전라도 관찰사 정인지(鄭麟趾)가 이곳에 올라와 보더니 ‘이곳이 달나라의 월궁(月宮)인
광한청허지부(廣寒淸虛府)가 아닌가’라고 감탄한 것이 유래가 되어 현재의 광한루로 명칭
이 바뀌었고 이후 확장을 거듭하여 지금의 전통 정원을 이루었다.

춘향사당에 깃든 민족정신
특히 이 곳 광한루의 동쪽에 위치한 춘향사당은 올해로 70주년 ‘고희(古稀)’를 맞는 남원
춘향제의 탄생지다. 1931년에 이 사당을 건립하고 처음에 권번에서 제사를 모시게 했던 것
은 극심했던 일제의 민족문화말살정책을 피하기 위한 것. 기생들을 얕잡아보던 순사들의 느
슨해진 감시를 피해 관아의 부패에 죽기로 항거했던 춘향의 고매한 정신을 민족 정신으로
승화시킨 선조들의 깊은 뜻을 헤아릴 수 있다.
춘향제하면 아리따운 춘향아가씨의 선발대회를 먼저 떠올리지만, 그 보다는 여러 전통예술
경연대회를 통해 재능 있는 국악인을 발굴, 육성하는 쪽이 더 비중이 크다. 전국의 400여개
가 넘는 향토축제 가운데 10대문화관광축제로 선정될 수 있던 저력은 70년 역사를 통해 전
통문화의 계승에 기여한 공로뿐 아니라 세계에서 유일한 사랑테마축제로의 성장가능성이 충
분하기 때문. 매년 5월5일을 즈음하여 개최되며 올해는 5월 4일 전야제를 시작으로 9일까지
진행된다.

‘춘향뎐’의 배경, 춘향촌 세트장
남원을 새삼스레 춘향의 고장으로 부각시킨 것은 올해 초 개봉되었던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춘향뎐’이다. 관광단지인 춘향촌으로 들어가 오른쪽 비탈길을 올라가다 보면 발아래 흩
어져 있는 기묘한 색깔의 돌들이 눈에 들어온다. 인공적인 보라색, 청남색 돌덩이에 고개를
갸우뚱하다보면 눈앞에는 다시 기괴하게 높고 둥근 돌담과 그 안으로 비치는 낯선 건물이
있다. 우리나라의 전통가옥에 저렇게 키를 훌쩍 넘는 담도 있었나 하고 생각하며 가까이 다
가가 만져보니 이상하다. 살짝 두드려 보니 ‘통통’하고 빈소리가 튕겨져 나온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춘향뎐’에서 춘향이 변사또의 수청을 거부해 갇혀던 옥사정이라는데 화학소
재로 담을 찍어냈다.
영화는 남원관광단지 춘향촌안의 6천평 부지에 옥사정, 월매집, 집성촌, 춘향과 이몽룡이 백
년가약을 맺은 부용당 등의 세트장을 짓고 촬영되었다. 영화속에서는 사람냄새도 묻어있고
널찍해 보이던 것이 실제로는 작고 소박하다. 춘향이가 떠나는 이몽룡에 울며불며 매달리는
그 고개가 여기구나 하며 머릿속에 필름을 돌리고 눈으로는 ‘찰칵찰칵’ 사진을 찍는다.
영화 춘향뎐은 몇 주전에 한국영화사상 최초로 53회 깐느 영화제의 경쟁부문에 진출했다는
희소식을 가져왔다. 백상예술상과 대종상에서도 이미 그 진가를 인정받았지만 한국의 전통
적인 아름다움을 전세계에 선보인다는 자부심은 남원 시민만의 자랑이 아니다.지금은 몇 개
의 초가집이 전부지만 2003년까지 복원되어 ‘춘향테마파크’로 조성될 계획이다. 남원 동
헌이 고스란히 복원되고 춘향영화촌, 춘향생활촌, 민속장터, 연인의 거리, 장승장터가 들어서
는 등 조선중기 서민생활을 생생하게 재현하게 된다.

무지개 분수다리 승월교
맹숭맹숭 환한 대낮의 사랑고백에 자신이 없다면 어둑어둑해지기를 기다려 남원 시내를 흐
르는 요천수변을 걷자. 지리산 계곡의 천갈래 만갈래 물이 모여 흐른다는 요천수의 유원지
에는 낮에는 오리보트들이 뒤뚱뒤뚱 부산하지만 밤이 되면 승월교가 발산하는 은은한 불빛
에 저절로 낭만적인 분위기가 연출된다.
전통의 고을 남원에 이 초현대식 다리는 좀 생뚱한 느낌이 없지 않지만 그 자체로 뛰어난
관광명소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승월교의 특이한 점은 다리 양쪽 난간을 따라 물분수가 뿜어져 나온다는 것.
시시각각 색이 변하는 광섬유와 어우러진 분수터널을 통과하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다. 이곳
에서 민족의 영산 지리산 계곡물인 요천수에서 정기를 이어받아 씩씩한 고백을 이룰 수 있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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