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8년 「觀光」이란 용어 조차 생소했을때 李承萬대통령은 당시 吳在璟공보실장을 불러 「觀光立國」을 말하고 觀光廳 설립작업을 지시했다.
 이때 외무부도 독자적인 관광행정기구로 관광청 설립이 거론되고 있었다.
 미국에 오래 있었던 李대통령은 외화벌이에 당장 손댈 수 있는 분야는 관광산업 뿐 이라고 생각해 냈다.
 대통령의 갑작스런 지시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吳在璟실장은 집권자의 강력한 정책의지로 받아들여, 휼륭한 관광청을 만들어 보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러나 吳실장은 정국이 혼탁해 지면서 경향신문을 폐간시키라는 자유당정권의 압력을 받아 들이지 않아,공보실장직을 물러나 관광청 설립작업을 중단해야만 했다.
 그뒤 1960년 4월, 李대통령은 재단법인 대한여행사 이사장으로 있던 吳在璟씨를 구 황실사무총국장으로 겸직 발령, 임명장을 주는 자리에서 독립된 관광행정기구가 필요하니 관광청설립을 다시 추진하라고 지시.
 吳在璟씨는 그날부터 밤샘하면서 세계 각국의 관광관련자료를 수집, 조사하여 관광청 설립안을 작성했다.
 이 안은 영문으로도 번역돼, 일차로 프란체스카여사의 견해도 참고해 보완된 후 대통령께 정식 보고하는 과정에서 불행히도 이문서는 사문화돼 버렸다.
 4.19 학생혁명으로 李대통령이 하야했기 때문이다.
 관광쪽에서 보면 안타까운 한 순간이었다.
 그때 관광청이 설립되고 뒤이은 정부가 관광정책을 38년전인 바로 그때부터 정립시켜 나갔더라면 우리의 5천년 역사는 그 자체가 모두 관광상품화 되어 지금쯤은 세계 10대관광국은 물론이고 관광선진국으로의 자리를 탄탄히 하고 있을 것이다.
 또한 국제관광의 활성화가 앞당겨져 한국을 세계화 하는데도 지름길이 됐을 것이고 무공해 달러도 많이 벌어 오늘과같은 치욕적인 IMF속국이 되지도 않았다.
 때늦은 감이 있지만 정권교체를 해낸 金大中정부답게 관광이 속해있는 문화체육부의 「체육」을 떼어내고 「관광」을 달아 문화관광부로 명칭을 붙혀 정책면에서 관광의 위상을크게 높혔다.
 「문화」에 「관광」을 접목시켜 만들어 낸 부처지만 관광행정을 건국이래 하나의 독립부처로 처음 탄생시켰다는 데는 21세기의 관광산업을 신 정부는 바로 꿰뚫어 본 것이다.
 정부조직을 축소, 개편하면서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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