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정의 시작은 이스탄불이 아니었다. 이스탄불에서 국내선으로 1시간30분 거리의 남부도시
아다나(Adana)로부터 ‘신(神)을 위한 대지’ 터키를 찾아나섰다. 신을 위한 대지. 지금은
모스크가 전 국토를 뒤덮고 있지만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태어난 곳. 이곳, 터키에 섰다.

성스러움으로 가득한 대지
터키 관광청 직원을 태운 15인승 승합차의 앞유리에는 ‘HATAY’라고 써있었다. 안타캬
의 다른 이름이 하타이라는 것은 아다나로부터 동남쪽으로 2시간30분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달린 이후에야 알게됐다. 시리아와의 국경에 위치했으면서 다른 터키 도시들과는 달리 지중
해를 서쪽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곳. 하타이는 아직 한국 관광객들에게는 생소한 지역이다.
하타이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하타이 박물관에는 구석기시대부터 이슬람 시대까지 이 지역
과 인근지역에서 발굴된 유물들로 가득했다. 특히 세계적인 고고학자들로 구성된 시카고 오
리엔탈 인스티튜트, 레오나르도 월리 경이 이끄는 대영박물관, 오늘날 하타이 박물관에 안장
된 대부분의 유물을 발굴한 미국 프린스턴 대학팀 등 쟁쟁한 고고학 연구소들이 이 박물관
건립에 참여했다. 후줄근하게만 보였던 박물관 입구가 50여년의 역사(1948년 개관)가 쌓인
고풍스러움으로 변하기도 잠깐이다.
내부는 온갖 모자이크의 집합이다. 한쪽 벽면을 장식한 최고 2300여년 전의 기하학 문양 모
자이크도 곱지만 5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구원의 형상화’라는 작품에서는 오른쪽 어깨를
완전히 드러낸 풍만한 여성이 아름답다. 이 모자이크는 당시 욕실의 바닥 부분으로 사용된
것으로 드러났다.
하타이·박물관 동굴속 성베드로 교회
하타이 박물관은 1974년 히타이트와 앗시리아 시대의 석조 유물들을 포함하면서 5개 전시관
에서 8개로 확장된다. 제6 전시관에는 안티옥(안타캬의 옛 지명)에서 출토된 머리 잘린 비너
스상과 ‘티케’라는 안티옥의 여신상을 만날 수 있다.
사실 안타캬는 기원전 2세기 무렵 로마, 알렉산드리아와 함께 로마제국의 3대도시로 당시
‘동방의 여왕’이라고 불렸던 무역과 문화의 중심지이다. 예수그리스도와 유일신 하느님을
믿는 종교인들을 ‘크리스찬(기독교인)’이라고 처음으로 불렀던 곳도 이곳 안타캬라고 한
다. 그래선지 초기 기독교인들이 로마제국의 박해를 피해 동쪽으로 피신하다 이 곳까지 들
어와 지은 동굴속 교회가 아직까지 생생하게 남아있다. 안티옥의 성 베드로 교회(St. Pete
r’s Church)가 대표적인 곳이다.
십자군의 산이라 불리는 스터린 산의 서쪽면에 위치한 성 베드로 교회에는 매년 수많은 관
광객이 몰려든다. 대부분 기독교인들인 그들은 이곳에서 초기 기독교인들의 처절한 고난의
역사를 볼 수 있다. 예배를 드리다가 언제라도 도망칠 수 있도록 뚫어놓은 동굴속의 비상탈
출구로 랜턴을 비추자 지금도 긴박하게 돌아가는 당시의 상황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좁은
곳은 직경 50Cm 정도나 될까? 살갗이 찢기고 피가 배어나와도 붙잡히면 죽는다는 생각에,
아니 그간의 신앙과 포교가 모두 헛고생으로 끝난다는 생각에 그들은 피흘리며 이 동굴을
수직으로 오르내렸을 것이다. 성 베드로 교회가 위치한 스터린산이 십자군의 산이라 불리는
것은 1098년 중세 십자군 원정 때 이 교회가 처음 발견됐기 때문이다.
영화 벤허 촬영무대 ‘옛 왕족무덤’
안타캬 시내에서 차로 30여분 달리면 지중해 바다를 끼고 앉은 사만닥이라는 항만도시를 만
난다. 동로마제국시절 가장 중요한 도시인 이 곳에서 사만닥은 실크로드의 육로의 끝 역할
도 훌륭히 해냈다. 그리스나 다른 유럽 국가로의 문물 전파가 이 곳 사만닥으로부터 해로로
바뀐 것이다.
이 지역의 중요한 유물은 길이 1,300m, 최고높이 700m의 티투스터널이다. 정확히는 사만닥
으로부터도 6km 떨어진 체블리키의 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당시 해수면 상승으로 어렵
사리 지어놓은 항구도시가 자꾸 바닷속으로 가라앉자 홍수방지와 관개수로의 두 가지 목적
으로 산 중심을 똑바로 파고 들어가 반대편까지 뚫어놓았다. 이 산 위에는 또 영화 ‘벤
허’에서 나병환자들의 집단 거주지로 사용됐던 곳이 있어 눈길을 끈다. 사실 영화속에서
문둥이들이 검은 옷을 뒤짚어 쓰고 누워있었던 곳 하나하나는 옛 왕족들의 무덤자리. 원 자
리야 어떠했건 수천년전의 배경 고증과 영화에서 꼭 필요했던 음산함을 화면으로 옮기기에
이곳보다 더 적당한 곳이 있었을까. 끝까지 남아 무덤자리 하나하나 사진을 찍다가 등줄기
로 훅 오르는 섬짓함에 그만 카메라를 놓치고 말았다.
하타이, 안타캬, 안티옥. 다른 이름, 같은 지역. 지중해 연안답지 않은 소박한 바닷가 풍경과
뒤로 숨겨진 수천년 동안의 역사. 하타이 박물관에 소장된 완전치 못한 모자이크 만큼이나
그 역사의 조각을 짜맞추는 일은 고된 작업임에 틀림없다. 문제는 그 역사 발굴의 현장에는
항상 터키인들이 아니라 미국, 영국, 독일, 오스트리아 등등 강대국들의 연구팀들이 분주하
다는데 있다. 혹자는 전 유럽이, 아니 전 서방이 유럽의 조상, 서방의 조상을 찾기 위해 공
조하는 모습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아무렴 그들이 출토된 유물을 몰래 숨겨 본국으로 가져
가기야 하겠냐마는 CNN 터키 특파원과 발굴 현장에서 인터뷰를 나누는 미국인 교수를 지
켜보는 것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광경이다. 경제력, 기술력 부족으로 문화까지 남에게 맡
겨서야.

불볕더위 속 카파도키아를 가다
마침 7월의 터키는 아스팔트가 녹아 내리는 이상고온 현상에 전 국토가 불타올랐다. 40도를
웃도는 고온은 특히 남부지방과 중원지역이 심해서 별도의 에어컨 시설까지 갖춘 벤츠 승합
차도 못 견딜 건 별반 다를 바 없었다. 하타이에서 아다나를 거쳐 카파도키아로 거슬러 올
라가는 8시간은 그래서 별 유쾌한 투어는 아니다. ‘7, 8월의 터키를 피하라’는 일반 관광
안내책자의 ‘경고’가 뼈저릴 정도로. 카파도키아 북쪽 아바노스의 한 호텔에서의 하룻밤
이 지나고 자연의 신비함과 그것을 이용하는 인간의 적응력을 직접 확인하고자 다시 정신을
추스렸다. 이 드넓은 카파도키아에 자연은 도대체 무엇을 숨겨놓았는가?

드러내려는 자연 숨으려는 인간
단순하게 말해서 카파도키아 지역의 독특한 지형은 용암과 먼지와 진흙이 빚어낸 것이다.
아참 여기에 비와 바람도 빼놓아선 안되지. 미술에만 초현실주의가 있는 줄 알았더니 자연
에도 쉬르리얼리즘이 존재하고 있다는 걸 카파도키아를 와본 사람들이라면 공감할터.
좀더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아래위로 들쑥날쑥한 지형이 안팎으로도 들쑥날쑥하다. 누군가
동그랗고 네모난 구멍들을 자연이 그러했던 것처럼 전혀 규칙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뚫어놨
다. 땅굴에만 익숙한 우리에게 이것은 무엇으로 비치는가. 큰 짐승들이 해 놓은 짓이라면 그
규모가 너무 엄청나다. ‘누군가 저기서 지내려고 했었군’
카파도키아의 작품을 단순히 자연의 몫으로 돌리기엔 사람의 몫이 아쉽다. 아니, 절대 이건
자연만의 작품이 아니다. 드러내 놓으려는 자연과 숨으려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쉬르리얼리
즘이다. 너무 방대한 지역에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작업한 작품이다. 한여름 오후 8시까지도
밝은 햇빛을 품고 다녀도 하루에 다 못 볼 장관이다.
응회암밭 장관 ‘데브렌트 계곡’데브렌트 계곡은 좀 더 높이 오르려는 관광객들의 경연장
이다. 오르되 뒤로 오른다. 눈앞으로 펼쳐진 연회색 응회암 밭을 좀더 멀리 보려고, 끝이 어
딘지 보려고 자꾸만 뒤쪽 언덕으로 오른다. 하늘 한가운데 솟은 태양이 역광을 비추는지도
모르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댄다.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지도 모르고. 바보처럼.
데브렌트의 노점상들은 아나톨리아 전통 문양의 망토와 조끼를 연신 관광객들의 몸에 둘러
보고 대본다. 관광객들이 꺼리는 기색이라도 보일라치면 자신의 어깨라도 괜찮다. 아낙들의
바지는 흡사 우리네 할머니들의 고쟁이와도 닮아있다. 비싼 편에 속하는 의류가 아니라면
악귀를 쫓는다는 ‘데블 아이’ 목걸이라도 사주길 바라느라 뙤약볕에도 이들의 흥정은 계
속된다. 이들의 조상이, 아니 이중에 몇몇은 지금도 그곳에서 살고 있을 우치사르로 발길을
재촉한다.

우치사르 바위집과 버섯바위
데브렌트 계곡이 인위가 없는 순도 100% 자연의 작품이라면 우치사르는 오히려 자연보다
사람의 냄새가 짙은 곳이다. 카파도키아 지역의 주도인 네브쉐히르에서 동쪽으로 약 10km
떨어진 이 마을은 우치사르성(城)이라고 불릴 정도로 산세가 드높은데다 한눈에도 가옥수가
엄청난 것을 볼 수 있다.
네브쉐히르에서 아바노스로 가는 길에 만난 우치사르성은 괴레메 지역에서는 가장 높은 곳
이다. 카파도키아에서 ‘요정의 굴뚝’이라 불리는 솟은 바위들과 성을 둘러싼 바위집들의
묘한 조화가 두 도시를 가로지르는 관광객들의 자동차 행렬을 잠시 멈추게 한다. 화산 분출
로 형성된 응회암 지대인 우치사르는 오늘날 오랜 동안 계속된 비바람의 침식에 의해 원뿔
형태를 하고 있고 수많은 자연 동굴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멀리서 바라본 우치사르 현재의
모습은 언제 지진으로 인한 막대한 피해를 입을지 모르는 불안한 산동네로 비춰지기도 한
다.

이흐라라 계곡에 숨은 교회들
카파도키아에서 가장 놀라운 광경은 네브쉐히르 남쪽 50km 지점부터 남북방향으로 입을 떡
벌리고 쪼개져 있는 이흐라라 계곡에서 볼 수 있다. 382개의 계단을 밟고 아래로 내려가면
갈라진 계곡의 암벽에 동굴이, 엄밀히 말하면 동굴모양의 집들이 셀 수 없다. 또 18개의 동
굴 교회가 마치 그 언젠가 소풍 때 그토록 찾기 힘든 보물들처럼 꼭꼭 숨겨져 있다. 이 교
회와 동굴모양의 집들은 박해를 피해 숨어 예배볼 곳을 찾던 초기 기독교인들의 작품이다.
지금은 382개의 계단이 아래와 위를 연결하고 있지만 이 깊은 골짜기를 어떻게 내려와서 저
것들을 지었는지. 터키인 가이드에게 물어도 고개만 설레설레 흔든다. 그들이 여기까지 와야
만 했던 이유를 알고 싶지 않다는 듯이.
취재협조: 터키항공 한국지사 02-757-0280
카파도키아=김성철 기자 ruke@trave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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