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잉카의 후예 페루
① 남미의 관문 리마
② 잉카문화의 중심 쿠스코
③ 불가사의한 공중도시 마추피추 上
④ 불가사의한 공중도시 마추피추 下

Ⅱ. 좋은 날씨·여자·와인의 나라 칠레
① 유럽풍의 차분한 도시 산티아고
② 칠레의 아카풀코 비냐 델 마르
③ 화산과 호수의 도시 푸에르토 몬트

Ⅲ. 한국 속 남미 중남미문화원

다녀온 지 두 달이 다 돼 가는데 남미는 여전히 코앞이다. 묵근한 마추피추의 분위기하며, 우르밤바의 인디오 마을에서 마주친 사내아이의 결 고운 미소가 삼삼하다. 발파라이소 집들을 퍼붓던 흥건한 가로등 불빛도 분명 기억한다. 떠나온 모든 것들은 아름답다더니 정말 그런가? 아님 소화가 덜 된 탓일까?

중남미문화원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머나먼 지구 반대편에서 느낀 적지 않은 감흥을 이곳에서도 이어줄 접점이 필요했다. 토요일 오후였다. 굳이 토요일 오후를 택한 건 그래야 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주중엔 집 밖 외출조차 삼가다가도 주말이면 남미 특유의 모든 열정을 한꺼번에 퉁겨내는 그네들의 정서를 생각하다보니 토요일 오후가 적합했다. 햇살은 따가웠으며, 아름다운 한 사람이 동행에 나섰다.

접점을 찾아 나서다
중남미문화원은 멀지 않다. 우선 지하철 3호선을 잡아타고 구파발에서 내려, 버스로 갈아탄다. 서울 중심가에서 지하철로 겨우 30여분 왔을 뿐인데, 차창 밖 풍경이 벌써 달라진다. 20여분 흘러간 버스는 고양시장에 우리를 떨구더니 저만치 달아난다.
길을 건너 중남미박물관이라 쓰여진 표지판을 따라 주택가 쪽으로 난 길을 한 600여m 걸어가니, 자주색 벽돌로 지어진 견고한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이게 웬 걸? 문화원 바로 옆에 전통 가옥 한 채가 어깨를 나란히 한다. 가까이 다가가 안내문을 들여다보니 조선 숙종때 창건된 고양향교(高陽鄕校)란다. 향교 안의 대성전에는 중국의 공자를 비롯한 7현 그리고 설총, 안유를 위시한 우리나라 18현의 위패를 봉안하고 고양군 유림에서 매년 춘추로 제향하고 있다는 친절한 설명도 곁들여 진다. 중남미문화원과 향교라…. 뜻밖의 어울림인데, 다소곳한 두 건물의 품새가 불협화음을 낸다기 보다 한국과 중남미간의 지리적 격차와 문화적 골을 따뜻하게 메워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정문을 지나 문화원 건물에 들어가기 전 일단 벤치에 앉아 본다. 나도 동행한 사람도 약속이나 한 듯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 프레임 안에 문화원 전경을 박아본다. 아주 높지 않은 벽돌 건물 두 채와 깔끔하게 꾸며진 정원이 곳곳에 세워진 석조 조각물, 빨간 꽃을 담고 있는 꽃마차 등과 어울려 단정한 모습이다. 무엇보다 사람들로 북적대지 않아 좋다. 그냥 이렇게 앉아 속닥하게 이야기꽃을 피워도 마냥 좋을 것 같다.

미술관 옆 박물관
문화원 건물은 박물관과 미술관으로 나뉜다. 2,500원의 입장료를 지불하고 박물관 중앙홀로 들어선다. 잔잔한 라틴음악이 밝은 기운을 던지는 가운데 홀을 빙 둘러가면서 성화와 성물들 그리고 조각품들이 있고 문화원 특별행사 때 고운 음색을 틔우는 스타인웨이 피아노가 조용히 자리한다.
박물관은 크게 4개의 전시실로 구성된다. 제1 전시실에는 주로 멕시코-중미일대의 일부 토기가 수집·전시된다. 마야 토기와 함께 코스타리카, 파나마 일대의 쪼로테가 토기, 니꼬야 반도의 메따떼, 베라끄루스 지방의 올메까와 꼴리마 토기 등이 죽 늘어서 있다.
제2전시실은 석기와 목기 중심의 전시물들이 차지하고 있다. 멕시코 똘떼까 왕조의 수도 뚤라의 껫살꼬아뜰 석조물과 카리브해 따이노족의 사람모양을 한 조각석기 쎄미 도키 등의 석기가 모여있다. 특히 껫살꼬아뜰은 날개가 달린 뱀의 형상으로 당시 인디오들의 영혼과 물질을 혼합한 신비의 상징이다. 석기 중에는 무당을 조각한 것이 많이 눈에 띄는데 이는 잉카종교에 자연숭배와 태양숭배의 기운이 짙게 드리워져 있는 것과 연관이 있는 듯 싶다. 재미있는 사실 한 가지. 사람을 조각한 것들 대부분은 배꼽을 지나치게 강조해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는데, 세상의 중심을 배꼽이라 보는 그들의 사고와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 쿠스코의 뜻도 ‘세계의 배꼽'이라지 않는가? 정신과 예술의 일체감이 엿보인다.

무서운 모습의 가면들
특히 흥미로운 곳이 제3전시실이다. 족히 100개는 됨직한 가면들이 걸려있는데, 참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다. 게 가면, 정복자 가면, 앵무새 가면, 뱀 가면 등 대부분의 가면들이 엄숙한 의식을 거행이라도 하듯 무표정이다. 소박하게 웃는 우리나라 하회탈의 친근한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멕시코 동해안 지대의 또또낙 인디오들은 가면으로 얼굴을 덮음으로서 일상생활로부터 잠시 자신의 정체와 영혼을 해방시키고자 했단다. 또 가면을 씀으로서 새 얼굴, 새로운 에고의 인간성과 영혼을 대신한다고 믿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옥타비오 파즈의 ‘인간은 생존하는 한 각자의 이름과 가면으로부터 숨어 지낼 수 없다. 이들은 우리의 형태로부터 떨어질 수 없고 가면은 곧 우리의 모습이다'라는 잠언이 떠오른다. 나는 얼마나 많은, 얼마나 두꺼운 가면을 쓰며 살아가는 걸까. 가면 자체가 곧 실생활이라는 그의 말이 새삼 의미심장하다.
제4전시실인 민속공예실에 들러 싼따 끌라라 데 꼬브레의 동제품, 미초아깐 소나무로 만든 투박한 가구, 노리개, 궤짝, 재봉틀, 아르헨티나의 축음기 등을 보고, 이제 미술관으로 걸음을 옮긴다.
지난 97년 9월에 문을 연 중남미미술관에는 주로 유화 작품이 많이 전시돼 있다. ‘인디오들의 시장 풍경' ‘인디오들의 부엌 풍경' 등을 통해 그네들의 삶의 자락을 어루만지고, ‘달과의 대화' ‘달 밑에서 나누는 이야기' ‘마야의 유희'에 자주 등장하는 달을 보며 고대 문명의 어떤 주술적인 자연숭배를 떠올린다.

찹찹해지는 마음
박물관과 미술관 순례를 마치면 박물관 휴게실에 몸을 기대자. 한 쪽 벽면이 통유리로 돼 있어 정원이 그대로 내다보이는데, 적은 양이지만 비가 한차례 온 후라 녹음이 더욱 짙다. 토요일 오후, 잔잔한 음악, 통유리, 녹차, 고색창연한 골동품…. 오랜만에 맞는 느긋함인데 왠지 마음이 찹찹해진다. 무얼까? 아시아에 뿌리를 둔 인디오 문화와 16세기 이후 300여년간 유럽 문화에 영향받고 다민족 이주민들로 형성된 중남미의 독특한 혼합문화, 그 거대한 유산의 숨결을 이쯤에서 털어야 한다는 생각이 툭하고 마음을 치며 지나간다.
고양 = 노중훈 기자 win@traveltimes.co.kr

라틴문화 서울서 즐겨볼까
아직 폭넓게 유포된 것은 아니지만 서울에서도 라틴 분위기를 즐길 수 있는 라틴 카페들이 있다.
‘바히아(Bahia)'. ‘바다의 만'이라는 뜻의 이 카페는 가장 최근에 생긴 라틴 바에 속한다. 홍익대 근처에서 가장 넓고 조명도 잘해 놓은 편.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5번 출구로 나온 뒤 LG Palace 뒷편으로 가면 야자수가 그려진 ‘바히아'의 간판을 볼 수 있다. 02-335-1512
‘빅 애플(Big Apple)'은 재즈 라이브를 들을 수 있는 곳이다. 재즈 싱어 윤희정씨가 음악 감독을 맡고 있는데, 매주 일요일 저녁 8시부터 국내 유일의 여성 라틴 재즈 밴드 ‘아마손'의 공연이 있다. 주 레퍼토리는 살사, 삼바, 탱고. 지하철 3호선 압구정역에서 내린다.
02-546-8989
카리브해 분위기의 인테리어가 인상적인 ‘말맨(Malman).' 어항으로 세팅한 바는 낭만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공간이 넓어 춤추기에 좋다. 역시 압구정역에서 하차. 02-517-4203
한국외국어대 근처에 위치한 ‘솔리 선(Soly Son)'. 대학 연합 라틴 댄스 동아리 ‘살사랑', 천리안 스페인춤 소모임 ‘Paso a Pas', 네츠고의 ‘Danzarin', 나우누리 ‘Locos' 등 라틴 댄스를 배우고 즐기기 위한 모임들이 이곳에서 열린다. 비영리 모임으로 라틴 댄스를 처음으로 배우고자 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 02-957-5163
이외에도 멤버쉽으로 운영되는 ‘사보르 라티노(Sabor Latino·338-9220)'와 살사 위주의 춤을 가르쳐 주는 ‘서울 무용 스튜디오(02-3675-5975)'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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